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가슴으로 낳은 아이 키우기…방법 몰라서 더 힘들었어요”

지혜(가명·56·부천시 오정구)씨는 현재 아들과 떨어져 지낸다. 2009년 다섯살이던 시훈(가명)이를 입양했지만, 7년이 지나도록 잘 적응하지 못한 아들은 작년부터 보육원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충격이 컸던 지혜씨는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1년간 그곳에서 열리는 집단상담, 입양아카데미, 부모교육 등에 모두 참여했다. 시훈이와 떨어진 후에야 그녀는 알게 됐다고 한다. 지혜씨는 “입양 전에 교육을 받았더라면 쌍둥이 동생 2명을 입양하지도 않고, 시훈이가 다섯 살까지 못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채워줬을것”이라며 “입양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키우는 게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신생아기 입양 대신 유아기 입양 늘어…아이의 상처 몰라 힘든 부모들

 

우리나라의 한해 국내입양 건수는 2011년 1452명에서 2016년 546명으로 줄었다. 해외입양 또한 같은해 916명에서 334명으로 줄었다. 국내외 입양아동은 2011년 대비 64%나 줄어든 것이다. 한해 국내외 입양아 총수 880명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김승희 의원실 자료)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입양 대기아동의 숫자도 늘고 입양아동의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신생아기가 아닌, 유아기에 입양되는 아동에 대한 부모교육이나 관련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 김외선 센터장은 “유아기 입양 아동들은 수차례 양육자가 변경됐을 수도 있고, 대부분 방임 학대의 경험을 갖거나 심한 경우엔 육체적인 폭력을 받은 경우도 있다”며 “입양부모들은 훨씬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이를 잘 모른 채, 심한 경우 그 폭력이 연장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세 살이 되면 자기 고집이 생깁니다. 정제되지 않은 폭력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은 새 부모를 만나기 전에 무섭거나 믿기 힘든 어른들을 만났기 때문에, 처음 본 사람을 따르기 어렵습니다. 입양부모와 아동이 애착관계가 형성 될 때까지 힘든 겁니다. 이때 아이가 이전에 받지 못한 사랑을 전적으로 주어야 합니다. 짧으면 1~2년 걸립니다. 다른 어디에도 없는, 입양가족에게만 있는 독특한 기간인 거죠. 이 기간이 없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영아가 아닌 유아기 아이들에게 이 과정은 굉장히 극적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국내외 입양 건수가 880명으로 줄어들면서, 입양대기시간이 늘고 입양아동의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큰아이(유아기) 입양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다. ⓒ무료이미지

 

◇입양부모들, 직접 발로 뛰어가며 전문성 쌓아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유아기 입양’의 어려움에 대한 논의가 거의 부재했다. 입양부모들만이 홀로 헤쳐가야 할 몫이었다. 2002년 입양가족홍보회를 통해 ‘큰아이(유아기) 입양’을 한 부모들의 자조모임은 있었지만, 서로의 어려움을 공감만 할 뿐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고 한다.

입양전문기관도 부모들의 어려움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김외선 센터장은 “다 큰 애들이 뭐가 힘드냐는 말만 돌아왔다”며 “입양기관 종사자들도 어릴 적 분리경험을 당한 아이들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는 데다, 종사자들이 수시로 바뀌어 전문가 양성도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입양 이후 국가의 지원과 바우처를 통해 입양가족이 심리치료를 받는 것은 입양가족에게 큰 도움이 되지만, 정작 심리치료사들이 입양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부모들이 근원적인 해답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결국 입양부모들이 스스로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하며,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직접 쌓아야 했다. 이설아 건강한입양가족지원센터장과 김외선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장 또한 이같은 사례다. 이설아 센터장은 아이 3명을 입양한 입양부모로서, 다섯 살 때 입양한 첫째와 신생아 때 입양한 둘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너무 힘들어 직접 심리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아이들이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게 되는 건 굉장히 큰 충격이기 때문에 충분히 슬퍼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내뱉고 공감받아야 하는데, 입양부모들은 자꾸 입양을 긍정적으로만 바꾸려고 한다”며 “같이 공감해주고 대화하면서, 아이들의 자아상을 긍정적으로 세우도록 부모들이 도와줘야 하는데 입양 부모들이 그걸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직접 센터를 차려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입양부모들에게 교육과 상담을 해오고 있다.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에서는 ‘유아기 입양 부모교육 캠프’를 진행하고 개별적으로 부부를 교육하고 있다. 작년 뇌사 후 숨진 세 살 배기 입양아 ‘은비(가명) 사건’ 후, 입양기관에서 예비 입양부모교육과 상담을 부탁하는 일도 늘었다.

입양부모학교에서 강연중인 이설아 건강한입양가족지원센터장 ©건강한입양가족지원센터

 

◇큰아이(유아기) 예비 입양부모교육 강화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입양 전 필수과정으로 예비 입양부모교육이 체계화 돼있지 않다. 현재 이뤄지는 예비 입양부모교육은 아동과 가정의 특성과 상관없이 일방형 강의식으로 하루 8시간 하는 게 전부다. 영국은 총 9회에 걸쳐 27시간, 스웨덴은 총 7회에 걸쳐 21시간, 미국은 총 27~30시간 동안 예비 입양부모교육을 하는 데 비해 매우 짧을 뿐만 아니라 일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석 교수 자료).

“지금까지는 일단 아이를 데리고 갔는데 어쩔 줄 모르고 힘들어하는 것이 전형적인 입양 패턴이었습니다. 이런 걸 방지해야 합니다. 아이마다 입양 전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일괄적으로 뭉뚱그려서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입양 전 계속 부모와 아이가 대면하고 친해지며 이 아이가 가정에 맞을지 안 맞을지 살펴야 합니다. 전문가가 개입되어 입양기관에서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특성을 명확하게 알려줘야 해요. 그리고 부모가 그 아이를 다룰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한 다음, 입양을 허가해야 합니다.”(김외선 센터장)

입양부모 지혜씨는 “입양 전에는 경험이 없으니까, 어떤 부모들은 교육시간 8시간도 버거워한다”며 “뒤늦게서야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 교수는 “한국에서 진행하는 8시간 중 4시간은 입양절차와 지원 등을 설명하고 실질적인 아이와 입양을 이해하는데 들이는 시간은 4시간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에서 예비입양부모교육 중인 김외선 센터장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

“진짜 입양이슈인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가’ ‘부모는 왜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가’ ‘불임문제를 잘 해결하고 진짜 이 아이중심으로 입양할 준비가 되어있느냐’ 등을 성찰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뿌리찾기를 하고 싶어하면 어떻게 다룰 지에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어야 해요. 현재 예비 입양부모교육은 아주 짧게 아동발달단계 교육을 하는데, 입양아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일반 아동에 관한 것이어서 문제입니다.”(노혜련 교수)

다행히 중앙입양원에서는 지난 5월부터 ‘큰아이 예비입양 부모교육’과 입양사후지원, 실무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다. 올해 안으로 예비입양부모교육 심화과정 책자가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김외선 센터장은 “이론식 교육이 아닌 경험 있는 전문가들로 이뤄진 실제 사례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며, 입양한 가족과 예비입양가족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에서는 입양을 준비하는 부모 4쌍과 입양한지 1년을 갓 지난 부부 6쌍을 섞어 10가정 내외로 1박 2일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 마치고 입양을 포기하는 가족은 드물어

 

심화된 예비입양부모교육을 마친 후 입양을 포기하지 않느냐는 우려에 김외선 센터장은 “부부사이가 원래 안 맞아 아이에게 불안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 포기한 경우는 있어도 아이와 애착형성기간의 어려움을 알려줬다고 포기한 부부는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입양가족이 극적인 상황을 겪으며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와의 애착관계 형성이 잘 될 경우, 오히려 친구같은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미영(가명·47·부천시 오정구)씨는 2년 전 다섯살 때 위탁과정을 거치고 입양한 아들이 있다. 그녀 역시도 지난 2년 동안 많은 교육을 받았다. “그냥 ‘얘는 다섯살 때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라온 세월이 있구나’를 인정하면 덜 힘들다”며 “‘난 너랑 싸우기 싫어. 우리 맞춰보자’ 이러면 아이도 노력한다”고 말했다.

 

정빛나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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