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여성 과학자여, 일이든 육아든 그대가 행복한 일 하세요”

로레알 여성생명과학상 수상자 이공주 이화여대 교수
20년전 남성중심의 과학계 여성 과학자 1300명 모아 ‘여성과학기술인회’ 만들어
작년엔 세계여성과학자 회장으로 선임돼 활동… 여성 과학자 위해 팔 걷어

“나이 먹어도 열심히 일하는 게 좋겠구나, 하는 걸 젊은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네요.”

이공주(57) 이화여대 바이오융합과학과 교수는 올해 11년째인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분초를 쪼개서 생활해온 습관 때문인지, 말이 빠르고 정확했다. 이 교수는 현재 직함만 여러 개다. 이화여대 대학원장,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INWES) 회장, 한국세포·분자생물학회 부회장, 교육과학기술부 기초연구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등이다.

이 교수는 프로테오믹스(단백질 분석기술) 세계적인 권위자다. 암 전이,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중요 단백질의 기능을 연구해왔다. 그녀의 지론은 “과학이 발전하려면, 한두 명의 천재가 아니라 그들을 키우고 응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사회에서 아직 소수자인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을 중요시한다. 이화여대 약대와 카이스트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애초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일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카이스트 남자 졸업생에게는 행정고시에 준하는 3급을 줬지만, 여성에게는 그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고 연구자의 길에 들어섰다. 귀국 후 첫 직장은 대전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대덕의 수많은 정부 출연기관 연구원 200명 중 여성은 서너 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이 교수는 “여성 연구원끼리 모임을 만들자”고 주도했고, 이것을 토대로 1993년 1300여명의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가 탄생했다.

이공주 이화여대 교수는 “미래를 미리 고민하지 말고 지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을 하라”고 젊은층에게 충고했다. /로레알코리아 제공
이공주 이화여대 교수는 “미래를 미리 고민하지 말고 지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을 하라”고 젊은층에게 충고했다. /로레알코리아 제공

“외톨이처럼 살다가 모임을 만드니 너무 좋아했어요. 수위실에서 발기인대회를 했어요(웃음). 모임이 만들어지자 회장님이 처음 고위층이 하는 과학기술회의에 참여했죠. 중요한 의사결정이 거기서 이뤄진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이후 2002년에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덕분에 국가기관과 정부출연기관 등에서 여성과학자들이 많이 채용됐죠. 한국의 사례를 설명했더니, 몽고와 대만에서도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이 교수는 “한 조직에서 여성이 5%뿐이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3분의 1이 되면 굉장히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쪽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10%도 안 되었던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연구개발 참여율은 2010년에는 17.8%로 향상됐다.

2011년 이 교수는 제3대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 회장으로 선임됐다. 유네스코가 지원하는 과학·기술·수학·공학 등 4개 분야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협력단체로, 전 세계 60개국에서 25만명이 활동하는 모임이다.

“제3세계에서 볼 때는 선진국은 멀게 느껴지는 반면, 한국은 굉장히 좋은 롤모델이 돼요. 작년에 ‘아시아·태평양지역 여성 과학자 모임(APNN)’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의 ‘여성과학기술인 지원법’ 등을 설명하면 다들 궁금해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노하우를 물어봅니다. 앞으로 유스캠프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장성한 두 자녀를 둔 이 교수에게 수많은 젊은 여성 과학자 후배들은 고민을 토로한다. 이 청춘들에게 늘 충고하는 말이 있다. “네가 가장 행복한 게 모든 사람이 가장 행복한 길이다”라는 것.

“젊은 친구들은 미리 재봅니다. ‘이걸 하면 돈을 잘 벌까’ 하고. 그런데 미래를 보는 게 얼마나 허상인가요. 앞으로 80년을 더 살 텐데…. 80년 전인 1930년대에는 페니실린도 발명되지 않았을 때예요. 그냥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즐거워서 열심히 하면 어느새 키가 커 있어요. 어떻게 회사 1년차와 10년차, 30년차가 같아요? 과학기술은 시간이 지나는 만큼 다 지식이에요.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기 힘들어 그만두려는 후배들에게도 ‘아이 때문에 하고 싶은 연구를 못 했어’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해요. 자신이 가장 행복한 길을 택해야죠. 여성들이 일하는 가치를 인정해주고, 사회가 그 육아를 좀 도와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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