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12가지 핵심과제] ⑤ 노인- 은퇴노인 3인의 일자리 찾기

생산적 복지가 답… 맞춤형 일자리 늘려야

보험회사 부장 은퇴한 고유석씨
보험회사 부장 은퇴한 고유석씨

예상치 못한 퇴직 후 24시간 편의점 점주 10년
일자리 찾는 중

“72시간 동안 잠 못 자고 일한 적도 있었어요. 쉬울 것 같아 선택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고유석(63)씨는 지난 2002년 54세의 나이로 대형 보험회사인 K사 부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한창이던 구조조정 여파로 예상치 못한 퇴직을 한 것. “막연히 ‘나는 아니겠지’라고만 생각해 은퇴 준비도 거의 못했던 상황”이라고 당시를 기억하는 고씨는 “대한민국에서 직장 다니면서 은퇴 준비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고씨에게 은퇴는 ‘편안한 노후’와는 거리가 멀었다. 늦은 결혼을 한 탓에 자녀 2명이 모두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양육비 부담은 고스란히 남은 상태에서 소득만 끊겼다. 고씨는 “국민연금을 10년 넘게 냈는데, 퇴직하고 나니 월 80만원 정도 받더라”면서 “무조건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퇴직금 등으로 만든 목돈 2억5000만원을 지인에게 맡겼다가 선물투자로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다급해진 고씨는 자영업으로 눈을 돌렸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 조건을 따져 선택한 것은 당시 막 생겨나던 ’24시간 편의점’이었다. 아파트 담보 대출 1억원과 편의점 본사 대출 1억원 등 2억원으로 서울 삼성동에 편의점을 오픈했다. 자주 다니던 친숙한 곳이 편의점이니만큼, 쉽게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편의점은 가족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고객과의 관계도 힘든 부분. 고씨는 “보험회사에서 고객서비스 교육까지 맡았었기 때문에 서비스는 자신 있었지만 정말 별의별 사람과 상황이 많다 보니, 손님과의 마찰도 가끔 있었다”고 한다.

편의점 점주 생활 10년. 고씨는 지금도 아침 10시에 나와서 새벽 1시쯤에 귀가한다. 고씨는 “편의점을 운영하며 아이 두 명 뒷바라지를 잘했다. 월수입도 만족할 만큼 올랐다. 하지만 이제 두 번째 은퇴시기도 고려해야 할 때”라고 했다. 몸도 많이 지쳤고, 무엇보다 정말 원하는 일을 찾고 싶다는 것.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를 아느냐”는 질문에는 “날 원하는 곳과 내가 원하는 곳이 맞으면, 또 지속 가능하다면 참여할 의사도 있다”면서도 “그런데 나 같은 보험회사 출신들은 마땅히 참여할 만한 게 없더라”고 덧붙였다.

중학교 교장 은퇴한 김은배씨
중학교 교장 은퇴한 김은배씨

42년 교사생활 경험 살려
맞벌이 부부 아이들 지도

42년간 교직을 지켜오다, 지난 2008년 월곡중학교장 자리를 끝으로 정년 퇴임한 김은배(67)씨. 김씨는 월 200만~300만원 정도의 공무원 연금으로 생활이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사회에 보탬이 되는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다. 김씨는 퇴임과 동시에 모 대학의 외래교수로 활동하는 한편, 설문조사 요원, 주차단속 요원 등 은퇴한 시니어가 참여할 수 있는 정부·지자체 프로그램들을 두루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김씨가 느낀 것은 보람보다는 실망감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2년 전 국가 노동실태 설문조사를 위해 100여 가지 문항이 적힌 설문지를 들고 5인 이상 소규모 사업장을 돌았다. 김씨는 “설문 조사를 받으러 중소기업 담당자를 방문하면 귀찮아하거나 거부하는 사례도 많았다”며 “설문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는 업체 관계자도 있었다”고 했다. 주차단속 요원은 더 힘들었다. 주차관리공단 소속 직원을 따라 서울 삼성역부터 강남역까지 걸으며 불법주차 차량을 적발하고 딱지를 끊는 것이었다.

그는 “50분 내내 걷다가 10분 정도 쉬었는데, 매일 아침 4시간 동안 계속 걷다 보니 노인들이 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며 “특히 할당량을 채우려는 공무원들을 쉴 새 없이 쫓아다니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김씨는 최근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았다. 강남시니어클럽이 진행하는 ‘애프터 스쿨(After Schoolㆍ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강남 지역에서 학습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거기에 적합한 노인 인력을 파견하여 수익을 만드는 시장형 프로그램으로, 주로 전직 교사 출신들이 참여한다. 주말에는 주례를 봐주는 일도 한다. 한국주례전문인협회와 연결되어, 주례가 필요한 사람의 의뢰가 들어오면 순번대로 현장으로 파견되는 것. 보수는 한 번에 3만5천원이다.

김씨는 “현재 주3일,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직접 방문해서 2시간씩 학습지도를 해주고, 주말을 이용해 주례 일을 나간다”며 “교사 경험을 살려 아이들을 돕는 것에 만족하는 편인데, 시간당 7500원밖에 안 되는 교통비 정도의 보수 때문에 회의적인 동료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나의 경우 경험한 것을 사회에 베푼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지만, 돈벌이가 필요한 사람들은 사실상 버틸 수가 없다. 봉사형 일자리와 생계형 일자리를 구분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학교수 은퇴한 최의소씨
대학교수 은퇴한 최의소씨

내가 가진 기술 나눠주며
개발도상국서 봉사 온 힘

지난 2010년 코이카(KOICAㆍ한국국제협력단)의 중장기자문단 프로그램을 통해 에콰도르에 1년간 기술 봉사를 다녀왔던 최의소(72)씨. 고려대 환경공학과 교수로 활동하다 2007년 정년퇴임한 최씨는 “1992년 미국의 한 콘퍼런스에서 선진국의 기술을 개도국에 지원하는 ‘기술봉사’의 개념을 처음 알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정년퇴임 후에는 내가 가진 기술을 필요한 곳에 나눠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방학 때마다 연변 과학기술대를 비롯해, 중국이나 인도의 대학들을 찾아 기술전수를 위해 노력했던 최씨에게 퇴직 4년 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최씨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성격의 기술봉사단체가 코이카에 의해 만들어진 것. “힘들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늙은이인데도 뽑아줬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이 더 컸다”고 당시를 기억하던 최씨는 “가족들이 너무 걱정을 해서 망설였던 순간도 있지만, 결국 아내가 함께 가는 것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교수 시절에 비해 해발 2800m의 타지 생활은 고됐다. 매일 에콰도르 정부(주택 및 도시개발부)에 출퇴근하며 상하수도 기술을 공유하고, 현장도 누볐다. 최씨는 “언어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면서 “자료 같은 것을 받아오면 문장을 통째로 구글 자동번역기에 돌려가며 공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1년간의 해외 봉사활동을 마치고 작년에 귀국한 최씨는 지금도 엔지니어링 기업이나 ‘나눔과 기술’ 같은 비영리단체의 자문위원 활동, 논문 집필, 발표 준비 등으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최씨는 “에콰도르에 다녀온 것은 내겐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이미 겪어오며, 함축적으로 모아왔던 경험들을 꼭 필요한 곳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는 것. 최씨는 “7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가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면서 “30년간 굉장히 급격한 발전을 이뤘고, 그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부분이 이슈화되면서, 관련 기술도 축적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걸어온 길을 앞으로 걸어갈 개도국에 전달하는 것은 매우 보람있는 일”이라고 했다. 최씨는 “건강만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보람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도 정부나 민간의 채널을 동원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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