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방황할 때 날 잡아준 학교… 선생님 되어 사랑 돌려줘야죠

경기도 안산 푸른꿈동산학교
대학생 교사가 4~5명 맡아 저녁에 수학·영어 교육
진로·연애 문제도 상담 고교 입학 꼴찌가 반 2등까지
“아이들이 배움에 감동하고 그 감동 다시 베푸는 선순환”

“처음엔 학원같이 지루한 곳이려니 했죠. 다 귀찮고, 놀고픈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이제 푸른꿈동산학교는 제 집 같아요. 가족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전 이제 선생님이 됩니다.”

졸업생 대표 김성인(19·서강대 게임교육원 게임그래픽과 입학)군의 연설에, 환호성이 쏟아졌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김종영 푸른꿈동산학교 교감은 “고1 때 성인이를 처음 봤을 땐 ‘사람 구실 할까’ 싶었는데, 꿈이 생기고 이렇게 달라졌다”고 했다.

1 푸른꿈동산학교의 레크리에이션 행사. 2 졸업식 축하무대에서 장기자랑을 선보이고 있는 고등부 졸업생들. 3 지난 20일 열렸던 제3회 졸업식은 학생 및 관계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푸른꿈동산학교 제공
1 푸른꿈동산학교의 레크리에이션 행사. 2 졸업식 축하무대에서 장기자랑을 선보이고 있는 고등부 졸업생들. 3 지난 20일 열렸던 제3회 졸업식은 학생 및 관계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푸른꿈동산학교 제공

지난 15일 오전, 경기도 안산의 동산교회 9층에 70여명의 학생이 모였다. ‘푸른꿈동산학교’의 세 번째 졸업식을 위해서다. 이곳은 지역의 대학생 형·누나들이 평일과 주말 저녁에 모여 중·고등학교 후배들에게 무료로 수학과 영어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야학’이다. 2010년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38명의 대학생을 배출했다.

반전드라마의 주인공 윤소영(21·한양대 ERICA캠퍼스 영미언어문화학과3년)씨가 대표적이다. 윤씨의 고교 입학 성적은 전교 꼴찌였다. “공부 욕심은 있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원은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수능을 앞둔 4월 무렵, 윤씨는 친구 소개로 이곳을 찾았다. “툭하면 전화해 모르는 걸 물어봤어요. 시험 기간엔 새벽에도 연락했죠.” 이후 윤씨의 학업성적은 180도 바뀌었다. 윤씨는 “고등학교에서 처음 본 수학시험에서 5개를 맞았는데 마지막 시험에선 반에서 2등을 했다”고 말했다.

비결을 묻자, 윤씨가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더니 두꺼운 종이뭉치를 꺼냈다. “대학생 선생님이 손수 만들어준 ‘공부계획표’에요. 과목별로 공부할 교재, 페이지, 시간 등을 매일 세세하게 적었어요.” 손 글씨가 빼곡한 종이 한 귀퉁이에는 ‘오늘도 열심히 했네. 파이팅!’이라고 적혀 있었다. 윤씨는 2012년 대학생이 되자마자 이곳의 교사로 나섰다.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갚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게 벌써 3년째다.

푸른꿈동산학교의 시작은 엉성했다. 1기 학생이었던 조소현 간사는 “남는 교회 공간을 커튼으로 나누고 공부했는데, 옆반 수업소리가 다 들렸다”며 “교칙이나 커리큘럼도 없었다”고 한다. 후원자 30여 명의 기부금만으로 운영하다 보니, 사정은 어려웠다. 하지만 대학생 교사들의 열정만큼은 일류학교 못지않았다. 조 간사는 “당시 선생님들이 밤새 출석부나 시험지 같은 것들을 만들고, 시중 교재를 뒤져가며 커리큘럼을 고민했다”고 했다.

대학생 교사 박찬(20·한양대 교통물류학과2)씨는 “공부에 대한 열의는 있지만, 학원에는 못 가는 아이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 뭘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했다. 체육대회, 문화행사, 대학탐방, 캠프 등 다양한 학사 일정도 대학생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다. 이후 퇴직 교장 출신인 유창수 교장이 참여해 교훈, 교칙 등 기본적인 체계도 갖췄다.

현재 푸른꿈동산학교에는 16명의 교사(중등 6명·고등 10명)가 71명의 학생(중등 35명·고등 36명)을 가르친다. 4~5명을 한 반으로 꾸리고, 이를 교사 한명이 맡는 ‘전담제’로 운영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맞춤형 멘토링을 받게 된다. 대학생 선생님은 한 달 15만원의 장학금을 받는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공부도 배우지만, 고민을 털어놓고 진로에 대한 비전을 키워나간다. 2년 넘게 푸른꿈동산학교에 다니는 박영민(15·안산 성한중3)양은 “주변에서 대학생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선생님이 다니던 대학을 구경시켜줘서 재밌었고 (공부) 의욕도 생겼다”고 했다.

이수영(15·안산 경수중3)양은 “얼마 전에 전교 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날 뽑아주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푸른꿈동산학교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양은 이어 “부모님께 할 수 없는 이성과 연애 문제도 선생님과 상의한다”고 했다.

유창수 교장은 “수능을 앞둔 학생에게는 교사들이 ‘세족식’을 해주는데, 이때 학교는 눈물바다가 된다”며 “이렇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받은 사랑을 아이들은 졸업 후 되갚는다. 올해 졸업해 대학생이 된 9명 중 4명이 다시 이곳의 교사가 됐다. 편근형(19·인천대 기계공학과 입학)군은 “3년 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나는 모든 것에 불만투성이였고, 툭하면 부모님께 대들었던 반항아였다”며 “나를 방황에서 꺼내준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방법은 나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교사에 지원했다”고 했다.

2010년 5월 지인들과 함께 150만원의 장학금을 만들어 푸른꿈동산학교 문을 연 이무성 동산교회 실업인선교회장은 “우리 청소년들이 가난하다고 꿈을 잃고 낙오하지 않도록 선배들이 다리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유창수 교장은 “아이들이 배움에 감동하고, 그 감동을 다시 나누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한, 우리 학교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을 이었다. 이들의 나눔은 안산에 푸른 꿈을 심고 있었다.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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