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뭉쳐야 산다” 공공시장 진출하는 사회적기업들

“청소 일을 오래 했는데, 지금은 전에 없던 자긍심이 생겼어요.” 3일 오전, 영하 20도의 혹한에도 진춘희(50·㈜푸른환경코리아)씨의 표정은 밝았다. 진씨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대곡역의 환승 통로를 청소 중이었다. 막대걸레로 바닥을 미는 모습이 경쾌해 보였다. 환승을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이 통로에 들어차자 작업을 멈추고 걸레를 한쪽으로 치웠다. 13년간 철도역사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던 진씨는 현재 사회적기업의 직원이다. 대곡역의 청소 작업을 책임지는 반장 역할도 맡고 있다. 진씨는 “철도 계약직으로 일할 때보다 (직업)교육도 잘 받고, 사람들이 대하는 것도 달라 일이 더 즐겁다”고 했다.

㈜푸른환경코리아 소속 직원이 경의선 대곡역 환승통로를 청소 중이다.
㈜푸른환경코리아 소속 직원이 경의선 대곡역 환승통로를 청소 중이다.

◇사회적기업 향한 공공시장 문 열려

청소 전문 사회적기업 ㈜푸른환경코리아는 지난해 7월부터 대곡역을 포함, 22개의 경의선 철도역사 청소를 맡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가 시행한 입찰을 통해서다. 코레일은 과천-안산, 경춘선, 경의선 등 3개 구간의 철도역 청소관리에 대해 사회적기업만 참여할 수 있는 ‘제한입찰'(계약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여 진행하는 방식)을 실시했다. 계약 기간은 21개월로, 총 100억원 수준의 입찰이다. 사회적기업에는 초대형 규모의 거래다. 청소 사회적기업 중에서 가장 큰 매출(50억 규모)을 자랑하는 ㈜푸른환경코리아는 과천-안산 구간을 따낸 후, 경의선은 ㈜두성시스템과, 경춘선은 ㈜다우환경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입에 성공했다.

정희석 ㈜푸른환경코리아 대표는 “청소 전문 사회적기업이 60여개 있는데, 매출 규모가 5억~6억원 정도 되는 곳이 많다”며 “실적이나 역량이 부족한 기업들은 공공시장 입찰에 참여하기 힘들기 때문에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했다. 대표 기업인 ㈜푸른환경코리아가 관리와 진행을 맡고, 함께 참여하는 기업은 정산이나 서류 정리 등을 지원하는 형식이다. 지분 비율은 9대1이다. 남석찬 ㈜두성시스템 대표는 “공공시장 물량을 수주한 경험이 생기면 기술력과 신뢰도가 향상돼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며 “코레일 입찰을 발판 삼아 원자력발전소, 수자원공사 등의 공공기관에도 다른 사회적기업들과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① 지난해 10월 열린 사회적기업 공공구매 합동 워크숍. ② 사회적기업 ㈜푸른환경코리아의 건물 외벽 청소 작업 현장. ③ 사회적기업 '우리가만드는 미래' 가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주말 행복투어 활동 모습.
① 지난해 10월 열린 사회적기업 공공구매 합동 워크숍. ② 사회적기업 ㈜푸른환경코리아의 건물 외벽 청소 작업 현장. ③ 사회적기업 ‘우리가만드는 미래’ 가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주말 행복투어 활동 모습.

◇’성장의 토대’ 공공시장, 뭉쳐서 뚫어라

한국사회적기업협의회는 지난해 대선 정책 과제 발표를 통해 “사회적기업의 규모화와 성장을 위해 사회적 경제 부문의 주류가 되는 공공시장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판로 개척, 지속성, 안정성 등 사회적기업의 약점을 메워준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다우환경의 이성일 대표는 “민간 시장에서는 일을 하고도 공사 금액을 못 받는 등의 변칙적인 근로형태가 많다”며 “하지만 공공시장은 1년 이상의 정기 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교육 사회적기업의 연합체인 서울지역교육문화네트워크의 김인선 대표는 “공공시장과 거래하며 생기는 공신력이 민간 시장에서 경쟁하는 힘이 된다”고 했다.

이런 이점에도 공공시장의 문턱은 높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공시장을 설득할 만한 실적을 갖춘 사회적기업이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기준, 공공기관의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액은 1853억원(사회적기업 사업보고서)으로, 전체 구매액 99조8494억원(공공구매 종합정보망)의 0.19%에 그친다. 고용노동부 권고 수준(3%)에 비해 한참 미흡하다. 사회적기업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변형석 지속관광사회적기업네트워크 상임이사는 “작년에 서울시에서 관광 바우처 제도 관련 입찰이 진행됐는데, 사회적기업에 대한 가산점보다 기존 실적에 대한 가점이 훨씬 높았다”며 “이는 사회적기업이 영리기업과 개별적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구조로 초기 단계에는 사회적기업들이 같이 판을 짜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적 가치 함께 깨닫는 기회도

지난해 초 서울시는 ‘주말행복투어’의 공모를 진행했다. 시내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주말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할 사업자를 모집한 것. 교육 사회적기업 ‘우리가만드는미래’ 등 6개 사회적기업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모에 참여했고, 강서·양천·구로 등을 포함하는 제4권역의 운영기관으로 선정됐다. 우리가만드는미래를 포함, ㈔신나는문화학교 자바르테, 코리아헤리티지센터, 놀이나무 등이 참여했다. 이현주 우리가만드는미래 실장은 “프로그램마다 주제를 달리하여 1년(48회차) 동안 주말을 책임지는 형식”이라고 했다.

이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강점을 잘 살려 ‘나는야 문화탐험가'(우리가만드는미래·문화체험), ‘내고장박물관장'(놀이나무·자기주도형학습), ‘나는야 내고장 풍류유람단'(해리티지·문화시설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인선 서울지역교육문화네트워크 대표는 “모여서 일하면 공통으로 추구할 가치를 되새기게 된다”며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동업자가 됨으로써, 대규모의 사회적기업이 기술이나 경영노하우, 인력관리 등을 중소규모의 사회적기업에 전수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공동 대응, 출발은 업종 네트워크 형성부터

문가들은 사회적기업 업종별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면 공동대응은 좀 더 쉽다고 충고했다. ‘우리가만드는미래’ 컨소시엄은 2011년 말 결성된 서울지역교육문화네트워크 회원사 여섯 곳이 그대로 뭉친 케이스다. 재활용대안기업연합회에 소속된 컴윈, 서울SR센터, 에코그린, 컴퓨터재생센터 등 사회적기업 네 곳은 도시광산사업(폐가전제품에서 금속자원을 찾는 사업)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공기관과 거래하기도 한다. ㈜푸른환경코리아가 회장사로 있는 청소대안기업연합회도 마찬가지다. 정희석 푸른환경코리아 대표는 “기업 40개 정도가 네트워크 안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를 지역별로 안배하거나 입찰을 딸 수 있는 가능성에 따라 (컨소시엄) 조합을 만드는 등 업계의 공생 발전을 도모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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