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도심 속 농업공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여월농업공원’의 옛 이름은 여월 정수장이다. 1980년대부터 2001년까지 부천 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까치울 정수장이 그 기능을 대체하자, 방치되어온 여월 정수장은 2013년 4월 27일 ‘여월농업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침전지는 캠핑장과 생태연못으로, 농축조는 연향지로, 정수지는 도시텃밭이 됐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토론, 시의 지원 덕분이었다. 2015년에는 세계 4대 환경상인 ‘그린애플어워즈’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기존환경을 살리면서 시민의 주도하에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도시재생 모델 사례로 적합하다는 평을 받았다.

사회적기업 ‘㈜지엔그린'(대표 신미자)은 2015년부터 여월농업공원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3년 차다. 도시녹화, 도시농업을 통해 녹색도시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취약계층에게 사회적 서비스와 녹색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지난 10월부터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어르신들이 공원에서 버섯을 재배, 판매하여 그 수익금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여월청춘농장을 신설했다.

여월농업공원 시설관리팀장이 경로당 텃밭에 미니과원을 설치하고 있다. ⓒ김혜리 청년기자

시민, 부천시 도시농업과 공무원, 사회적 기업과 함께 공원을 가꿔온 사람들이 있다. 비영리기관 여월농업공원 소속인 채민자 본부장, 최미선 대리, 홍주현 주임이다. 사회복지, 청소년지도학을 전공한 이들은, 공원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공원입구에 위치한 운영본부에서 행정업무를 본다. 그리고 기자는 지난 9월부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무실 한 켠에 책상 하나가 생겼다.

폐정수장을 새활용한 도시재생모델 공원, 시민·지자체·사회적 기업이 만들다

 

부녀회장님! 노인회장님! 원장님! 포도나무 배달 왔습니다.

알바 7주차. 주로 파쇄기 돌리기, 행사 물품 라벨지 붙이기, 공원 내 프로그램 활동 사진 찍기를 하던 기자에게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우리동네 그린커튼 미니과원 보급사업 현장에서 현수막 인증사진 찍어오기.’

주민센터, 경로당, 어린이집 앞마당에 포도나무가 등장하자, 동네 주민들이 너도나도 구경을 나왔다. 이는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이 실시한  ‘2017 농업(도시농업)·농촌 통합판매홍보’ 운영단체 공모에 여월농업공원이 선정돼 진행 중인 사업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20년의 경력을 쌓아온 채 본부장님이 사업을 기획했다. 이 사업에서 나온 인건비로 기자를 고용했다. 시간당 7910원. 직원 임금 등의 공원 운영 자금의 70%가 시에서 나오지만, 나머지 30%는 이러한 외부사업과 공원 자체 프로그램 운영비에서 나온다.  

지난 11월 4일 부천시 도시농업축제날, 공원 캠핑장에 설치된 짚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김혜리 청년기자

 

◇미취학 아동부터 청장년, 노인층까지, 공원의 풍경을 함께 가꾸다

 

선생님, 제가 만든 거 하나 먹어봐요!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깍두기 담그기 체험’에 참가한 아이가 고사리만한 손으로 기자에게 깍두기를 권한다. 공원 텃밭에서 자란 가을 무로 만들어 달달하다. 공원에서는 이러한 사계절 체험프로그램을 상시 운영 중이다. 공원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와 허브, 곤충을 활용한다. 작물체험, 원예·곤충체험, 생태공예체험, 놀이체험, 슬로푸드 체험 등 다양하고 체험비가 저렴하여 어린이집 원장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필자(제일 앞 테이블 진행보조자)가 사계절 체험 프로그램 행사 진행을 보조하고 있다. ⓒ여월농업공원

사계절 체험프로그램으로 농사 기간에만 바쁘던 공원은 사시사철 바빠졌다. 프로그램 매니저인 홍주현 주임의 야근도 잦아졌다. 홍 주임은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사회복지사가 개입하지 않아도 지역민과의  연결망으로 장애인이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교수님의 추천으로 공원을 알게 됐다. 농업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매력을 느껴 입사했다. 많은 시간과 체력이 요구되지만, 농사를 지으며 치유되는 사람들을 만나며 힘을 받는다고 했다. 건강 때문에 흰머리만 나다가, 검은 머리가 나기 시작한 분도 있다고.  

“친환경농법을 배우고, 수확물 나오면 나누고, 때마다 축제를 하고,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잖아. 모르는 사람들이 와도 내 이웃이 어떤가 한 번 더 보게 되고 토요일마다 만나니까,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서로 연락하고 형성되는 것들이 좋지.”

매주 토요일 10시, 공원 중심에 위치한 도시텃밭에서 진행되는 토요농부학교. 참여주체는 시민운영단이다. 현재 76개 단체가 활동 중이다. 장애인단체, 어린이집도 있지만, 대부분이 사적인 모임으로 형성된 단체다. 몇 해째 꾸준히 활동중인 단체들도 있다. 공동체 텃밭을 가꾸며, 더 친밀한 관계를 쌓아간다. 상반기에는 상추나 부추 등의 엽채류 채소를, 11월 수확제에서는 밭에서 난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독거노인 등의 취약계층과 나눈다. 김장 재료비는 시민운영단으로부터 기부 받는다. 이외에도 공원에서는 도시농업전문가·시민조경사·버섯재배전문가 양성과정과 도시양봉교실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월농업공원 시민운영단이 텃밭을 가꾸고 있다 . ⓒ여월농업공원

 

◇도심 속 농업공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좋아요. 정도 많고.

시민운영단에 20대는 없다. 초창기에 대학생 동아리가 있었으나, 정기적인 모임이 힘들었다. 대부분 청년들은 자원봉사를 하러 공원에 온다. 이와 달리, 인턴으로 시작해 거의 직원처럼 공원에서 근무중인 청년이 있다. 강아인 선생님이다. 2015년 하반기, 아산 프론티어 유스 1기로 활동하며 여월농업공원에서 5개월간 인턴을 했다. ‘아산 프론티어 유스’는 아산나눔재단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대학생에게 비영리기관에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강선생님은 벤처중소기업을 전공하며 사회적기업으로의 취업을 꿈꾸던 중, 공부해보지 못한 비영리 분야를 경험하고 싶었다. 이후에도 수확제 등의 굵직한 행사가 몰려있는 하반기마다 매년 공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주로 공원 내 체험활동 사진을 촬영하고, 페이스북과 카페에 게시물을 올린다.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청소년 도시농업전문가 프로그램과 관련된 자료를 정리 중이다. 알바도 아니고 직원도 아닌, 애매한 위치가 때로는 힘들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사람들이 좋다.  

“아이들이랑 내가 우리 동네에서 재밌게 놀면서 일할 공간이면 좋겠다 해서 왔는데,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와서 같이 놀고 굉장히 좋아하고 할 때 좋은 거지.”

회계를 담당하는 최미선 대리는 보험회사에서 15년을 일했다. 비영리 기관에서의 경력은 현재 공원을 포함해 4년 정도다. 이전 직장에 비하면, 야근도 잦고, 휴일에 행사가 많지만,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적은 지금의 직장에 만족한다. 공원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여월농업공원 직원들의 모습. ⓒ김혜리 청년기자

채민자 본부장은 일자리로서 가지는 공원의 매력을 ‘트인 공간’으로 뽑았다. 근무여건, 공간, 환경이 좋다고 한다. 또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농사를 잘 모르고 시작을 했고, 나는 이론가잖아요, 기획가고 행정가고, 농사에 대한 교육을 다시 배우잖아요. 버섯재배전문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면 다 공부를 해서 자료를 만들어요. 생소하지만, 배워나가면서 배우는 게 되게 많죠.”

‘더불어 함께하는 마음’. 채 본부장이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마인드가 중요해요. 비영리기관은 기본적으로 내 이익을 위해서 들어가면 안 돼요. 그렇다고 월급이 적지는 않거든요. 내 일과 네 일을 구분하지 말고, 같이 해야 해요.”

경력이 쌓일수록 능력보다는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여월농업공원이 지향하는 가치는 ‘자연 친화, 인간성회복, 건전한 여가문화, 시민공동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정직원은 5명이다. 기간제 근로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일조차 정직원의 몫이기에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사람 한 명을 더 들이는 것은 예산상 쉽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내 일과 네 일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서로 할 일을 찾아 하고 있다. 회계 담당 대리가 축제날 수육을 만들고, 본부장이 때로 내부기안을 만들고, 프로그램 매니저인 주임이 때때로 강의를 한다.

비영리기관이 꼭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일을 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들의 가족, 연인을 만나고, 회식을 하고 관찰하며, 기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모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물론 소소한 갈등도 있다.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듯, 직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더 건강한 조직이 될 것 같다. 지난 3개월 간, 인절미, 버섯죽, 깍두기 등등 퇴근길에 쥐어주신 먹거리와 함께 퇴근하며 행복했다.

김혜리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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