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미래를 바꾸는 ‘희망공동체’ 협동조합 시대 개막

내달 1일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5인 이상에 법인격 부여, 시행 앞두고 관심 집중… 상담 하루 100건 넘어
스페인 ‘FC바르셀로나’, 미국 ‘AP통신’ 등 혁신성 기반으로 성공
막연한 기대 경계하고 신념 공유한 소수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

“매주 발기인이 될 만한 분들을 만나고, 투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알아볼 생각입니다. 법이 발효되는 흐름에 맞춰 속도를 내야죠.”

1인 출판사를 운영 중인 김태영 대표(씽크스마트)와 송영민 대표(도서출판 시금치)는 최근 문화출판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동종업계 동료들이 같은 고민을 나누면서부터 시작된 논의다.

1 성남만남돌봄센터의 참여 주민들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의 원리와 의미를 배웠다. 2 썬키스트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감귤 재배자로 구성된 협동조합으로 유명하다.
1 성남만남돌봄센터의 참여 주민들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의 원리와 의미를 배웠다. 2 썬키스트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감귤 재배자로 구성된 협동조합으로 유명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등록된 출판사 수가 7만개가 넘는데, 이 중 70% 이상이 소위 ‘1인 출판사(종업원 수 5인 미만)’입니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좋은 콘텐츠를 얻기도 힘들고 제작·유통 과정에서도 벽에 부딪히는 부분이 많아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눴던 고민은 올 초 7명의 1인 출판업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협동조합.

송영민 대표는 “1인 출판사 100여개가 모이면, 출판 공정 중에 항상 똑같이 하는 인쇄, 물류, 마케팅 등의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며 “여기에 대형 출판사들만 해왔던 시장조사나 테마기획전 등도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1인 출판사만의 장점인 독자와의 자유로운 교류, 출판 단계마다 새로운 방식의 협력 시스템을 만드는 것 등도 협동조합을 통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다. 5인 이상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시장 지형도에 상당히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본부장의 말처럼 법 시행에 맞춰 협동조합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대거 포착되고 있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협동조합에 대한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하루 평균 100통이 넘는다”고 한다. 휴대폰 사용자들이 통신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고 문의하기도 하고, 유치원 30여곳이 모여 급식재료를 도매로 구입하는 협동조합 형태, 아파트 대표자회의 협의회에서 아파트 단지별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드는 방법, 심지어 예술대 졸업생을 모아서 예술가협동조합을 만드는 법 등 각 분야에서 문의가 쇄도한다.

기존 사회적기업들은 사회적협동조합에 관심이 많다. 이번에 발효되는 법에서는 공공성이 강조되는 협동조합에 대해 사회적협동조합(비영리법인)의 법인격을 부여한다. 오는 12월 17일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성남만남돌봄센터’. 지역 저소득층이나, 일자리가 필요한 주민들이 모여 돌봄사업을 펼치는 자활공동체다.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의 사업단 형태였지만, 법 발효에 맞춰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독립하게 됐다. 박정선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장은 “10년 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 교육을 하고 독립시켰는데, 공동체 기업의 성격을 담아낼 수 있는 법인격이 없어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그동안 독립된 기업들이 모두 주식회사 형태이다 보니, 공동체 형태여야 하는 성격의 사업체가 일부 욕심 있는 구성원에 의해 사유화되는 폐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영애 성남만남돌봄센터 예비대표는 “자활 공동체에 참여했던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모두가 리더가 되는 자발적인 조직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1년여의 준비 기간은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올 초 준비를 시작할 당시 “시키는 대로 잘하고 있는데, 왜 협동조합 같은 걸 하느냐”는 반응이, 기대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지속적인 교육과 인식개선 덕분이다. 참여 주민 채부남(46)씨는 “처음에는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뭔지 몰라서 두렵기도 했지만, 조합원 모두가 우리 직장의 주인이라는 걸 이해하면서 이젠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다”며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하게 될 것 같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마음도 커질 것 같다”고 했다.

최혁진 본부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원, 인맥, 역량 등을 모으는 것이 혁신이고, 협동조합은 혁신 조직”이라고 했다. 협동조합 성공모델로 손꼽히는 스위스의 ‘미그로(스위스 인구의 25%가 조합원으로 가입된 유통협동조합)’, 이탈리아의 ‘레가코프(협동조합들의 연합체)’,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조합원들이 출자해 만든 축구팀)’, 미국의 ‘AP통신(언론사 협동조합)’ 등은 모두 그런 혁신성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는 경계 대상이다. 최 본부장은 “현대 사회는 소상공인들이 모인 작은 규모의 협동조합만으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며 “지역의 협동조합끼리 연합체를 만드는 노력을 통해 기반을 다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기태 소장 역시 “함께 한다고 무조건 이익이라는 생각보다, 함께 했을 때의 경제적 이익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초기단계에서는 신념과 비전을 확실히 공유한 3~4명 정도가 모여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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