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김경하 기자가 간다] ① “꿈만 꾸던 우리 아이 학습지도… 반가운 선생님이 생겼어요”

[김경하 기자가 간다] <1> 장애인가정 승환이네 멘토링 참여해보니

대학생 자원봉사 멘토로… 일대일로 학습·문화활동
올해부터 건강관리 집중

형·누나가 고민 들어주니… 아이들도 쉽게 마음 열어

멘토 “좋은 프로그램인데… 참여자 부족해 아쉬워”

승환(위)·준환(아래) 형제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승환(위)·준환(아래) 형제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딩동.” 아파트 문을 열자,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귀를 감쌌다. “사촌들이 놀러 와서 좀 소란스러워요.” 승환(8)이의 어머니 양차란(42)씨가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양씨는 승환이네 가족의 유일한 비장애인. 남편은 지체 2급, 큰딸 선영(11)이는 지적장애 3급, 승환이와 동생 준환(6)이는 뇌병변 2급 장애인이다. ‘어머니, 참 밝으시네요’ 라는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나도 모르게 장애를 ‘불행’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던 것에 흠칫 놀랐다.

거실로 들어서자 아이 둘이 소파 앞에 앉아 바퀴벌레 모양의 장난감을 들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이게 더 세~.” “아니야. 사슴벌레가 더 세다고!” 손님을 맞기 위해 준환이는 현관 근처까지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을 쓸며 다가왔다. “덜컥” 안쪽 방문이 열렸다. 승환이는 엄마의 부축을 받아 한발 한발 천천히 다가왔다. “승환아, 안녕.”

#1. 복지관에서 멘토링 봉사자 교육을 받다

승환이를 만나기 전, 사전준비가 필요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방화동에 위치한 강서뇌성마비복지관을 찾았다. 우정사업본부와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8년째 ‘장애가정청소년 성장-멘토링(mentoring)’ 학습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복지관이다. 5층 교육장에 들어가니 한 명의 남학생과, 5명의 여학생 자원봉사자가 앉아 있었다. 복지현장이 늘 그렇듯, 여초(女超)현상이 두드러졌다. 임지혜 사회복지사가 봉사자 교육을 시작했다. “승환이는 통합학교를 다니고 있어 또래 친구들과 같이 학습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필요하고요. 요즘 배가 많이 나왔어요. 운동도 꼭 같이 해주세요.”

멘토링은 12월까지 매주 한 번씩 이뤄진다. 총 32회 학습지원을 해주고, 신체학습도 병행한다. 올해부터는 건강관리가 강조되어 과정 중에 정기검진도 받는다. 멘티의 학교 선생님이나 학습지 선생님을 만나 학교생활을 파악하는 것도 필수다. 준학부모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효상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가족의 자녀들은 성장단계에 따라 많은 정신적, 심리적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지만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정서적 지지자가 없다”며 “대학생 형·언니·누나들이 멘토가 되어 멘티와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라고 했다.

기자와 동행할 멘토는 강영지(21·가톨릭대 사회복지학 3년)양. 강양은 “요즘은 사회복지학과를 다녀도 졸업 후 사회복지사를 하겠다는 애들이 거의 없을 정도”라며 “대학생활에 한 번쯤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어 신청했는데, 커리큘럼도 괜찮은데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질 않는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이어진 사회복지공무원의 자살 소식이 문득 떠올랐다.

#2. 강영지 멘토와 배승환 멘티의 첫 만남

토요일인 지난 6일 시작된 첫 멘토링 시간의 목표는 ‘친밀감 형성하기’. 강영지 멘토가 운을 뗐다. “12월까지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도 하고 재밌는 것도 할 거야. 자, 하이파이브!” 바닥에 짚고 있던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힘껏 손바닥을 쳤다. 자연스레 아이 콘택트(eye-contact)도 가능했다.

질문을 쏟아냈다. “승환인 취미가 뭐야?”, “놀러 가고 싶은 곳은 어디야?” 질문이 어려웠는지 “음~”을 연발하며 우물거린다. 기자정신으로 질문을 바꿔봤다. “놀이공원에 가는 건 어때?” 눈이 반짝였다. “막 돌아가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 타고 싶어요. 바이킹인가? 이렇게(손을 눈에 대면서) 눈 감고 타면 돼요. 그래도 전 기대돼요. 두근두근거려요.” 손짓까지 해가며 설명했다. 첫 말문이 트이자, 승환이의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렸다. “사람들 도와주는 경찰관이나 맛있는 거 만드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가족 소개를 부탁했다. “우리 아빠는요~ 보석 만드는 일을 해요. 아빤 제가 잘 걸을 때 제일 좋아해요. 다 나으면 엄마 일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요즘엔 빨래 개는 일을 돕는다는 말에 강영지 멘토와 기자는 박수를 쳤다. “우리 승환이 효자네.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

#3 장애아동에 대한 인식개선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다

지난 15일, 강서뇌성마비복지관을 찾았다. 승환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과 후에는 재활치료에만 매달려야 한다. 물리치료뿐만 아니라 작업치료(젓가락질하기 등 일상생활에 쓰는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 놀이치료 등 요일별로 스케줄이 다르다. 두 번째 만난 승환이는 이전보다 눈을 자주 마주쳤다. “오늘은 학교에서 국어, 수학을 배웠고요….” 대화도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승환이는 복지관 1층 로비를 벽을 짚으면서 절뚝거리면서도 계속 돌아다녔다. 걷기운동이다. 동생 준환이는 의자 팔걸이를 받침대 삼아 철봉처럼 매달렸다.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기어다니기도 하고…. 팔을 많이 사용해서 팔 힘이 엄청 세요.” 준환이가 작업치료를 받는 동안 어머니 양차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3세 때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했으니 벌써 5년째다. 양씨는 “치료를 받다가 안 받으면 악화된다”며 “처음엔 완치를 바랐지만, 지금은 평생치료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생활보호대상자라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지만, 학습지도나 과외는 꿈도 못 꾼다. 대학생 멘토가 반가운 이유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요?”란 질문에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었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승환이 꿈이 요리산데, 얼마 전에 짝꿍이 ‘장애인 요리사는 없다’고 놀렸나 봐요. 저한텐 덤덤하게 툭 던지듯이 얘기했는데, 지 아빠한테 가서는 울면서 얘기를 했나 봐요. 그 말을 듣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아빠가 ‘이제 시작이다’는 말을 하는데 겁이 덜컥 나기도 하고요.”

이어 양차란씨는 “승환이도 공놀이를 좋아하는데 체육시간이 되면 교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어야 한다”며 “학교에 대학생 형들이 찾아와서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같이 놀아주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모 기업 시각장애인 자원봉사자 모집에는 지원자가 넘친다는데,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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