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Cover Story] 울타리를 나선 우리 아이들이 힘겹지 않도록

Cover Story 학교 밖 청소년을 보듬는 사람들
자리주식회사 신바다 대표
고교 자퇴 후 자립 노하우로 청소년 바리스타 무료 교육
“아이들이 사회 적응하도록 자신감 심어주는 게 중요”
유자살롱 이충한·전일주 대표
탈학교 청소년들 모아 악기 가르치고 공연 준비
학생 절반 학업 복귀하고 25%는 음악활동 계속해
마음걸음 이금석 대표
학교폭력 피해 트라우마 연기로 치유한 경험 살려
연극 통한 學暴 예방교육 방과후학교서 치유수업도

학교 밖 청소년, 7만명 시대다.(2012년, 한국교육개발원) 이들은 왜 학교를 벗어날까.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3만명 중 1만6419명(49.7%)은 ‘학교 부적응’을 이유로 꼽았다. 학습부진, 인간관계 악화, 왕따, 학교폭력 등을 겪은 경우다. 2005년(9703명) 대비 7년 만에 70% 가까이 높아졌다. 가정 문제 2976명(9.0%), 질병 2210명(6.6%), 폭행·절도·이성교제 등의 품행 문제가 452명(1.4%)을 차지했다.(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울타리를 잃어버린 학교 밖 청소년, 이들을 품는 소셜벤처 대표들을 만났다.

1 유자살롱은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악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 마음걸음 이금석 대표. 3 자리주 식회사 신바다 대표. 4 유자살롱의 멤버들. 왼쪽부터 이충한 공동대표, 정신우씨, 전일주 공동대표, 정호경씨. /유자살롱 제공·김경하 기자
1 유자살롱은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악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 마음걸음 이금석 대표. 3 자리주 식회사 신바다 대표. 4 유자살롱의 멤버들. 왼쪽부터 이충한 공동대표, 정신우씨, 전일주 공동대표, 정호경씨. /유자살롱 제공·김경하 기자

◇위기청소년 자립 위해 바리스타 교육 지원합니다, ‘자리주식회사’ 신바다 대표

“돈도 벌고 싶었고, 학교의 딱딱함이 저와는 잘 맞지 않았어요.”

신바다(29)씨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청소년’이었다고 표현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노는 게 좋았다. 20만원이 안 되는 육성회비도 못 내는 가정형편을 알았을 땐, 학교 가는 게 부끄러웠다. 홀어머니와 다섯 살 터울의 어린 동생, ‘돈을 벌어야겠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커졌다. PC방 아르바이트, 우유·신문배달, 퀵서비스 등 닥치는 대로 일해 용돈을 벌었다. 고1 여름방학이 끝난 후, 자퇴서를 제출했다. N게임기업 게임모니터링 아르바이트, 의류쇼핑몰 구매대행 서비스, 새로운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모니터링 아르바이트 등 20세도 되기 전 다양한 일을 했다. 신씨는 제대 후, 카페 창업을 결심한다. 암 투병으로 일을 그만둔 어머니를 대신해 돈을 많이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각종 창업지원제도를 샅샅이 뒤져, 가게보증금도 지원받았다. 친구 10여명이 투자해 인테리어 비용을 마련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가게 콘셉트 디자인, 간단한 건축작업은 신씨가 도맡았다. 온라인 홍보에 힘을 쏟아 2년 만에 손익분기점도 달성했다.

“5년 전, 인천의 청소년재활작업장인 카페 ‘립’이란 곳에 가게 됐어요. 쉼터 애들 바리스타 교육하고 일하게 하는 방식이었죠. 장사가 안 돼 수익이 바닥이었죠. 제 장사 노하우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컨설팅을 하게 됐습니다. 하다 보니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한 자립교육이나 인프라가 필요하겠더라고요.”

탈학교 청소년들과 만남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신씨는 “내가 배경도, 학벌도 좋지 않지만 카페의 CEO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고 했다. 2011년에는 위기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바리스타 교육을 제공하는 소셜벤처 ‘자리주식회사’를 새롭게 창업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부천의 카페에 소셜 미션을 덧입힌 것이다. 일반인 1명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면, 청소년 1명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은평교육복지센터, 강서청소년쉼터 등 15개 기관과 협약을 맺고, 지금까지 50명가량이 교육을 수료했다. 홍제동 인왕시장 내에 2호점을 마련했고, 한국전력의 지원을 일부 받아 선유도역 근처에 3호점을 오픈했다. 신씨가 외식업계 사회적기업 프랜차이즈를 꿈꾸는 이유는 마냥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요즘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혹은 ‘할 수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는 애가 많아요. 작은 성취 경험이 중요합니다. 자격증도 따고, 돈도 벌면 자신감을 얻으면서 점차 사회에 적응하는 거죠. 바리스타는 수요도 많으니 적격인 아이템이죠. 우리 회사가 전국에 200~300개 된다면 교육생들 취업까지 연계되니 정말 좋지 않을까요?”

◇음악으로 사회와 징검다리를 놓아주다, ‘유자살롱’ 이충한·전일주 공동대표

진수(가명·21)는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고3 초반에 갑자기 학교를 그만뒀을 때, 부모님은 억장이 무너졌다. 심한 우울증이었다. 진수는 기타를 배우고 싶어 서울시립청소년직업센터 ‘하자센터’를 찾았고, 거기서 ‘유자살롱’을 만났다. 1년을 기타만 쳤다.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마음을 추슬렀다.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진수가 일을 하더니 ‘내 문제가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명문대에 입학했습니다. 아직 관계 맺는 것이 능숙하진 않지만 서서히 시도하고 있어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도 있고, 주위 압박에 약한 사람도 있잖아요. 진수는 빡빡한 상황에서 참고 참다가, 터져버린 거죠. 단지 조금 쉬면서 우회로를 타면 해결될 문젠데,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길을 이탈하는 순간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죠.”

‘유자살롱’ 이충한(37) 공동대표의 말이다. ‘유자살롱’은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악 치유를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전일주(31) 공동대표는 “창업 멤버 11명 중 6명이 대안학교와 관계가 있어 학교 밖 감수성을 이해하고, 청소년을 도울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자살롱’은 3개월마다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 7~10명을 한 기수로 모아 음악을 가르친다. 매주 3번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 등 악기를 배운다. 처음 2~3주간은 강사와 일대일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이후엔 합주 연습으로, 그리고 공연 준비로 이어진다.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대인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합주를 하고 나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낀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3번도 힘들어하던 아이가 매일 나와서 악기 연습하느라 집에 들어가기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업이 2년 반 정도 지난 지금, ‘유자살롱’은 50명의 아이를 만났다. 이 중 50%는 검정고시, 대안학교 등 학업으로 복귀했고, 25%는 청소년음악밴드인 ‘유자사운드”유자청’ 등에서 활동하는 등 음악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75% 정도가 사회에 복귀한 셈이다.

전 대표는 “결국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들도 사회구성원”이라면서 “이들이 음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법을 습득하면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리를 지켜가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마음을 연극으로 치유한다, ‘마음걸음’ 이금석 대표

이금석(36)씨는 “약 10년 동안 학교 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반의 일진들과 어울려 다니곤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공부에도 손을 뗐다. 장난기 많고 잘 어울리던 사교적인 성격이 180도 바뀌어서 간단한 통제에도 견디기 어려웠다. 이씨가 그나마 행복했던 시간은 교회에서 성극을 맡았을 때였다. 연기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주위에서 ‘소질 있다”잘한다’는 이야기에 야간전문대를 그만두고 서울예전 연극과에 입학했다.

이씨에게 연극은 치유 과정이기도 했다. 연극 공부와 함께 2년에 걸쳐 장기간 심리상담 과정을 거치면서 이씨도 점차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졸업 후, 이씨는 방과 후 교실에서 연극 수업 담당교사로 일을 시작했다. 이씨도 자신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 더 애착이 갔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것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해요. 근본적으로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괴롭히는 거죠.”

학교폭력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이씨는 예방교육을 연극과 접목시키는 사업을 시작했다. 연극 하는 선·후배를 모아 소셜벤처 ‘마음걸음’까지 창업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씨는 주중 방과 후에는 12개 학교에서 10회기 커리큘럼의 연극치유수업을 진행하고,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요청이 오는 대로 학교 폭력 예방극 수업도 맡는다. 지난해 예방교육을 한 학교만 100곳이 넘는다.

“기본적으로 치유 작업에는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해요. 저도 지금 3년간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애가 몇 명 있거든요. 만날 때마다 눈빛이 조금씩 차분해지는 걸 느껴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이들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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