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정유진 기자의 기빙 트렌드] ① 대학·NGO 달라진 모금 현장

고액 기부자 관리하던 대학, 소액 기부자 잡기에 나선 이유는?

‘아너소사이어티’ 여파로 고액 기부자 뺏긴 후 정기 후원자 절실해져…잠재적 기부자 DB 필요

소액에서 고액으로 시선 돌린 비영리단체와 ‘노하우 공유’ 한목소리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는 이화여대 09학번 후배입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신가요?”

전화기 너머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학 후배라는 말에 반가움이 밀려왔다. 용건을 묻자 후배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학교에서 선배와 후배를 연결하는 ‘선배라면’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매달 1만원씩 학과 직속 후배에게 장학금을 주는 캠페인인데요. 지금까지 선배 2000분이 참여해주셨습니다. 혹시 함께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작은 나눔이 모여 큰 사랑을 이룬다. 고액 후원자 관리에 집중하던 대학들도 이제 소액 정기 후원자 모집에 나섰다.
작은 나눔이 모여 큰 사랑을 이룬다. 고액 후원자 관리에 집중하던 대학들도 이제 소액 정기 후원자 모집에 나섰다.

매달 1만원. 크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막상 기부를 하려고 보니 기자 정신이 절로 발동했다. ‘어떤 후배에게 장학금이 지원되느냐’ ‘장학금이 전달된 건 언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일시후원도 가능한가’ 등 쉴새없이 질문을 던졌다. 후원 상담은 20분 동안 계속됐다. 후배는 조목조목 친절하게 답변을 해줬고, 기자가 기부를 약속하자 거듭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선배라면’ 문구가 새겨진 오뚜기라면 2개가 집으로 배달됐다. 후원금 완납확인서, 손으로 쓴 감사카드도 함께였다. 일주일 뒤엔, ‘기부자 예우카드’가 도착했다. 학교 도서관 출입은 물론 교내 편의시설 이용시 할인받을 수 있는 카드였다. 기부 금액에 따라 제공되는 예우 내용을 보니 ‘후원 금액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한동대는 소액 정기 후원자에게학생, 교수가 직접 재배한 무를 선물하고 있다.
한동대는 소액 정기 후원자에게학생, 교수가 직접 재배한 무를 선물하고 있다.

최근 대학 모금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액 후원자 관리에 집중하던 대학들이 소액 기부자 잡기에 나섰다. 2010년 말, ‘선배라면’ 캠페인을 시작한 이화여대는 소액 기부자 3000명의 후원으로 총 18억8000만원을 모금했다. 연세대 상경대학은 2010년부터 1000원 나눔 캠페인 ‘블루버터플라이’를 진행하고 있다. ‘하루에 1000원을 기부하는 선배 30명을 모아, 후배 1명의 4년 학비와 해외 연수 비용을 마련하자’는 캠페인이다. 상경대학에서 시작된 ‘1000원 나눔’은 다른 단과대학으로 확대됐고, 지금까지 44억1392만원이 모금됐다. 카이스트도 2011년부터 학술정보문화관을 짓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하루 1000원을 기부하는 ‘디딤돌’ 캠페인을 실시했고 약 7억원을 모았다. 그 외 경희대·인하대·경기대·성결대 등도 1만원 이하 소액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대학들이 최근 3년 새 소액 기부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모금 전문가들은 “고액 모금을 진행하면서 잠재적 기부자들의 데이터베이스(이하 DB) 구축이 시급하단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고액 기부는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예측이 불가능해서 연간 사업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반면 소액 기부는 금액은 적어도 정기 후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대학의 비전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기에 적합했던 것.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진행하는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의 영향으로 대학의 고액 모금이 어려워졌단 의견도 많았다. 실제로 “대학에 1억원 기부를 약속했다가 마음을 바꿔 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는 2010년부터‘선배라면’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매달1만원씩 후배를 지원하는 선배들에게 오뚜기 라면 2개를 선물한다.
이화여대는 2010년부터‘선배라면’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매달1만원씩 후배를 지원하는 선배들에게 오뚜기 라면 2개를 선물한다.

뒤늦게 소액 모금에 눈을 뜬 대학과 반대로 비영리단체는 최근 고액 모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더나은미래’가 100억원 이상 모금한 비영리단체 9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5개 기관이 “고액기부 전담 부서가 있거나 올해 전담 인력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대학은 비영리단체의 소액 모금을, 비영리단체는 대학의 고액 모금 노하우를 서로 배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5년간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가 최근 한동대 대외협력팀으로 자리를 옮긴 김신균씨는 “NGO의 소액 모금 노하우를 대학에 응용하니 성과가 금방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달부터 ‘갈대상자 다시 엮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기존 후원자를 대상으로 ‘기부금 증액’과 ‘신규 후원자 추천’을 독려하는 캠페인이다. 한 달 만에 후원금(작년 대비)이 30% 이상 증가했다. 소액 정기 후원자에게 대학생과 교수가 직접 재배한 무를 선물하는 프로그램도 반응이 뜨겁다.

황신애 건국대 발전기금본부 모금기획부장은 “소액 모금을 통해 신규 기부자를 발굴하고 DB를 구축할수록, 고액 모금도 증가할 것”이라면서 “향후 3~5년간 소액 모금 시스템을 연구, 투자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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