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해외 진출 기업 글로벌 CSR 현주소] ② CSR 관련 법 엄격한 베트남… 한국 기업간 네트워크 필요해

해외 진출 기업 글로벌 CSR 현주소 <2> 베트남
한국 기업 활동 인정해 베트남 정부서 적극 지원
현지 주민들의 CSR 평가 한국, 대만보다 높지만 일본·싱가포르보다 낮아
기술 교육, 의료 봉사 때 허가 절차 복잡하고 현지 전문가 없어 한계

2011년 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이하 코트라)는 베트남 주민 13만5000명을 대상으로 해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평가하는 조사를 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CSR 점수는 5점 만점에 3.27점으로, 일본(3.89점)과 싱가포르(3.64)보다 낮았다. ‘더나은미래’는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인 두산중공업(두산비나), 신한베트남은행, 효성, 실크로드하노이, 다비육종 등 5곳의 ‘베트남 CSR 현황과 고민’을 들어봤다.

2009년 베트남에 '두산비나'를 설립한 두산중공업은 안빈섬에 10억원에 달하는 해수 담수화 설비를 기증했다. /두산중공업 제공
2009년 베트남에 ‘두산비나’를 설립한 두산중공업은 안빈섬에 10억원에 달하는 해수 담수화 설비를 기증했다. /두산중공업 제공

“베트남 정부는 공공 사업 파트너를 선정할 때, 해외 기업의 CSR 활동을 평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두산중공업 사회공헌 담당자)

두산중공업은 2009년 베트남 꽝웅아이성(省)에 ‘두산비나’를 설립함과 동시에 CSR 활동을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던 중, 회사 인근 지역에 있는 안빈 섬을 발견했다. 주민 500여명이 사는 이 섬엔 전기와 물이 공급되지 않고 있었다. 두산비나는 10억원에 이르는 해수 담수화 설비를 기증했고, 덕분에 안빈 섬엔 매일 100톤 규모의 물이 공급되고 있다. 이후 베트남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 두산비나가 진행하는 CSR 활동을 베트남 정부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일례로 현지 아동을 위한 필수 영양소 공급 사업을 할 당시, 베트남 보건 당국이 직접 나서서 아동을 발굴해줬다. 또한 베트남 정부는 두산비나를 표준 화력발전소 개발 사업 파트너로 선정해, 몽중화력발전소 발주를 요청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베트남 정부와 목적, 방향, 지원 수준, 효과성 등 세부 사항을 함께 토론하고 결정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설명했다.

◇CSR로 기업 이미지 높여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개방적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외국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베트남 진출 기업들 역시 이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1995년 호찌민 지점을 시작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신한은행은 2006년부터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소외 지역에 ‘사랑의 학교’를 짓고,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베트남 적십자사와 연계해 심장병 아동 수술도 지원한다. 매월 정해둔 ‘그린데이’에는 전 직원이 봉사단 유니폼을 입고 지점 주변의 주거 시설과 공원 등을 청소한다. 지난해에는 베트남 기획투자부로부터 장관상도 받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부터 베트남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CSR 교육을 진행해 현지 CSR에 전문성을 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매출액이 700억원에 달하는 건설용 콘크리트 혼화제 전문 기업인 ㈜실크로드시앤티의 베트남 현지 법인 ‘실크로드하노이’는 2011년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을 맞아 ‘2NE1과 함께하는 베트남 동행 콘서트’를 주관했다. 공연 수익금 2500만원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80명의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지난해 12월엔 공장 인근 마을 복지센터를 방문해 쌀, 에어컨, 의류, 모자 등을 기증했다. 이충원 실크로드하노이 법인장은 “회사 제품이 일반 소비재가 아니라서 현지 주민과 접점이 없었는데, 콘서트 이후 베트남 청년들 사이에서 실크로드하노이가 친밀한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면서 “아직 CSR 초기 단계인데 생각보다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2007년 베트남 현지 법인을 설립한 효성의 의료 봉사단 '미소원정대'가 소외 지역 주민을 치료하는 모습. /효성 제공
2007년 베트남 현지 법인을 설립한 효성의 의료 봉사단 ‘미소원정대’가 소외 지역 주민을 치료하는 모습. /효성 제공

◇딱딱한 베트남 체계, CSR 활동에 차질

그러나 기업들은 “베트남에는 CSR 관련 법제도가 미비해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데 불편함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최대의 돼지 육종(우수한 품종 개량 및 보급)기업인 다비육종은 2005년 베트남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당시 베트남은 세계 3위의 양돈 국가였지만, 양돈 기술이 부족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비육종은 베트남 빈증성 인근에 양돈 연수원을 짓고, 한국의 우수 인력을 투입해 기술 전수를 시작했다. 양돈 서적을 발행해 베트남 현지 농가 주민들을 교육하고, 이들을 한국으로 초대해 현지인 강사도 배출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딱딱한 법령 때문에 CSR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 다비육종 관계자는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라서 양돈 기술 교육을 할 때마다 집회 허가를 받도록 한다”면서 “허가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효성 사회공헌 담당자도 “의료 봉사를 하려면 베트남 인민위원회, 의료 관련 부처, 적십자사 등 승인받아야 할 기관이 너무 많다”면서 베트남 정부의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지적했다. “약품, 설비를 반입할 때나 사용할 때도 엄격한 제한이 따른다”고도 했다. 2007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한 효성은 2011년부터 의료 봉사단 ‘미소원정대’를 구성해 소외 지역 주민의 질병을 치료하고 있다. 현지에 필요한 적정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봉사단 ‘블루챌린저’도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제트엔진 원리를 도입해 연기 발생을 대폭 줄인 화덕 ‘블루스토브’를 개발했다. 저렴한 가격에도 성능이 뛰어나 현지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지 전문가 부재… ‘협력’이 대안이다

베트남 진출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현지 사정에 밝은 CSR 전문가를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충원 실크로드하노이 법인장은 “베트남에 CSR 자문 기관이 없고, 한국 회사들끼리 정보 교환도 없어서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한국 기업들이 모여서 함께할 수 있는 CSR 활동이 많이 개발되면 좋겠다”고 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끼리 또는 비영리단체와 ‘협력’해 부족한 전문성을 채우겠다는 의견도 많았다. 다비육종 관계자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양돈, 축산 관련 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회공헌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효성 사회공헌 담당자는 “베트남 적십자사와 협력해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CSR 활동이 단순히 기업의 지역 봉사 활동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민간단체의 유기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유진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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