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날아라 희망아] 여러분의 손길로 이 아이들의 웃음 되찾아 줬어요

집안일 도맡던 백만이 – 김한송 요리사 멘토 자처 요리사 꿈에 한발 다가가
1급 장애 父親 둔 재훈이 – 끼니·병원비 걱정 덜고 태권도 학원까지 다녀
소년 가장 코림 – 용접 일 벗어나 학교공부, 동생 심장병 수술도 예정
고철 집에 살던 존폴 – 일하느라 공부 꿈 못 꿔, 지금은 행복한 등교 중

닫혀 있던 귀가 열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 눈부신 빛이 찾아왔다. 쓰러져가던 집이 다시 세워지고, 차디찬 쪽방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당장의 아픔과 배고픔을 걱정하던 아이들도 이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굿네이버스는 지난 6개월간 ‘날아라 희망아’지면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사연을 소개해왔다.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의 그후 이야기를 담아봤다.

가족의 생계와 동생의 약값을 위해 하루 종일 용접 일을 하던 코림은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학교에 가게 됐다. /굿네이버스 제공
가족의 생계와 동생의 약값을 위해 하루 종일 용접 일을 하던 코림은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학교에 가게 됐다. /굿네이버스 제공

지글지글, 야채 익는 소리가 들린다. 부엌에서 시작된 콧노래가 고소한 향을 타고 작은 식탁 위로 흘러나온다. 프라이팬을 쥔 백만이(13)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변변치 않은 재료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형의 요리에 동생들은 오늘도 배가 부르다. 지난 6월 14일 ‘날아라 희망아’지면에 소개됐던 백만이. 6개월 뒤 만난 그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특별한 만남이 있었거든요.”굿네이버스 전북동부지부 곽의진 간사가 귀띔을 한다.

지난 여름 요리사의 꿈을 간직한 백만이에게 최고의 멘토가 생겼다. 요리팀 ‘7 Star chef’소속 김한송 요리사는 두 손 가득 맛난 요리 재료를 들고 두메산골을 찾았다. 계란 하나 사기도 어려운 형편,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다고 투정부리는 동생을 달래던 백만이 영상에 마음이 움직였다.

“백만이의 의젓한 모습에 정말 놀랐어요. 요리사이기 전에 형으로서 제 경험과 노하우를 백만이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찹스테이크, 오리가슴살 샐러드, 와사비크림 새우, 삼색꼬치 등 처음 보는 낯선 메뉴에 백만이 가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접시 위로 가득 담겨 있던 요리가 금세 동이 났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백만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기 산골짜기에 살면서도 형처럼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요?” 병약한 어머니와 얼마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고등학생 형들을 대신해 백만이는 농사일, 집안일, 동생을 돌보는 역할까지 도맡아 한다. 김한송 요리사가 대답했다. “백만이 네가 이곳에서 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널 더 훌륭한 요리사로 성장시킬 거야.”

진심이었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감수성이에요. 그래야 창의적인 메뉴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직접 키운 채소와 맑은 물, 백만이는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 있습니다. 재능도 있어요. 시범을 보이면 금방 잘 따라하고, 처음 본 요리도구도 원래 사용하던 것처럼 잘 쓰더라고요.”

땔감을 구하고 장작을 패고, 집안일을 돕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던 존폴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제 매일 아침,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굿네이버스 제공
땔감을 구하고 장작을 패고, 집안일을 돕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던 존폴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제 매일 아침,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굿네이버스 제공

10년 뒤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일까. 백만이는 오늘도 김한송 요리사가 선물한 요리책과 주방기구를 이용해 새로운 요리에 도전한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으로 멈춰버린 재훈이의 시계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재훈이네 가족은 정부 보조금 거의 전부를 입원비로 지출하면서 하루 한 끼조차 챙길 여유가 없었다. 사연을 접한 많은 독자들이 이들의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재훈이 아빠의 병원비는 물론이고, 운동을 좋아하던 재훈이는 이제 태권도 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민호네 집에도 희망의 꽃이 피어난다. 자궁암 3기에도 형편이 어려워 진통제로만 버텨오던 민호네 어머니는 얼마 전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물이 새고 벽이 갈라진 동네 빈집에서 살던 가족들도 이젠 쫓겨날 걱정이 없어졌다. 지저분하고 망가진 화장실, 무너진 지붕이 새로 지어졌고, 보일러 공사도 완료했다. 점점 매서워지는 칼바람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주변 이웃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덕분에 민호 모자(母子)는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됐다.

후원의 손길은 해외로도 이어졌다. 가족의 생계와 심장병을 가진 동생 로힘의 약값을 위해 철공소에서 하루 종일 용접 일을 하던 코림(7월 12일자)도 이제 학교를 가게 됐다. 로힘도 곧 심장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존폴네(9월 6일자) 집도 새단장을 했다. 버려진 나무와 고철로 만들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집은 사랑으로 더욱 단단해졌다. 존폴의 하루도 달라졌다. 땔감을 구하고 장작을 패고, 집안일을 돕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던 그였다. 이제는 매일 아침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존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작은 관심, 따뜻한 나눔이 함께 하자, 꺾여 있던 희망의 날개가 되살아났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