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지속 가능한 개발, 변화의 현장⑦· 타지키스탄]암흑 속 마을… 소수력 발전소로 빛 되찾아

정부 차별받은 카마로프 전기 공급 하루 2시간 뿐
발전소 공사비 지원에 주민들 직접 건설 나서 한 달 25㎾ 전기 생산
바구니 제작 교육으로 여성들도 자립 나서고 감자·꿀·과일 재배 등 지속적 수익 창출 기대

“주민들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병찬 굿네이버스 타지키스탄 지부장이 카마로프 계곡에 세워진 회색 건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고장 난 채 방치된 수력발전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1991년 시작된 타지키스탄의 내전이 6년 동안 계속되면서, 발전소들은 작동을 멈췄다. 그러나 정부는 발전소를 수리하거나, 전력을 생산할 비용을 지원하지 않았다. 카마로프 마을이 내전 당시 반군이 주둔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공급되는 전기량은 하루 2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정부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채 차별을 받아온 카마로프 마을. 이들에게 겨울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타지키스탄 카마로브 마을에는 하루에 2시간밖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소수력 발전소가 세워진 뒤, 주민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되찾았다.
타지키스탄 카마로브 마을에는 하루에 2시간밖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소수력 발전소가 세워진 뒤, 주민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되찾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되찾은 주민들

“도심에 나갔다가 마을로 돌아올 때면,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암흑이 돼버린 우리 마을엔 빛이 필요했습니다.”

카마로프 지역 면장인 라지마프(남·45)씨는 3년 전을 떠올렸다. 마을에 전기를 공급할 방법을 궁리하던 때였다. 그는 마을 어귀에서 한국인을 만났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산속으로 들어온 이병찬 지부장이었다.

타지키스탄은 전 세계에서 여덟째로 수자원을 많이 보유한 나라다. 연간 3000억㎾ 전력 생산이 가능하지만, 현재 활용하는 전력량은 전체 수자원의 5%에 불과하다. 개발 비용과 전문 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한 환경이다. 게다가 카마로프 마을은 타지키스탄 내에서도 수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 이병찬 지부장은 2011년 낙차를 이용한 소수력 발전소를 설계하고, 공사에 필요한 예산 3000만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빛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주민들은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밭을 가진 주민들은 땅을 내놓았고, 청년들은 30명씩 조를 짜서 공사를 도왔다. 다른 이들은 포플러 나무를 잘라서 깎은 뒤, 전신주를 만들어 땅에 심었다. 마을이 하나가 되니, 3개월 만에 공사가 완료됐다. 한 달 평균 25㎾의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완성된 것.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을위원회를 구성해 전기 사용 지침을 만들었다. 매달 1600원을 걷어서 1000원은 전력 관리자에게 지급하고, 600원은 향후 수리를 위해 마을 기금으로 적립했다. 라지마프씨는 “한 가정당 전구 3개, 콘센트 1개까지 사용 가능하다”면서 “지침을 어기면 해당 가정에 일정 기간 전기 공급을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한 달 평균 5만원을 벌던 압두살론(남·26)씨는 “램프 기름을 사는 데 매달 2만원을 쓰느라, 일곱 식구가 항상 배가 고팠다”면서 “이제는 한 달 1600원만으로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마을 원로인 마흐마트(남·64)씨는 “병원에 전기가 들어와서 환자 치료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2012년 카마로브 인근 마을에도 소수력 발전소 1개를 설립했고, 올해도 1곳에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꿈을 꾸기 시작한 카마로브 여성들

카마로브 여인이 수공예 바구니를 만드는 모습.
카마로브 여인이 수공예 바구니를 만드는 모습.

3평 남짓한 공간, 카마로브 마을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닥에는 빨간색·검은색·흰색 나뭇가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뭇가지를 엮자, 다양한 모양의 바구니가 만들어졌다. 6년 전, 남편과 이혼한 노로바하피자(여·25)씨는 “4시간에 바구니 하나를 완성할 수 있다”면서 “이제 더 이상 아들이 굶지 않게 됐다”고 웃었다. 타지키스탄 남성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로 떠난다. 갑작스레 가장이 된 여성들은 일거리를 구하기 어려워 생활고를 겪는다.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한 채, 16~18세 나이에 조혼하기 때문이다.

굿네이버스는 2011년부터 전문 강사를 초빙해, 마을 여성들을 대상으로 단계별 바구니 제작 교육을 진행했다. 수공예 바구니는 시장에서 하나당 10~20달러에 판매되는 고급 상품이다. 한 달에 10개만 만들어도, 타지키스탄 월평균 소득인 50달러를 훌쩍 넘는다. 원일형 굿네이버스 타지키스탄 사무장은 “카마로브 마을에 널리 서식하고 있는 버드나무 종류들을 활용했다”면서 “나뭇가지를 잘라도 금방 새순이 나오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재료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응도 뜨겁다. 2011년 5월, 지역 특산품 행사에 진열한 수공예 바구니는 전시되자마자 동이 났다. 대통령에게 대접하는 특산품 바구니로 사용하기 위해, 먼 곳에서 일부러 바구니를 사러 온 면장도 있었다. 원 사무장은 “조합을 결성해서 여성들의 안정적인 수입과 자립을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을 자원 활용한 친환경 적정기술

카마로브 마을에는 마을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2011년, 씨감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카마로브 마을은 고도가 높아 낮이 길고 기온이 낮기 때문에, 감자를 재배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다. 굿네이버스는 국내외 농작물 수확 전문가와 협력해 바이러스에 강한 씨감자를 연구, 감자를 총 40톤 수확했다. 기존 수확량의 2배에 달한다. 알이 굵고 맛이 좋아 기존 감자보다 가격도 2배 이상 높다. 후도이 나자르 굿네이버스 타지키스탄 프로젝트 매니저는 “그동안 타지키스탄이 러시아에서 씨감자를 수입해왔기 때문에, 카마로브산 씨감자가 유통되면 국내외에 굉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봉, 건과일, 양계, 과수 묘목 사업도 진행 중이다. 카마로브 지역의 꿀은 품질이 좋아 고급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고, 사과·배 등 과일 재배에 적합한 기후 조건이다. 문제는 낙후된 설비, 지원 부족으로 생산량이 적다는 점이다. 이병찬 지부장은 “라쉬트 군으로부터 소득 증대 사업을 위한 땅 2000㏊를 기증받고, 코이카로부터 6억원을 지원받아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모두 마을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해당 상품이 카마로브의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마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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