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가수 나들] 골목 콘서트로 무대 생기고 골목상권도 생기 찾았죠

前 일기예보 멤버 나들 삼겹살집서 콘서트 열어
소문나자 손님들 몰려와 가게도 가수도 모두 윈윈
인터넷서 공연신청 받아 어려운 가게부터 돕기로

“네가~ 좋아, 너무~ 좋아. 내 모든 걸 주고 싶어~.”

지난 9일 저녁 8시,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골목의 작은 커피 전문점. 테이블을 치우고 의자 20여 개를 놓으니 미니 공연장으로 변했다. 일곱 살짜리 꼬마부터 30~40대까지 자리를 채운 관객들은 바로 가까이에 있는 가수가 신기한 듯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불렀다. ‘에그 셰이크(egg shake·악기 종류)’를 흔들며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가수는 아내와 결혼에 골인하게 된 스토리를 담은 ‘색다른걸’, 다섯 살 늦둥이를 키우는 행복감을 표현한 ‘퍼니러브(funny love)’ 등 노래마다 자신의 에피소드를 곁들였다. 이날 특별한 콘서트를 연 가수는 바로 일기예보 멤버인 ‘나들'(본명 박영열·44)씨. 일기예보는 1990년대 ‘좋아좋아’ ‘인형의 꿈’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를 끈 남성 듀오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나들의 무대는 바로 ‘골목 콘서트’다.

‘골목콘서트’는 일기예보의 멤버였던 나들이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음식점, 카페에서 펼치는 소규모 공연이다. /지웍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골목콘서트’는 일기예보의 멤버였던 나들이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음식점, 카페에서 펼치는 소규모 공연이다. /지웍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일기예보는 2000년 5집 활동을 끝으로 해체했다. 이유는 나들의 건강 악화였다. 태어날 때부터 간염바이러스가 있었던 나들은 불규칙한 생활과 과로로 간경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그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전북 진안으로 내려가 3년간 요양을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2010년 6월, 극적으로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나들은 “10년 정도 활동을 하지 못해 마음이 급했다”며 “주위에서 말렸지만 수술 후 3개월이 지나고 바로 사무실을 알아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다. 방송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프로듀서(PD)를 만나 CD를 홍보했지만, 번번이 대형 기획사에 밀렸다. 그는 ‘공연을 통해 팬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낙성대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바로 앞에 삼겹살집이 있었어요. 작년 4월쯤이었나…. 따뜻한 날에 작업실 밖으로 나왔는데 건너편에 이모님이 좀 무료하게 앉아계신 거예요. 에너지를 드리고 싶었어요. 노래를 부르니깐, 이모가 막 주위 분들한테 전화하면서 ‘우리 집에 가수가 왔다’며 자랑하시는 거예요.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공연 한 번으로 삼겹살집 주인아주머니와 가족은 나들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벽에 나들의 사진과 사인을 붙이고, 노래도 틀어놓으면서 손님들한테 “이 가수가 단골”이라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팬클럽에 가입하기를 직접 권하기도 했다. 나들은 “주인아주머니가 팬클럽이 100명 돌파하면 우리 집에서 콘서트를 열어달라고 제안을 했다”며 “이후로 이 삼겹살집은 공연도 하는 재미있고 독특한 곳이라는 소문을 타면서 찾는 손님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는 ‘낙성대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엔 한 팬을 위한 이벤트였다. 낙성대 삼겹살집의 성공을 보니 문득 이를 공연 콘셉트로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무대가 필요한 나들에게도, 영세한 자영업자에게도 윈윈(win-win)이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밀려 골목 상권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다는 좋은 의미도 있었다. 나들은 자기 공연의 이름을 ‘골목 콘서트’라고 정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식당과 카페 등을 찾아 공연을 열었다. 나들은 지난 1월부터 매주 한 번씩 골목에 있는 카페, 식당에서 ‘골목 콘서트’를 열고 있다. 경기 동탄·시흥, 서울 안암·보라매 등 지역도 다양하다. 앙코르 공연이 쇄도할 정도로 반응도 뜨겁다.

‘골목 콘서트’를 희망하는 곳은 인터넷 카페(http://cafe.naver.com/nadle119)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신청서는 나들이 직접 검토한 후, 필요할 경우 인터뷰도 진행한다. 정말 외진 곳에 있거나 어려운 상황일 경우 우선순위가 부여되는 식이다. 나들은 “지난 16일 공연은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도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는 가게에서 신청했다”며 “상황이 어려운 만큼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공연해서 가게를 확 살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미상_사진_사회적기어_나들_2013보통 카페에서는 1만5000원 정도에 커피 한 잔과 공연을 함께 제공한다. ‘골목 콘서트’를 희망하는 가게는 공연으로 한 번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매출은 보장받고, 공연을 통해 경쟁력 있는 곳으로 색깔을 찾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공연 수익은 콘서트 티켓 판매금 중 일부다.

“‘골목 콘서트’를 캠페인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홍대 클럽에서 노래했는데, 한 번 공연할 때 많이 벌어야 5만원이더라고요. 보통은 2만~3만원이고. 5명이 무대에 올라가면 거의 못 받는 거죠. 사실 클럽에서 노래하는 후배들은 무대는 없고 노래는 부르고 싶으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운동이 확산되면, 많은 수익은 아니지만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무대도 생기고, 가게도 살리고…. 골목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계획은 신예 가수들과 함께 ‘골목 콘서트’를 진행하며 엔터테인먼트계의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400대 1의 지독한 경쟁률을 뚫고 실용음악과에 들어가도 변변히 노래할 곳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나들이 한 가지 바람을 덧붙였다.

“콘서트를 후원해주는 이들이 생겨서, 입장료의 많은 부분을 가게에 더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더 많은 가게가 참여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또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이 음식점을 방문하면 금세 맛집이 되잖아요. 저희도 ‘골목 콘서트 1호점’ 이렇게 플래카드만 걸어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골목 콘서트’ 문화가 올해 안에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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