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촛불 켜놓고 자다 천막 다 태워… 무서워서 불도 못 켜요”

태양광 램프가 절실한 빈민촌
햇볕 안 드는 판자촌 쪽방 대형화재 위험은 물론
사다리 통해 다니다보니 밤에 움직이다 다치기도

“이젠 막내아이가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꼭 촛불을 끄고 잡니다.”

지나 알마리오(38)씨의 말이다. 그녀는 자전거 인력거를 끄는 남편 빅토르(42)씨와 여섯 명의 자녀를 뒀다. 이곳은 필리핀 나보타스시의 빈민촌인 굴라얀 지역. 지나씨의 집안은 대낮임에도 동굴같이 어두웠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나무 사다리는 폭이 넓어 아이들이 오르내리기엔 위험해보였다. 2층엔 외벽이 없이, 나무 기둥 사이로 천막을 이어붙여 놓았다. 집밖에서 보니 2층 나무 기둥 사이로 빨랫줄을 연결해 아이들 빨래가 가득 널려있었다. 유일하게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게 빨랫줄이었다.

지난 19일 하트하트재단은 필리핀 굴라얀 지역에서 86개의 태양광 램프를 지원했다. 사후관리를 위해 태양광 램프마다 일련번호를 붙이고, 주민들의 사인을 받은 후 배포했다.
지난 19일 하트하트재단은 필리핀 굴라얀 지역에서 86개의 태양광 램프를 지원했다. 사후관리를 위해 태양광 램프마다 일련번호를 붙이고, 주민들의 사인을 받은 후 배포했다.

“남편이 자전거를 끌어 하루 150~200페소를 벌지만, 매일 자전거 주인에게 100페소씩 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별로 없어요.”

1개 8페소(216원 가량)짜리 초를 사서 촛불을 켜는데, 그녀는 이 촛불 때문에 두 번이나 화재를 당했다. 작년 6월 촛불을 켜놓은 채 깜빡 잠이 들어, 플라스틱 촛대와 나무 바닥까지 태웠다고 한다. 지난 2월에는 밤에 촛불이 쓰려져 2층 천막을 다 태워버렸다고 한다. 이후 잘 때면 절대 촛불을 켜지 않지만, 답답할 때도 많다. 지나씨는 “2층에 자던 막내가 깜깜한 밤에 볼일을 보러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1층 바닥으로 떨어져 팔 한쪽이 3㎝가량 찢어졌다”고 했다.

굴라얀 빈민촌 주민들에게 빛은 생명과 직결된다. 300가구 중 정식으로 전기를 끌어다쓰는 가구는 20가구뿐. 전기 없는 가구 중 보조계량기를 달아 전기를 빌려쓰는 가구가 194가구. 86가구는 아예 전기가 없다. 합판과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판자촌에서 촛불을 쓰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발생한 대형화재가 4차례나 된다.

어른 두 명이 누울 만한 쪽방에서 7세부터 4개월 된 자녀 5명과 함께 사는 조세파 아리스가도(30)씨는 “부엌이 따로 없어서 방 한쪽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석유 버너를 놓아 음식을 해먹는다”며 “버너 위에 초를 세워놓고 쓰다가 불이 헝겊에 옮겨붙었고 하마터면 버너가 터질 뻔했다”고 말했다. 조세파씨의 남편도 인력거 운전사인데, 일당 150페소를 버는 살림살이에서 하루 전기료로 20페소를 내는 건 무리라고 했다.

브라얀 브라케(20)군도 캄캄한 밤에 사다리로 내려오다 낙상을 입었다. 브라얀군은 가난 때문에 어렵게 입학한 대학도 그만뒀다고 한다. 1년 전, 평생 자전거 인력거를 끌어온 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려 쓰러졌다. 일자리가 없어 가끔 공사장 인부로 일하는 브라얀군은 “고등학교 내내 밤마다 이웃집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이젠 그 이웃도 이사를 가버렸다”며 “앞으로 장학금을 신청해 가까운 대학이라도 다시 재입학하고 싶다”고 했다. 브라얀군의 꿈은 훌륭한 IT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지난 19일, 하트하트재단은 굴라얀 지역에 86개의 태양광램프를 전달했다. 하트하트재단 문후정 팀장은 “태양광 램프는 가난한 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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