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NGO 조직 전반 아우르는 ‘통합 시스템’ 개발 열풍

후원자 관리부터 인사·재무·회계까지… 클릭 한 번으로 해결
후원자는 해마다 느는데 NGO 인력은 그대로…
재정보고서 분석에만 직원 20명이 달라붙어도 꼬박 한 달이나 걸려

지난해 4월, 기아대책에 태스크포스(TF)팀이 꾸려졌다. 모금팀, 후원자관리팀, 전산팀, 재무팀 등 각 부서에서 모인 실무자들이었다. 이들은 매일 아침 컴퓨터 화면 앞에 모여 앉았다. 오후엔 각 부서로 돌아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고, 밤에는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다. 새로운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오정은 기아대책 스마트웨이(Smartway)팀 총괄 간사는 “후원자들은 해마다 늘고 있는데 인력은 그대로라서 산더미같이 쌓인 단순 문서작업 때문에 정작 중요한 후원자 관리 및 예우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며 “후원자 관리부터 인사, 재무, 회계 등 조직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시스템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억 단위의 개발 비용이었다. TF팀은 시스템 개발 이후 달라질 업무 효율성을 정량적으로 측정, 분석했다. 오 간사는 “재정보고서를 분석하려면 직원 20명이 달라붙어도 꼬박 한 달이 걸리는 반면 통합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클릭 한 번으로 모금 특성별 분석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다”며 “분석 업무에 대한 20명의 인건비를 계산해봤더니 시스템 개발비로 1억원을 투자하면, 5년간 100억원 이상 절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비용 때문에 난색을 표하던 자문위원단과 임원진들도 “당장 추진하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오 간사는 “과장급 실무자 10명와 함께 TF팀을 꾸리고, 억 단위의 시스템 개발비를 승인한 건 24년 기아대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후원자와의 소통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통합 관리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업무 시간이 단축되면서 후원자 상담 및 맞춤형 서비스가 늘었고, 후원자들의 단체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지고 있다.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제공
후원자와의 소통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통합 관리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업무 시간이 단축되면서 후원자 상담 및 맞춤형 서비스가 늘었고, 후원자들의 단체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지고 있다.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제공

◇비영리단체, 통합시스템 개발 열풍

최근 기부 문화가 확산되면서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는 비영리단체들이 늘고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시스템만으로는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모금액이 증가했기 때문. 어린이재단은 지난 1월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한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단체의 예산 관리는 물론, 후원자가 기부를 한 순간부터 수혜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이 온라인상에 나타나는 종합 회계 프로그램이다. 개발 과정만 1년이 걸렸다.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은행 CMS(자동이체출금)와 자동으로 연결돼 수정이 불가능하고, 담당자의 기입 이력이 남는 등 투명성이 대폭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굿네이버스는 2011년 9월, 해외아동관리시스템을 만들었다. 최근 3년 새 일대일 결연 아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아동의 정보를 관리, 보호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효성 검사 기능도 넣었다. 아동의 키가 갑자기 줄었다거나, 아동의 사진과 정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 등 오류 데이터를 자동으로 찾아준다. 지난해엔 후원자 응대, 모금 현황, 회원 관리 기능을 통합한 회원 관리시스템을 만들었다. 2년 새 회원이 5만명 이상 늘어난 밀알복지재단도 현재 후원자 관리시스템을 개편 중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는 2010년부터 매년 단계별로 후원자 관리·모금·배분·회계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통합하고 있다.

후원자와의 소통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통합 관리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업무 시간이 단축되면서 후원자 상담 및 맞춤형 서비스가 늘었고, 후원자들의 단체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지고 있다.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제공
후원자와의 소통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통합 관리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업무 시간이 단축되면서 후원자 상담 및 맞춤형 서비스가 늘었고, 후원자들의 단체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지고 있다.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제공
후원자와의 소통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통합 관리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업무 시간이 단축되면서 후원자 상담 및 맞춤형 서비스가 늘었고, 후원자들의 단체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지고 있다.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제공
후원자와의 소통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통합 관리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업무 시간이 단축되면서 후원자 상담 및 맞춤형 서비스가 늘었고, 후원자들의 단체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지고 있다.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제공

◇단체 실무자와 후원자 모두 만족도 높아져

통합시스템을 마련한 비영리단체 실무자들은 “이제야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동모금회는 모금 관리시스템을 개발한 2010년 이후 연말 풍경이 달라졌다. 지난해 공동모금회의 모금액은 약 3700억원. 데이터베이스에 구축된 기부자 수는 100만명에 달한다. 게다가 연말에 모금이 집중되기 때문에 공동모금회 직원들은 12월만 되면 ‘기부금 영수증 전쟁’에 시달렸다. 엑셀에 정리된 후원자의 기부금과 금융결제원에서 보내준 소득공제 파일을 일일이 대조해야 했기 때문. 담당 직원 16명이 한 달을 꼬박 일해야 영수증 발송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 안에 모든 작업을 마칠 수 있어 업무 시간이 30분의 1로 줄었다. 신상욱 공동모금회 관리본부 운영지원팀장은 “후원자 전체 선택 버튼을 클릭하고, 출력만 하면 된다”면서 “한 화면 안에서 후원자의 기부 건수, 금액, 소득 공제, 처리 내역 등 모든 내용을 확인,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원자들과 훨씬 가까워졌다”는 비영리단체도 많다. “기부자 현황을 파악하는 데 급급했던 예전과 달리 후원자 상담 등 맞춤형 서비스에 집중하게 됐다”는 것. 게다가 기부 이후의 모든 과정을 온라인상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 점에서 단체의 투명성도 높아졌다. 이처럼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비영리단체 맞춤형 관리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있다. ㈜휴먼소프트웨어가 개발한 MRM(후원자관리시스템), ㈜스마트레이저의 ‘스마트레이저’, ㈜엔지오웨어의 ‘나눔셈’, ㈜더존비즈온의 ‘G20’ 등이 바로 그것. 국제구호개발 NGO 팀앤팀 관계자는 “회원 규모에 따라 월정액을 내고 사용하면 된다”면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직접 개발할 비용이 없는 작은 비영리단체들엔 적합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모금 트렌드 읽고 보안 강화해야

국제양육기구 컴패션은 지난 2008년 후원자 관리 통합 시스템, ‘컴파스4.0’을 구축했다. 결연 아동의 편지를 온라인으로 봉사자가 직접 번역하고, 후원자가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후원금 납부 내역, 편지 도착 여부, 기부금 영수증 팩스 전송 등을 전화 한 통화로 확인할 수 있는 ‘ARS 통합 서비스’도 개시했다. 시스템 개발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국내 한 모금 방송을 통해 후원 어린이 수가 4만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개인 기부자의 증가 속도를 예측, 후원자 관리 시스템을 미리 준비한 덕분에 컴패션은 그해 성장률 92%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기부자 성향을 파악해 미리 대비하라”면서 “대체로 직원 수 300명이 되는 때가 전사적으로 시스템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후원자가 많아질수록 시스템 보안도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최근 비영리단체들이 시스템 관리 조직을 확대하고, 전산 전문 인력을 내부에 배치하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IT지원센터를 꾸린 뒤, 전산 담당자를 6명으로 보강했다. 월드투게더도 올해 IT 인력을 1명 충원했다. 공동모금회 관리본부 직원들은 매년 전국 지회를 돌며 통합 시스템 사용 방법과 주의점 등을 교육하고 있다. 매년 기부자 성향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시스템 업데이트 주기를 앞당기는 단체도 많다.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기부금 해지율, 감소율 등 다양한 통계를 참고해 후원자 성향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수시로 수정하고 있다”고 했다. 월드비전 실무자는 “국제 본부에서 후원자 관리 시스템 ‘아이비전(iVision)’을 도입한 뒤, 한국 기부자와 모금 환경에 맞게 응용프로그램을 수정하고 업데이트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최태욱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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