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나눔을 가르치려다 ‘배려’를 배웠습니다”

굿네이버스 ‘지구촌 나눔가족 희망편지 쓰기 대회’ 딸과 함께 참가해보니…
“10㎏이면 얼마나 무겁죠? 책가방보다 무겁겠죠?
제가 아프리카에 산다면 속상했을 거 같아요”

미상_사진_희망편지_그림_2012“엄마, 근데 이 편지가 어떻게 아프리카에 가요? 영어로 대신 써줘요? 제 글씨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죠?”

연필을 손에 든 기자의 딸(연서·초2)이 종알종알했다. 지난 7일 저녁, 기자와 딸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굿네이버스에서 실시하는 ‘지구촌 나눔가족 희망편지 쓰기 대회’ 동영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홈페이지(www.gni.kr)에 접속하니, 올해의 주인공 자말(10)군의 사연이 나온다. 지난해엔 초등학교에서 나눠준 CD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오리를 키우며 살아가는 락스미(10)군의 동영상을 보았었다.

“르완다요? 잠깐만요?” 아이는 쪼르륵 제 방으로 달려가서, 지도를 찾는다. “찾았다. 쪼그만하네~.”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르완다의 면적은 약 2만6000㎢. 우리나라(10만㎢)의 4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동영상에선 아프리카 르완다의 빈민 거주지역 기소지 마을에 살고있는 자말의 일상이 나온다. 2년 전 에이즈에 걸려 죽은 아빠, 에이즈에 걸려 아픈 엄마,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 대신 10㎏ 물동이를 양손에 들고 온종일 걸어도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않은 열살 소년…. 에이즈 정기검진 때문에 병원에서 피를 뽑으며,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자말. “아직 괜찮습니다.” 의사의 한마디에, 자말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다. 화면 내내 볼 수 없었던 귀한 웃음이다.

아프리카 르완다에 사는 열살 소년 자말. 에이즈에 걸린 엄마와 가족을 위해, 학용품을 사기 위해 종일 10㎏짜리 물동이를 지고, 이웃집 빨래를 한다. /재능나눔 김성진 제공
아프리카 르완다에 사는 열살 소년 자말. 에이즈에 걸린 엄마와 가족을 위해, 학용품을 사기 위해 종일 10㎏짜리 물동이를 지고, 이웃집 빨래를 한다. /재능나눔 김성진 제공

“엄마. 집이 흙집이네요.” “10㎏이면 얼마나 무거운 거예요? 제 책가방보다 훨씬 무겁겠죠?” “아프리카에도 비행기가 있을까? 비행기가 좀 지저분하겠죠? 흙을 밟고 다니니까. 우리는 신발이 있어서 흙을 안 밟는데.” 동영상을 보는 내내, 아이는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냈다. 편지쓰기대회에서 뽑히면 상도 받고 해외에 나가 직접 자원봉사한다는 대목이 동영상 말미에 나오자, “아~ 나도 상 받고 싶은데” 한다.

이제 자말에게 희망이 담긴 편지를 쓸 시간. 아이는 편지지 첫 줄에 ‘자말 오빠에게’라고 쓴 후, 하트모양과 웃음 이모티콘을 그려넣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연서가 알아서 써봐. 원래 편지는 자기 마음이 담겨야 되는 거야”라며 자리를 비켰다. 한참 후에 다시 가보니, 여전히 그대로였다. “잘 못쓰겠어요.” 사뭇 진지하고 시무룩해진 아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만난 적도, 말해 본 적도 없는 먼나라 아프리카의 낯선 오빠에게 갑자기 편지를 쓰는 게 두려운 것이었을까.

“엄마랑 같이 얘기하면서 쓸까” 했더니, 금방 “네~네~” 하고 신이 났다.

“연서는 자말 오빠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니?”라고 물었다.

“불쌍했어요. 돈도 없고, 밥도 못 먹고, 일만 하니까요. 근데 오빠는 불평을 하지 않아서 좋아요. 만약 제가 아프리카에 태어났다면 속상했을 거 같아요. 저는 흙집도 싫고 지저분한 화장실도 싫거든요. 그리고 오빠는 아빠도 없잖아요.” 아이는 이걸 쓰겠다며, 또박또박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이건 지워야겠다”며 ‘오빠는 아빠가 없잖아’라는 대목을 지웠다. 아빠가 없는 것도 슬플 텐데, 자신이 그렇게 쓰면 더 슬퍼질 것 같단다.

“연서가 자말 오빠를 위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겠니?” 또 물었다.

아이는 대뜸 “돈을 주면 안 될까요”라고 한다. 그러더니 “1000원은 너무 작겠죠? 5000원을 줄까요? 아니, 3000원을 주는 게 좋겠어요”라고 한다. 해외 아동 결연 비용은 3만원이다. 사실 기자는 수년 전 취재차 아프리카에 다녀온 후 “아이를 낳을 때마다 아이 이름으로 해외 아동 결연을 맺겠다”고 다짐했었다. 첫째아이 연서의 이름으로 스와질랜드의 한 아이와 결연을 맺은 지 6년. 하지만 둘째아이가 네 살이 되었음에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묵혀뒀던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아이에게 선언했다.

“연서야. 이제 동생 이름으로 아프리카의 어려운 친구 한 명을 더 돕자. 우리가 가진 것 조금을 나누는 거야. 엄마도 열심히 일할 테니까, 너도 할아버지나 친척들한테 용돈받는 것 있으면 보탤 수 있지?”

아이는 “왜 동생 이름으로 하느냐. 내 이름으로 한 명 더 하고 싶다”고 항의(?)했다. 편지지 오른쪽 하단 박스에 ‘아동을 후원하겠다’고 체크했다.

아프리카 르완다에 사는 자말군과 그 가족. 자말의 아빠는 2년 전 에이즈에 걸려 돌아가셨고, 엄마 또한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재능나눔 김성진 제공
아프리카 르완다에 사는 자말군과 그 가족. 자말의 아빠는 2년 전 에이즈에 걸려 돌아가셨고, 엄마 또한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재능나눔 김성진 제공

“돈 말고 도울 수 있는 건 뭘까?” 아이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선물을 주면 돼요.” 아이는 편지와 함께 그림을 직접 그려주고 싶다고 한다(아이는 편지를 다 끝낸 후 자말 오빠를 위해 무지개가 가득한 하늘에 오색 눈송이가 날리는 그림을 직접 그렸다).

도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던 아이는 이제 한껏 신이 났다. “오빠가 의사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꿈을 생각하면서 공부하면 꿈을 이룰 수 있잖아요. 의사가 되면 돈을 벌어서 집도 사고, 엄마를 도울 수도 있고…. 또 돈 없는 사람들이 와서 (치료 다 받고 나서) ‘고맙습니다’ 하고 수박 같은 걸 사오면 ‘괜찮습니다’ 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는 그걸 또 써나간다.

아이는 자말 오빠를 보기 위해 아프리카에 꼭 갈 것이란다. 편지 말미에 이렇게 썼다.

“내가 스무살 때 놀러 갈게. 그때까지 기분 좋게 있어.”

아이한테 나눔 교육을 하려다 기자가 더 배운 시간이었다. 아빠가 없는 친구의 아픔을 배려하고, 작지만 진심을 담은 마음을 나누는 것. 아이들의 마음은 원래 이렇게 맑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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