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경쟁력 갖추고 정체성 다지고… 사회적기업은 안녕하답니다

사회적기업 제도화 7년홀로선 그들의 생존법
3년 정부 지원 중단되고도 사회적기업 생존율 80% 개인사업자보다 3배 높아
비결은 변화·고품질·책임감
타 업종 뛰어들어 변신 시도 서비스 개선으로 혁신 모색 수익 줄어도 의무감으로 버텨

함께일하는세상은 청소사업의 전문화와 세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사회적기업 서비스의 품질을 크게 높였다. /함께일하는세상 제공
함께일하는세상은 청소사업의 전문화와 세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사회적기업 서비스의 품질을 크게 높였다. /함께일하는세상 제공

국내에 사회적기업이 제도화된 지 어느덧 7년. 사회적기업(인증) 수는 1000개가 넘는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성장 토대를 마련한 결과다. 하지만 ‘홀로서기’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2012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회적기업 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에서, 2007년부터 3년간 정부 지원을 받은 사회적기업 46곳을 분석한 결과, 지원이 중단된 시점에서 74%가 적자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망했을까? 2007년 국내 최초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36곳 중 생존한 기업은 모두 27곳. 뜻밖에도 생존율은 80%에 육박한다. 일반 개인사업자의 평균 생존 기간(3.4년) 및 생존율(24.6%)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더나은미래’는 이 27곳을 전수조사, 생존 전략을 들여다봤다.

㈜컴윈은 전기·전자 폐기물을 재활용하며,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2002년 지자체(안산·시흥)에서 진행했던 자활근로사업단이 모태다. ‘공병’이나 ‘파지’를 줍는 일로 시작했지만, 이내 폐전자제품 쪽으로 눈을 돌렸다. 권운혁 ㈜컴윈 대표는 “일자리 만드는 기업이라 기존의 다른 일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려 했는데, 프린터나 복사기는 재활용 효율이 떨어져 손대지 않더라”고 했다. 때마침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제조업체들이 일정량을 적정하게 재활용했다는 실적을 보고하는 제도)가 2004년 도입되면서 시장성도 생겼다. 이 분야의 전문성과 기자재를 갖추는 데만 2년여가 걸렸다. 현재 ㈜컴윈은 삼성, 한국휴렛팩커드(HP) 등 대기업은 물론, 한국정보화진흥원, 국가정보원 등 공공 기관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직원 28명(취약 계층 17명)이 달성하는 매출은 연간 20여억원에 달한다.

1 중증장애인들로 이뤄진 사회적기업‘동천’의 생산량은 非장애인의 30% 정도에 불과하지만, 우수한 품질을 앞세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2 권운혁 컴윈 대표는“우리 회사가 10년을 버티며 얻은 성과는 사람”이라며“사회적기업으로서의 긍지와 소명의식을 공유한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더 높은 도약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1 중증장애인들로 이뤄진 사회적기업‘동천’의 생산량은 非장애인의 30% 정도에 불과하지만, 우수한 품질을 앞세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2 권운혁 컴윈 대표는“우리 회사가 10년을 버티며 얻은 성과는 사람”이라며“사회적기업으로서의 긍지와 소명의식을 공유한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더 높은 도약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시장 개척하고, 끊임 없이 변신하라

중증 장애인이 만드는 모자로 유명한 사회적기업 ‘동천’은 2008년부터 ‘재제조 토너카트리지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매년 8월부터 11월까지, 소위 ‘모자 비수기’로 불리는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김춘만 동천 사무국장은 “모자만 고집했으면 동천은 아마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동천은 모자 제조에서 20억, 카트리지 사업으로 1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동천’의 근로자 41명(총 63명)은 중증 장애인으로 생산성은 비장애인의 30%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를 확실한 품질로 상쇄했다. 장애인이 단순 작업에 능통하다는 것에서 착안, 20개가 넘는 공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하며 얻어낸 결과다. 이엑스알(EXR), 컨버스, 엘레쎄 등 국내 유명 브랜드가 동천에 제조를 의뢰하며, 전국의 우체국 집배원과 군인들도 동천 모자를 쓴다.

아름다운가게 박병혁 정책국장은 “재활용 운동이 늘어나던 때에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갖췄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2~3년 주기로 공정무역, 공익 제품 유통 등 시장 흐름에 맞게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 것도 성공 비결이다. 간병 사업을 주로 했던 ㈔충북사회교육센터도 사업 모델을 일부 수정했다. 최신자 ㈔충북사회교육센터 국장은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가격 경쟁력이 약해져 (지원이 끊긴 후) 간병만으로는 유지가 힘들었다”고 했다. 이곳은 2012년 3월 ‘노인요양재가센터’를 열면서 생존 발판을 다지고 있다.

◇’착해서’보단 ‘좋아서’ 팔 수 있어야

국내 1호 사회적기업인 다솜이재단은 경력 단절 여성을 고용해 간병 서비스를 제공한다. 설립 초기부터 강조했던 것은 고품질의 서비스다. 안재웅 다솜이재단 이사장은 “간병인을 전문 직군으로 키우기 위한 교육, 탄력적 교대 근무제(공동 간병 모델) 도입 등 서비스 혁신을 꾀하며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다솜이재단은 전국 5개 지역사업단(서울·경인·대전·대구·광주)에서 직원이 총 319명 일하고 있는데, 이 중 50%(160명)가 취약 계층이다. 매출은 약 49억원(2012년 기준).

지적장애인들이 만드는 ‘위캔쿠키’ 역시 품질로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홈쇼핑·온라인 판매는 물론, 지자체, 생협 매장, 기업 고객 등으로 판로가 확대되고 있다. 위캔쿠키는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작되던 형태를 탈피, 2008년 ‘ISO 22000 식품안전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전문성을 갖춰왔다. 중증 장애인 20명을 포함, 직원 38명이 함께 일하며 매출은 14억이 넘는다(2012년). 임주현 위캔센터 사무국장은 “원자재비와 최저임금이 매년 오르는 힘든 상황에서도,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등 식품 사업의 인증 요건을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미상_그래픽_사회적기업_2007고용노동부최초인증27곳_20142002년 취약 계층 4명과 함께 청소용역으로 출발했던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은 직접 시장을 개척했다. 2009년, 웅진에서 만든 홈클리닝 업체 ‘인스케어’를 사들였다. 대기업 사업부를 사회적기업이 전격 인수한 것이다. 이철종 함께일하는세상 대표는 “한 달에 1억5000만원씩 적자가 나서 고향의 ‘선산(先山)’까지 팔아가며 버텼다”며 “취약 계층이 하는 사업은 품질과 서비스가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고 우리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11년 만에 매출 6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크린서비스청’, ‘인스케어’, ‘한누리’, ‘우리누리’ 등 계열사 다섯 곳에서 일하는 직원만 200여명이 넘는다.

◇위기의 순간, 미션과 정체성 되새겨야

전문가들은 “사회적기업은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매출이 많아도 이익은 별로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지원이 종료되면 위기를 맞는 것도 그래서다. 이철종 함께일하는세상 대표는 “영리 사업은 돈벌이가 안 되면 접어야 하지만 ‘미션’을 가진 사회적기업은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근근이 버티며 결국 반등의 기회를 찾아낸다”고 했다.

2004년 6월, 외국인 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지구촌사랑나눔 부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민간의 후원만으로 유지되던 기존 구조를 탈피, ‘협동조합’으로 대변신을 준비 중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는 “10년간 어렵사리 병원을 유지했지만,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는 불쌍한 존재로만 인식된다”며 “그들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주체적으로 자립하도록 하기 위한 움직임에 시동을 거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중견 사회적기업이 된 함께일하는세상이나, 다솜이재단, 컴윈 등은 후발 사회적기업을 위한 교육·컨설팅·지원사업 등을 통해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의 ㈔대한노인회안성시지회. 인근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공병 등을 모아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다. 2007년 인증을 받은 후 노인 50여명의 인건비와 사회보험료를 지원받아 운영했지만 지원 종료(2009년 12월) 후 30여명이 줄줄이 그만두며 폐업 위기에 처했다. 이 회사를 지켜낸 것은 노인 10여명이다.

“회사를 접으려던 찰나에 85세 어르신께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났어요. 여기서 일하는 분 모두 80세 내외지만, 또래에 비해 건강하고 사회적기업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강하세요. 지역의 노인들이 일을 통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자던 미션. 우리가 지켜야 할 미션이 우리를 지켜낸 거죠.”(한택희 ㈔대한노인회안성시지회 사무국장)

이곳은 이후 4년째 생존을 이어오고 있다. 연 1억원 내외로 매출은 크지 않지만, 10명의 인건비를 스스로 해결하며 ‘홀로서기’에 정착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최태욱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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