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말보다 주먹이 앞서던 아이… 이젠 꿈꾸는 아이

굿네이버스 좋은 마음센터

빈곤아동 위한 복지서비스에 심리·정서적 치료 기능 더해… 복지와 상담의 시너지 효과

폭력적 성향 가졌던 중학생 … 상담 4개월 후 개선 의지 보여… 눈 쳐다보며 살가운 대화 나눠

대구의 A중학교에 다니는 이정섭(가명·15)군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아이’였다. 번번이 교내 폭력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학교의 교육복지사는 “조금만 화가 나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로 이군을 기억했다. 편모 가정의 보살핌은 허술했고, 학교의 눈총은 따가웠다. 중학교 1학년 말에 있었던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서는 ‘강제 전학’까지 거론됐다. 겨울방학 때 학교폭력위원회로부터 특별교육 이수를 통보받은 이군은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대구 동부지부를 찾았다. 학교 폭력 가해 학생들을 위한 특별교육 참여를 위해서였다. 류현희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대구 동부지부장은 “일주일짜리 짧은 교육이었지만 개선의 여지가 엿보였다”고 했다.

좋은마음센터에서 제공되는 상담프로그램은 특별한 매뉴얼이 없다. 모든 프로그램은 아동의 성향과 문제에 따라 맞춤형으로 구성된다. /굿네이버스 제공
좋은마음센터에서 제공되는 상담프로그램은 특별한 매뉴얼이 없다. 모든 프로그램은 아동의 성향과 문제에 따라 맞춤형으로 구성된다. /굿네이버스 제공

이듬해 3월, 이군과 센터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류 지부장은 “학교 측에 요청해 아이를 개별 상담치료로 연결시켰다”고 말했다. GS칼텍스가 후원하는 어린이 마음 치유 프로그램 ‘마음톡톡’의 무용 동작 치료였다. 정윤희 무용 동작 치료사(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대구 동부·GS칼텍스 마음톡톡)는 “교실에 선생님이 들어오면, 자신의 공간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간에 대한 왜곡이 심했던 아이”라며 “올바른 공간을 인식시키고, 외부로 뻗치는 힘을 내면의 힘으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처음 몇 주는 ‘기 싸움’만 했다고 한다. 정윤희 치료사는 “가해 학생들은 초반에 소위 ‘힘겨루기’를 한다”며 “기다려주고, 공감해주는 과정을 거치면, 서서히 치료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군은 공을 이용한 다양한 게임부터 시작했다. “승부욕이 있는 아이들은 함께 게임을 하며 이기고 지는 과정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학교 책상을 자기 맘대로 배치해보며 올바른 공간을 인식하는 훈련, 양발 혹은 한 발로 서서 내면의 버티는 힘을 키우는 동작 등도 이어졌다. 아이를 위해 맞춤형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정윤희 치료사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아이가 내 눈을 쳐다보면서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며 “가정 문제와 자신의 잘못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담 시작 후 4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다. 지난 7월,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친 이군은 현재까지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교육복지사는 “화를 참으려는 모습이 자주 보이고, 다른 아이들과도 전보다 살갑게 지낸다”고 말했다.

‘OECD 국가 중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벌써 5년째 이어지고 있는 불명예로, 국내 아동들의 정신 건강은 이미 위험수위에 올라 있다. 14년째 아동 권리 및 복지 분야에서 활동해온 류현희 지부장은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어루만져 줄 지지 체계가 부족해 아이들이 계속 아픈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고 했다.

좋은마음센터 상담치료 장면
좋은마음센터 상담치료 장면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주로 빈곤 아동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펼치던 ‘아동권리지원센터’에 심리·정서적 치료 지원의 기능을 더한 것이다. 가장 큰 강점은 복지와 상담의 시너지다. 아동 복지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회복지사들과 전문 상담치료사의 협업을 통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혜경 굿네이버스 복지사업부 연구기획팀 과장은 “아동 정서 지원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지만, 정부나 학교가 이를 30% 정도밖에 해결하지 못해 민간의 참여가 필요했다”며 “사회복지 영역에서 강점을 갖는 사례 관리, 모니터링 등을 상담치료와 연계하면 좀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류현희 지부장은 “7~8년 전에 ‘방과 후 교실’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만났더니 ‘문제아 중의 문제아’가 돼 있더라”며 “심리치료 후 사후 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는데, 좋은마음센터가 생기면서 이런 체계가 갖춰지게 됐다”고 말했다. 인력과 비용 등의 이유로 단기간에 그쳤던 상담 기간 문제도 극복했다. 류 지부장은 “좋은마음센터는 보건복지부의 바우처 지정기관으로, 해당 학생(전국가구 평균 소득의 150% 이하)이 이를 이용하면 2년까지 저렴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첫선을 보인 좋은마음센터는 현재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14개소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위기 학생 2600여명이 상담치료를 경험했다. 설립 2년 차를 맞는 올해, 좋은마음센터는 가정 역량 강화에 대한 지원과 지역 협력 체계 확립에 힘을 쏟고 있다. 이혜경 과장은 “상담치료와 동시에 상담 학생 가족에 대한 복지 서비스까지 병행하는 체계를 준비 중이며, 심리치료사, 사회복지사가 소통하는 구조를 지역사회로 확산시키려는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어 “도움이 필요한 아동을 발굴하고, 복지지원 및 상담치료로 연결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돌보는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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