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가난할수록 힘 모아야… 협동조합 활성화되면 지역 경제도 성장”

성동구 ‘논골신용협동조합’ 유영우 이사장
1997년 설립된 논골신협… 주민 4000여명이 조합원
신용등급 부족한 주민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해줘
“필요한 자금 받을 수 있게 협동조합 위한 시스템 필요”

지난해 7월, 서울 행당동의 작은 중국집 하나가 화제가 됐다. ‘철가방’들이 만든 협동조합으로 유명해진 ‘블랙앤압구정’ 얘기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무늬만’ 협동조합도 아니다. 이미 협동조합 형식을 차용한 지 3년이 넘었으며, 서울 성동구 일대에 2·3호점을 연달아 내는 등 경영 성과도 좋다. ’10곳이 창업하면 8곳이 망한다’는 외식업계에서 눈에 띄는 이들의 성과 뒤에는 지역 주민들만을 위한 금융기관 ‘논골신용협동조합'(이하 논골신협)이 있었다.

신용등급이나 담보가 부족한 이들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줌으로써 출자금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블랙앤압구정 창업자인 채혁(46)씨는 2001년부터 논골신협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7년 가난한 철거민들이 세운 논골신협은 현재 서울 성동구 내 주민 4000여명이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자산은 260억원 규모다. 유영우(59) 논골신협 이사장은 17년째 이곳을 키워온 산증인이다.

유영우 이사장은 “자본주의 시장체제에서 협동조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소비, 유통 단계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욱 기
유영우 이사장은 “자본주의 시장체제에서 협동조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소비, 유통 단계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욱 기

비닐 제조회사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1990년대 초 자신이 살던 성동구 금호·행당동 일대의 재개발 바람에 맞서 세입자 대책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 협동조합을 접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93년에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라는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을 사는 또 다른 방식도 있구나’ 싶었죠. 가난할수록 더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고요.” 유 이사장은 주민들을 모아 밤마다 협동조합을 공부했다. 30명으로 시작한 ‘야학’의 규모는 300여 가구로 늘었다. 1997년 설립된 ‘논골신협’은 그 결실이다. 국내에서 정부가 공식 인가한 신협 중 가장 막내다.

유 이사장은 “은행에서는 자격 미달이어도, 우리에게는 ‘조합원’ 자격이 생긴다”며 “IMF 금융 위기에 설립했지만, 어려움을 뚫고 버텨올 수 있었던 것도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 덕분”이라고 했다. 장학사업·복지사업 등 지역사회 공헌활동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쌓은 것도 큰 자산이 됐다. 블랙앤압구정의 조합원들은 협동조합 전환을 통해 주인의식을 얻게 됐고, 결과는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이는 신협의 대출 상환도 충실히 이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영우 이사장은 “작년 11월에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돼 치과의료생협을 만들었고 현재 개원을 준비 중”이라며 “주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논의하고 그 욕구와 목적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꾸려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지역사회의 협동 네트워크가 점점 넓어질 수 있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이어 “협동조합의 성패는 어떤 생태계 위에 있느냐에 따라 갈리는데, 그 중 적재적소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 중요하다”며 “신협이 지역의 협동조합과 협력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되면, 협동조합들도, 신협도, 지역 경제도 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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