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처벌로 일관 말고 교실 분위기 바꿔야

문화학습협동 네트워크 사토 요사쿠 대표

미상_사진_청소년문제_사토요사쿠_2012이지메(왕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교 거부….

일본의 청소년문제는 우리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청소년문제에 집중하는 일본의 NGO 또한 다양하다. 일본 문화협동네트워크 대표 사토 요사쿠씨는 1993년부터 등교거부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프리스쿨)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1999년부터 히키코모리 청소년을 위한 비영리법인 ‘문화학습협동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시립 하자센터에서 열린 한·일 교육포럼 ‘청소년 폭력과 부적응을 말하다’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한국에선 학교폭력·왕따·자살 등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의 청소년 문제는 어떤가.

“일본에선 세 차례 큰 흐름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도쿄의 한 중학교에서 재일동포 아이가 왕따를 당하다 못해 자살했다. 가해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그 학생의 ‘장례식 놀이’까지 했고, 담임교사도 관여해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아무도 왕따문제를 자각조차 못하던 시기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또 한 번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아동권리조례’가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왕따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가해자 처벌을 위주로 했다면, 이후부터 왕따 구조 자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교실 내 스트레스가 쌓이고, 누군가가 교실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풀며, 주변의 친구들은 이를 방관하게 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사이버상의 왕따가 극성을 부렸다. 왕따 피해자 친구를 집단으로 매도하고, 심지어 하반신 사진을 올려놓는 등 ‘인터넷 왕따’로 아이들이 연속으로 자살했다.”

―일본 정부의 대책은 어떻게 변했고, 효과는 있었나.

“일본의 정책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처벌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수치목표를 정해놓고 ‘모든 학교를 히키코모리 제로를 만들어라’고 하는 식은 별 효과가 없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일본 문부과학성에 정책을 비난하는 편지나 메일을 집단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오히려 민간에서 교실 전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벌여왔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교실을 어떻게 협동적이고 창의적 공간으로 바꾸는지에 대한 사례들이 축적돼 있다. 거기서 배워야 한다.”

―오랫동안 일본의 청소년문제를 다뤄왔는데, 한국에 충고할 말은.

“왕따나 학교폭력의 문턱을 낮추는 게 필요하다. 일본에선 유명 탤런트나 아이돌, 지식인이 TV나 만화, 라디오 등 각종 매스컴을 통해 ‘왕따당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왕따를 당할 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라’ ‘왕따 행위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나쁜 일이다’ 등을 꾸준히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많은 청소년들이 신문·잡지의 투고란에 사연을 보내왔다. 한번 얘기를 털어놓은 후에는 자기 주변의 사람에게 얘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경찰이 개입하면 범죄가 되기 때문에, 그전에 부모와 교사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한다. 학교 내에서는 교사가 학급 전체를 성장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작문을 써서 친구의 기분과 상황을 이해하는 프로그램을 하거나, 스포츠나 학급 이벤트를 통해 팀워크를 다지는 방식이 좋다. 지역사회에서는 왕따나 학교폭력을 당하는 청소년들을 받아줄 다양한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 왕따 당하는 친구에게 학교 외에 갈 수 있는 여러 공간을 열어두고 치유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본에선 지자체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기관을 서로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가 3~4명 정도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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