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봉사로 마음의 문 ‘활짝’… 학교폭력 우린 몰라요

청소년 자원봉사 단체

서울 청원고 ‘비밀이에요’
지역고 연합 ‘안다미로’
‘반딧불가족 봉사대’
“우리 반이 좀 유명해요.”

이상현(17)군은 서울 상계동 청원고등학교 2학년 8반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 반 수업에 들어오는 걸 좋아한다. “분위기가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같은 반 김병우(17)군은 “우리 반은 왕따, 학교폭력 이런 거 없어요. 다른 애들은 학교에서만 만나지만, 우리는 토요일에도 함께 모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잖아요. 그러니 결속력도 더 다져지는 것 같아요”라고 자랑한다.

2학년 8반 아이들에겐 남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40명 전체가 20명씩 나눠 ‘창동 청소년 문화의 집’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직접 쿠키를 만들어 지역의 노인시설과 아동시설을 방문한다. 오는 5월 26일에는 4번째 봉사가 계획된 날이다. 학급 전체가 지속적인 자원 봉사활동을 하는 사례가 드문 만큼, 이들은 드러내는 것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학급회의 끝에 나온 봉사단체명도 ‘비밀이에요’다.

청원고 2학년8반 봉사단체 ‘비밀이에요’의 이상현(17·왼쪽)군과 김병우(17·오른쪽)군.
청원고 2학년8반 봉사단체 ‘비밀이에요’의 이상현(17·왼쪽)군과 김병우(17·오른쪽)군.

◇봉사가 가져온 특별한 변화

변화를 가져온 건 안미혜 선생님이다. 작년까지 고3 담임을 맡아온 안씨는 올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한 해 동안 꾸준히 봉사하는 학급을 만들겠다’는 것. 안씨는 “고3 담임을 하면서 대입 수시 때 아이들이 자기소개서나 추천 같은 요소들에 대해 무딘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담임으로서(대입 수시전형에서) 진정성 있게 학생들을 추천하고 싶어서 학급 전체가 함께 해보는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호응해줬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1월부터 지역의 복지단체 등에 개별적으로 연락했지만 반응이 냉담했다. “일회성 행사, 보여주기식 봉사에 지쳐 있는 반응들이었어요. 남자 애들이다 보니 더 꺼리시는 것 같았어요.” 안씨는 결국 자원봉사자와 지역의 수요처를 연결해주는 ‘창동 청소년 문화의 집’에 연결을 시도했다. 이 역시 순탄치는 않았다. ‘창동 청소년 문화의 집’ 김동일 간사는 “학교에서 온다고 해서, 처음에는 수행평가나 ‘스펙쌓기’ 같은 거라 생각하고 색안경을 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꾸준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변화를 보고 싶어하는 선생님의 의지가 굉장히 강했다”고 덧붙였다.

봉사를 시작한 지 두 달. “남자애들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장난스러웠어요. 왜 시설에서 남자애들을 꺼리는지 알겠더라고요. 쿠키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드린다는 것도 창피해하는 눈치고, 시간이나 메워보자는 애들도 있었어요. 근데 어느새 아이들에게서 진지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안씨가 느낀 아이들의 변화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안씨는 “장애인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의 일대일 멘토-멘티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기관과 너무 늦게 연결돼 기존 프로그램에 편입되다 보니 아이들이 진정성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반 분위기가 달라질 정도니, 희망은 있다. 안씨는 “잘 정착되면 장기적으로 리더십이나 사회성, 직업연계성 면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설명했다.

 ①중·고교생 가정 21팀으로 구성된 반딧불가족봉사대는 지난 2010년 8월 발대식을 거행한 이후, 정규 및 비정규 봉사를 병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②같은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모여 만든 ‘안다미로’학생들이 연탄배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③청원고 2학년 8반 아이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비밀이에요’ 아이들이 장애인 시설에 전달할 쿠키를 만들고 있다.

①중·고교생 가정 21팀으로 구성된 반딧불가족봉사대는 지난 2010년 8월 발대식을 거행한 이후, 정규 및 비정규 봉사를 병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②같은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모여 만든 ‘안다미로’학생들이 연탄배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③청원고 2학년 8반 아이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비밀이에요’ 아이들이 장애인 시설에 전달할 쿠키를 만들고 있다.

◇청소년 자원봉사, 스펙쌓기를 벗어나다

청소년 자원봉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의무 봉사(중학교 8시간, 고등학교 20시간) 시간만 채우려 했다면, 최근에는 지속적인 봉사를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또한 뻔한 틀에서 벗어나 자기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 진정성을 더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지난 2008년 만들어진 지역고등학교 연합 자원봉사 단체인 ‘안다미로’는 기존 복지관 프로그램에 한계를 느끼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청소년 자원봉사단체다. ‘안다미로’란 ‘차고 넘치도록’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현대고·영동고 학생들로 구성됐는데, 최근에는 서울고, 세화고 학생들도 참여하는 등 그 범위가 넓혀졌다. 매 기수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자원봉사활동을 펼친다. 현재 주축인 4기(총 10명)는 장애인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안다미로 4기 (남학생)회장 고규현(17·영동고 2년)군은 “장애우들과 같이 그림을 그린 후 액자로 만들어 걸어주거나, 우리가 직접 디자인한 벽화를 그려주기도 한다”며 “장애우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안다미로는 대학에 진학한 안다미로 1기생 선배들이 만든 봉사단체와 연합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형을 중심으로 지난 2010년 8월 탄생한 ‘반딧불가족봉사대’는 학생뿐 아니라 부모까지 함께 참여하는 가족봉사단이다. 반딧불가족봉사대의 강은향 회장은 “중·고교생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필요할 때 봉사하기를 원하는데, 기관에서는 1년 이상의 지속성을 갖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조건에 맞춰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강회장이 생각해낸 것이 가족 봉사단이다. 강 회장은 “가족을 봉사라는 범주 안에 한데 묶어 놓으면 학생들에게 지속성이 생긴다”면서 “아이들 봉사에 부모님들이 관심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대화가 늘면서 정서적인 면이나 인성교육까지 좋은 영향을 준다”고 전했다. 중·고교생 회원이 졸업과 동시에 빠져나가는 것에 대비, 작년에는 반딧불 대학생 봉사단도 만들었다. 고등학교 봉사를 마치고 졸업하고 나면 대학생 봉사단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 현재 반딧불 대학생 봉사단에는 19명의 가족봉사단 출신 대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사회성 향상에 직업 연계성까지…”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다”

지속성 있는 자원봉사의 흐름은 수요처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창동 청소년 문화의 집’의 김동일 간사는 “자원봉사를 받는 수요처들이 실제로는 생각보다 협조적이지 않다”며 “일회성과 겉치레에 상처받은 탓”이라고 말했다. 김 간사는 “도움받는 사람들이 의외로 자존심도 강하고, 진정성이 없는 것도 금방 알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도움 없이 스스로 하려는 욕구도 많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인 자원봉사는 청소년들에게도 큰 변화를 갖고 온다. 반딧불가족봉사대의 서동재(15·중3)군은 “소심한 편이었는데 봉사활동 하면서 발표력이나 리더십도 키워진 것 같아요. 친구관계도 많이 좋아졌고요”라고 했다. ‘비밀이에요’의 이상현군 역시 “지금껏 살면서 힘든 것 많이 못 느끼고 살았는데 어려운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보람 이상의 내 속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참여봉사부의 김남정 대리는 “최근에는 어렸을 때부터 진로를 고려해 자원봉사를 하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봉사를 통해서 주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많다는 걸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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