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이 빨간 조끼, 영리한 브랜드 ‘로우로우’ 작품입니다

공익 브랜드 마케팅
연말 이벤트 찾던 ‘로우로우’ 노숙인 자활 잡지 빅이슈에 自社 이름 새긴 조끼 기증
곳곳의 ‘빅판’·협업 스토리로 브랜드 광고 효과 톡톡히 봐

대기업 패션사업부에서 상품기획자(MD)로 일하던 이의현(32)씨는 2012년 여름 ‘로우로우(rawrow)’라는 가방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월세 30만원짜리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3~4평 규모의 스튜디오 분장실 한쪽이 사무실이었다. 창업자금 2000만원으로 300개의 가방을 제작했지만 1년 만에 3만여개가 팔렸다. 지난해 매출은 35억원. 가장 큰 인기 비결은 심플한 디자인. 쉽게 들 수 있게 손잡이를 키웠고, 노트북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잠수복 소재를 사용했다. ‘담는 것’이라는 가방의 본질적 역할을 최대화하는 디자인은 소문을 타고 매출로 이어졌다.

신생브랜드‘로우로우(rawrow)’직원들이 직접 디자인한 빅판의 빨간 조끼. 이전보다 밝은 톤의 빨간색으로 눈에 잘 띄고, 왼쪽 가슴엔 아이디 카드(빅판 신분증)를 넣을 수 있는 투명 포켓이 생겼다. /로우로우 제공
신생브랜드‘로우로우(rawrow)’직원들이 직접 디자인한 빅판의 빨간 조끼. 이전보다 밝은 톤의 빨간색으로 눈에 잘 띄고, 왼쪽 가슴엔 아이디 카드(빅판 신분증)를 넣을 수 있는 투명 포켓이 생겼다. /로우로우 제공

“사업이 커지면서 잡지 광고 제안을 받았어요. 근데 요즘 사람들 0.2초도 안 보지 않나요? 연예인 협찬 광고로 돈 쓰긴 싫었어요. 그럴 돈으로 ‘옳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대표가 연말을 맞아 감사 이벤트를 고민하던 중 디자이너 이규현(29)씨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로우로우의 이름으로 조끼를 만들어 빅이슈에 기부하자는 것. 빅이슈는 한 권(5000원)을 판매하면 2500원(50%)은 빅판(노숙인 출신 빅이슈 판매원)의 몫으로, 노숙인의 경제 자립을 지원하는 잡지다. 이규현씨는 “영국에 유학 갔을 때 빅판들을 보면 활기차고 적극적인 분위기였는데, 한국은 분위기가 다르더라”면서 “빅판의 상징인 빨간 조끼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번엔 ‘잡지를 판매할 때 입는 유니폼’이라는 본질적 역할에 주목했다. 빅이슈코리아를 찾아가 빅판들의 의견부터 들었다. “방수가 되면 좋겠다”는 요구에 한 달 동안 원단을 찾으러 동대문시장을 돌아다녔고 “정식 빅판이 아닌 사람들이 잡지를 판매해 어려움이 있다”는 말에 아이디 카드가 분명하게 보이도록 투명 포켓을 추가해 신뢰도를 높이도록 했다. 밤에도 눈에 잘 띄도록 이전보다 밝은 톤의 빨강 원단을 사용했다. 자주 여닫는 지퍼 부분을 강화했고, 수납 주머니는 3개로 분할해 1만원, 5000원, 1000원을 단위별로 따로 보관하도록 만들었다. 빅판 맞춤형 옷인 셈이다. 어려움도 있었다. 80벌이라는 애매한 수량이 문제였다. 공장은 “최소 200~300개 정도는 만들어야 제작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샘플실에서 직원 6명이 한 땀 한 땀 수작업을 진행했고, 비용도 예상보다 2배가 더 들었다. 총 두 달이라는 제작 기간이 걸렸다.

수납 주머니를 3개로 분할해 잡지 판매에 편의성을 더했다. /로우로우 제공
수납 주머니를 3개로 분할해 잡지 판매에 편의성을 더했다. /로우로우 제공

지성이면 감천일까. 거액이 드는 협찬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홍보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 지역 지하철역 40여곳에 퍼진 로우로우 조끼를 입은 빅판들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됐다. 게다가 빅이슈와의 협업 스토리를 담은 소식은 페이스북을 타고 퍼지며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진무두 빅이슈 대외협력국장은 “젊은 청년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디자인 과정에 세밀하게 신경을 쓰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면서 “방수도 되고 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빅판들 사이에서 추가 주문이 있을 정도”라고 반응을 전했다.

이의현 로우로우 대표는 “유명 연예인·디자이너와의 협업이 브랜드 마케팅의 최고 수단으로 여기는 세태에 새로운 시각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불필요한 광고를 줄이고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공익 마케팅의 새로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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