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Cover Story] ‘세계 여자아이의 날’ 인도 현지 르포

소녀들의 미소… “가난한 우리에게도 꿈은 있어요”

타라 쿠마리(16)양을 만난 것은 지난 14일 오전이었다. 곱고 수줍은 표정의 얼굴이 꺼칠꺼칠한 맨발과 대조적이었다. 5남매와 부모를 포함한 일곱 식구가 사는 곳은 어두컴컴한 단칸방 하나. 이곳 차가운 돌바닥에 때묻은 이불을 덮은 채,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염소똥을 치우고, 물을 긷고, 아침을 준비한 후 동생들 등교를 돕는다. 일곱 살 때부터 하던 일이라 익숙하다.

3개월 전부터 쿠마리양은 아침마다 30㎞ 떨어진 시내 공사현장으로 간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멘트나 모래, 벽돌 등을 짊어지고 나른다. 하루 8시간 꼬박 일해서 번 돈은 130루피(1루피=약 20원). 이 중 교통비 명목으로 30루피를 떼고 나면 100루피가 남는다. 너무 힘들어 이틀 걸러 하루꼴로 쉬어야 한다. 이렇게 번 돈은 한 달에 1500~2000루피로, 우리 돈 4만원쯤 된다. 이 돈이 일곱 식구의 생활비 전부다.

쿠마리양은 초등학교 1학년을 채 끝내지 못했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 했고, 염소 10마리를 돌봐야 해서”라고 답했다. “왜 공사장에서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는 “아빠가 건축 현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3개월 동안 일을 못해서”라고 답했다. 그녀에겐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오빠가 있다. “오빠가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오빠가 어떻게 공부를 그만두느냐”고 반문했다.

1 국제아동후원단체‘플랜’인도지부에서 후원하는 우다이푸르 지역의 학교에서 만난 여자아이들. 개발도상국에 태어난 여자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하고 돈을 벌러 나서야 한다. 2 라드하양은 다섯명의 동생을 돌보느라 평일 낮임에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3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지 못한 타라 쿠마리(16)양이 쓸 수 있는 건 자신의 이름뿐이다.
1 국제아동후원단체‘플랜’인도지부에서 후원하는 우다이푸르 지역의 학교에서 만난 여자아이들. 개발도상국에 태어난 여자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하고 돈을 벌러 나서야 한다. 2 라드하양은 다섯명의 동생을 돌보느라 평일 낮임에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3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지 못한 타라 쿠마리(16)양이 쓸 수 있는 건 자신의 이름뿐이다.

◇엄마 병간호 때문에, 집안일 돕느라 학교를 그만두는 여자아이들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거리의 라자흐스탄주 한 도시인 우다이푸르. 기자는 지난 13일과 14일, 이 지역 일대의 여자아이들을 잇따라 만났다. 국제아동후원단체 ‘플랜인터내셔널’이 펼치는 여아 권리신장 캠페인 ‘Because I am a Girl'(가난한 나라에서 여자아이로 산다는 것), 그 현장을 엿보기 위해서였다.

바당가마을에 사는 다드미(12)양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다드미양이 쓸 수 있는 글씨는 오로지 자신의 이름뿐이다. 폐렴에 걸린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인터뷰 도중 마을 어른이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쉬는 게 좋으냐, 학교에 가는 게 좋으냐”고 하자, 그녀는 억울한 듯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새벽에 일어나 청소와 음식 준비, 동생 등교 준비, 설거지, 소 풀 먹이기, 저녁 준비까지. 내가 왜 빈둥거리느냐.”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운 다드미양. 그녀는 선물로 받은 공책에 수줍은 듯 자신의 이름을 써 보였다.

다드미양과 같은 마을에 사는 라드하(12)양. 대낮임에도 학교가 아닌 집에 있었다. 라드하양의 부모는 몇년 전 이혼했다. 새아빠와 엄마, 6남매가 한집에 사는 곳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흙돌집. 방 한구석에 나무 땔감을 때는 부엌이 있었다. 이날 라드하양은 병원에 간 엄마와 새아빠를 대신해, 다섯 동생을 돌보느라 결석을 해야 했다. 세 살짜리 막냇동생은 낯선 손님이 어색한 듯 라드하양에게 꼭 달라붙었고, 다섯 살짜리 여동생은 콧물을 흘리며 계속 칭얼댔다. 라드하양은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며 “고등학교인 12학년까지 다니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드하 마을에 사는 캄라 쿠마리(14)양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중학교에 해당하는 9학년에 다닌다. “언니가 이 동네에서 여자로는 처음 고등학교에 갔어요. 지금 교실에는 남학생이 25명인데, 여학생은 10명뿐이에요. 학교를 졸업해 유치원 교사 같은 존경받는 직업을 갖고 싶어요.” 그녀의 엄마 팜미(35)씨는 “나는 학교를 아예 못 갔지만, 두 딸은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했다.

◇조혼과 교육기회 박탈, 성폭력 등에 노출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을 기다리는 건 가난과 차별, 폭력이다. 30~40년 전, 큰오빠의 대학등록금을 벌기 위해 여공, 버스 안내양 등으로 고되게 일해야 했던 우리나라의 여자아이처럼 말이다. 플랜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전 세계 64만명의 여자아이가 초등교육을 받지 못한다. 개발도상국 소녀 7명 중 1명이 18세가 되기 전 결혼을 하고, 이 중 4만여명이 이른 나이에 출산을 한다. 10대의 어린 산모는 20대 여성보다 출산 중 사망할 확률이 2배나 높다. 15세 이하 여자아이들에게 발생하는 성범죄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50%에 달한다.

‘플랜인도’의 릴리 비시바나탄(49)씨는 “인도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 5~6학년 무렵(10-11세)에 학교를 많이 그만둔다”며 “중학교가 되면 10㎞가 넘는 거리를 걸어 다니느라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는 등 자전거 없이는 학교를 다니기 힘들다”고 말했다. 비시바나탄씨는 “인도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여성이 남성에게 결혼지참금을 주는 문화가 남아있어, 여자아이를 부담스러워하는 가난한 부모들이 낙태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플랜인터내셔널은 개발도상국 여자아이의 권리를 보호하고 양성평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글로벌 캠페인 ‘Because I am a girl’을 진행해오고 있다. 왜 여자아이일까. ‘플랜코리아’ 대외협력홍보팀 김혜현 대리는 “여자아이들은 세계의 빈곤 순환을 깰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교육받은 여자아이는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갖게 되고, 결혼을 늦게 하는 문화가 생기고, 건강한 자녀를 낳아 학교에 보내게 돼 그 이익이 가족을 비롯해 지역사회에까지 분배된다”고 말했다. 플랜인터내셔널은 그동안 여학생 장학금을 지원하고, 에이즈 예방 성교육을 실시하고, 여성직업전문학교를 통한 창업교육과 훈련을 하는 등 개발도상국 여자아이를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그 결과 UN은 오는 10월 11일을 ‘세계 여자아이의 날(International Day of the Girl Child)’로 공식 지정했다.

◇플랜인터내셔널, 여자아이 권리 신장 글로벌 캠페인 벌여

인도에서 자그마한 희망의 싹을 발견했다. 플랜인도의 지원을 받는 우다이푸르의 NGO ‘세바 만디르(Seva Mandir)’는 40년 넘게 여성들의 자립과 자조를 돕는 대표적인 풀뿌리 단체다. 드하마을의 유스 리소스 센터(Youth Resource Centre)에서 만난 교사 맘타(여·30)씨의 눈망울은 초롱초롱했다.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지금 10여개 마을을 돌며 청소년기의 여자아이를 돕는 일을 한다. “예기치 않은 임신, 임금 체불, 성폭력 등 도시에 나가기 전에 미리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고, 어려울 때 연락할 곳을 알려준다”고 했다.

“저는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결혼했어요.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었지만, 임신을 해서 그만둬야 했어요. 하지만 아이를 출산한 후 못다 한 공부를 다시 했고, 지금은 고등학교인 10학년에 다니고 있어요. 직접 어려움을 겪어봤기에, 여자아이들을 돕는 이 일은 제 천직입니다.”

힘없고 가난했던 여자아이는 어느덧 강한 여성이자 엄마가 되어 있었다.

‘플랜인터내셔널’ 단체는…

1937년 설립된 75년 역사의 국제아동후원단체 ‘플랜인터내셔널’은 비종교, 비정치, 비정부 국제기구로, UN경제사회이사회의 협의기구이다. 한국은 1953년부터 1979년까지 26년간 플랜의 후원 받아오다, 1996년 세계 최초로 수혜국에서 후원국 자격으로 전환하였고, 플랜코리아는 플랜인터내셔널의 한국지부이다. 현재 대한민국, 영국, 미국 등 20개 후원국이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전 세계 50개국의 2800만여명의 어린이와 가족을 후원하고 있다.

●후원문의: 02-790-5436

(www.plan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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