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영양식 만들기부터 여성 인권 교육까지… “엄마가 바뀌면 가정·마을·사회가 바뀌죠”

[굿네이버스 네팔 맘센터] 네팔의 최빈곤지역 꺼이날리
아동노동으로 만든 벽돌 아닌 흙으로 맘센터 건물 지어
엄마들과 아동 교육도 맡아

맘센터 도서관에서 ECDC(한국의 유치원 같은 시설)에 다니는 네팔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맘센터 도서관에서 ECDC(한국의 유치원 같은 시설)에 다니는 네팔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만약 당신이 남자를 교육한다면 한 개인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만, 여성을 교육하면 한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엄마들이 바뀌면 가족이, 마을이, 지역사회가 바뀌어 갈 겁니다.”

지난 8월 7일 네팔 남서쪽 꺼이날리 시골 마을의 맘센터에서 만난 자나키(여·33)씨는 힘줘 말했다. 굿네이버스 네팔지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자나키씨 역시 아홉 살 딸이 있는 한 아이의 엄마다. 카트만두 대학에서 사회학·여성학 석사 학위까지 딴 보기 드문 여성 인재다. 그런 그녀가 몇 개월째 카트만두에 사는 딸과 남편과 떨어져 꺼이날리에서 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줄곧 카트만두에서 자라 지역사회의 삶을 잘 몰랐어요. 사회학·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지역사회 여성들과 밀착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1년부터 굿네이버스 네팔 카트만두 사무소에서 일하다 올해 4월 이곳 맘센터로 왔죠. 4개월이었지만, 이곳 맘센터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사람들이 변하는 게 느껴져요. 맘센터는 앞으로 훨씬 더 큰 변화들을 만들어 낼 겁니다.”

굿네이버스 네팔은 작년 8월 티카풀, 뻐뜨레이야 지역 1500가구를 대상으로 이곳 꺼이날리 지역에 맘센터 1호를 개소했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엑스까마야스(ex-Kamaiyas)라는 노예족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13년 전 네팔 정부가 노예들을 해방하자 갑자기 얻은 자유에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전 노예생활이 낫다’고 하는 이들도 있죠. 지역 주민이 주체의식을 갖고 자립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팔의 최빈곤 지역 꺼이날리. 인도 접경지역인 이곳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일자리를 찾아 인도로 떠났다. 생계유지를 위해 아이들도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성훈 굿네이버스 아시아권역본부장이 엄마와 아동의 교육을 위한 지역복지센터를 설립하기로 생각한 이유다. 이 지역을 방문한 변정수씨가 “엄마들을 위한 센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7000만원을 기부한 게 마중물 역할을 했다.

맘센터를 짓는 과정도 특별했다. 지역 아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벽돌 대신 흙으로 건물을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4개월이면 지었을 법한 건물 두 동을 짓는 데만 2년 가까이 걸렸다. 흙다짐 공법으로 건물을 짓는 법을 배우기 위해 직원들이 인도로 다녀오기도 했다. “현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어요.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면서 동시에 ‘왜 아동 노동으로 만들어진 벽돌을 쓰지 않는지’ ‘맘센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전달했죠. 기술을 배우면 이후 자기 집도 개보수할 수 있고요.” 양용희 굿네이버스 네팔지부 간사의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맘센터는 엄마들을 위한 교육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달 ‘굿마더스데이(Good Mother’s Day)’를 열고 ‘영양식 만들기’나 ‘대안 생리대 만들기’같은 실질적인 교육부터 ‘가족과 사회에서의 여성 차별’ 등 여성 권리에 관한 교육까지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15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는 소문을 타면서 지난달 70여명까지 늘어났다. ‘출산’ 관련 행사를 진행한 날에는 만삭의 참가자가 먼 길을 걸어 참가했다가 당일에 아이를 낳기도 했다. 네트라(20) 맘센터 운영위원회 대표는 “맘센터 운영은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이뤄진다”며 “매달 의견을 나누고 다른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한다”고 했다.

맘센터는 지역 아동을 돌보고 교육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ECDC(Early Childhood Development Center)가 그것. 우리나라의 유치원과 같다. 한 부모 가정 아동 중에서도 결연이 없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위생 관련 교육에서부터 성장·발달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아이들 각각의 활동과 발달 정도를 기록해 집에 ‘가정통신문’을 보낸다. 다섯살 된 아들 유니스를 ECDC에 보낸 엄마 자나티(여·23)씨는 “내가 요리를 할 때면 아들이 종종 ‘엄마 손 꼭 씻어야 해요’하곤 한다”며 “다른 엄마들과 함께 맘센터에 와서 교육도 듣고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주는 등 센터가 삶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맘센터는 현지 단체들과의 다양한 파트너십도 맺고 있다. 지역 띠카풀대학(Tikaur Multiple Campus)과 MOU를 체결하고 지역 아동 5명에게 1년에 7000루피 장학금이 돌아가도록 했다. 굿마더스데이 강의 때엔 대학 사회학 교수가 여성의 권리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현지 NGO인 ‘비욘드네팔(Beyond Nepal)’과도 협력해 대안 생리대 만들기를 함께 진행했다. 양용희 간사는 “맘센터가 완전히 지역주민들에 의해 운영돼 굿네이버스 네팔이 필요없는 날이 오길 바란다”며 지역 주민 자립을 1순위로 강조했다.

꺼이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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