2024년 5월 5일(일)

복지정책 많아도… 이웃 관심 없이는 사회문제 안 풀리죠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불우가정 어머니 만나보니 너도나도 쌀만 보내줘서 쥐가 꼬이니 쥐덫 달라 말해 수혜자에…
사회복지 업무도 건수보다 얼마나 많은 변화 생겼는지 가장 먼저 평가대상 삼아야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사건만 터지면 반복하는 복지 사각지대 일제조사 대신, 평상시에 지역사회 복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그물망을 촘촘히 엮어야 한다.”

많은 전문가는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우리아이 희망네트워크’를 꼽는다. 삼성·사회복지공동모금회·㈔함께만드는세상이 공동으로 시행한 이 프로그램은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아동 사례 관리사업이 특징이다. 공급자 입장에서 단기간에 양적인 통계를 보여주는 지원이 아니라, 사회복지 이용자를 중심으로 민간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방임 아동을 위해 저녁 식탁에 밥숟가락 하나를 더 얹은 화상 장애 아주머니, 나 홀로 아동을 위해 이웃들이 발벗고 나선 구룡포 마을의 어른들…. 이들이 민간 네트워크의 주축을 이뤘다. 안타깝게도 2005년부터 6년간 이어지던 이 프로그램은 삼성 지정기탁사업이 끝나면서, 2011년 종료됐다. 당시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노혜련(57·사진)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조사 결과 사업이 종료되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노 교수를 만나 최근 송파 세 모녀 사건 해결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최근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을 발굴하겠다’는 민·관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1년 공원 삼남매 사건 당시, 3주 만에 2만3000명을 찾아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나. 정책, 제도, 사업이 아무리 많아도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지역사회 자체가 건강하게 바뀌지 않으면 이 같은 사건이 되풀이될 뿐이다. 최근 지역의 이웃 간 단절은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세 모녀 사건’만 봐도 ‘이웃에서 전혀 알 수가 없었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든다. 중산층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이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그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지역사회가 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복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일할 필요가 있다. 발굴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아이 희망네트워크’를 할 때 가난한 가정의 한 어머니를 만났는데, ‘제발 집에 쌓인 쌀 좀 갖고 가라’고 하더라. 쌀이 필요할 거란 생각에 너도나도 쌀을 줘서 그렇다. 뭐가 필요하냐고 했더니, ‘쌀 때문에 쥐가 꼬였으니 쥐덫을 달라’고 했다. 위에서 내려주는 복지는 이용자가 정말 필요한 것을 묻지 않는다. 똑같이 어려워 보여도, 정서적인 어려움이 클 수도 있고, 경제적인 것이 급할 수도 있는데 이를 헤아리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게 접근해서 이야길 듣고, 각자가 원하는 변화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이 필요 없고, 오히려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제주도에 엄청나게 무기력한 어머니가 있었다. 음식도, 청소도 안 했다. 집안은 엉망이었고, 애들은 방임 상태였다. 보통 사회복지가가 그런 곳을 가면, 어머니는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병원으로 데려가고, 애들은 시설로 보낸다. 우리는 어머니가 원하는 걸 찾게 했다. 학창시절에 소질을 보였던 것,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집요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없다고 한다. 인내가 필요하다. 한 달을 매일 찾아가 같은 질문을 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중학교 때 ‘한자’를 좋아했다고 하더라. 인근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게 했다. 처음엔 오기 싫어했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왔지만, 점점 모습이 달라졌다. 옷도 신경 쓰고 화장도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사실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은 병원에서 정규직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버티고 살아왔던 강점을 ‘나 몰라라’ 하고 그저 쌀을 주고, 연탄을 줬다면 아직도 그걸 받아 쓰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역사회를 구성하면 지역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맞다. 그렇게 도움받고 삶의 자세가 바뀌면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도움으로 일어서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나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이다.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고립을 원했던 어머니가 이젠 그 지역사회에서 많은 일을 하기도 한다. 외로운 할머니들은 아버지 혼자 애를 키우는 집을 찾아 보모가 되어 준다. 한 동네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같이 돌보면서, 주말에는 인근 할아버지들과 아이들이 어울리게 해주기도 한다. 가족이 만들어지고, 지역사회가 끈끈해지는 거다. 소소한 기술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미용 기술이 있으면 지역아동센터에 가서 아이들 이발을 시켜주고, 집안일을 잘하면 가사도우미를 자처한다. 외부의 지원은 중단되거나 줄어들 수 있지만, 지역사회의 이런 네트워크들은 끊어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사회복지 업무의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몇 명을 만났는지, 몇 건의 사례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인내를 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지금과 같은 평가는 경쟁을 유발할 뿐이다. 위에서는 일감을 나눠주고, 기관들은 그것으로 실적 경쟁을 한다. 서로 격려하며 협력해도 모자라는 판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편법도 쓰고, 빈틈도 노린다. 원하는 만큼의 변화가 일어났는지가 평가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며, 잘 협력하는지 역시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복지는 돈만 가지고는 안 된다. 문제를 파악하려는 의지를 가진 인력을 양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슈퍼비전(supervision·종사자 역량을 향상시켜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지도)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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