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Cover story] 10호점 당찬 출발 “꿈에 그린 내 가게, 야무지게 꾸려나갈래요”

탈북가정 편의점 지원 굿피플 ‘자유시민대학’
인성·취업 교육 지도 10년간 졸업생수 482명
10호점의 주인공은 ‘똑순이’ 주부 이정선씨 요리 자격증 전부 따내
“저의 특별한 서비스로고객들 사로잡을래요”

이정선 씨
이정선 씨

“상품에 대해서 아직 파악이 덜 되어 있습니다. 일단 젊은 층들이 많이 오니까 이 지역 젊은이들이 어떤 상품을 선호하는지를 먼저 알아볼 겁니다.”

이정선<사진>씨의 얼굴엔 진지함과 기대감, 기쁨과 걱정이 교차했다. 그러면서도 기자와 말을 하는 사이에 매장에 들어온 손님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선씨는 14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면서 결혼생활 5년차의 주부다. 지난 14일에 편의점을 창업했고,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이다. 2004년에 탈북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2006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11월 5일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저 생각보다 경력이 많습니다. 요리직업훈련을 6개월가량 받아서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자격증을 다 땄습니다. 일식주방에서 4개월 정도 일하고, 레스토랑에서도 2개월 정도 일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잘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타자, 컴퓨터, 회계까지 다시 직업훈련을 받아서 자격증을 땄습니다.”

지난 5년의 세월을 떠올리던 정선씨는 생활인의 모습으로 자신의 가게에 있는 물건들을 매만지고 정리했다. 꿈속에서 그리던 내 가게, 내 물건이다.

지난 12월 14일, 정선씨 부부는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편의점을 가졌다. 혼자 힘으로 가게를 낸 것은 아니다. 정선씨는 굿피플이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 교육기관인 ‘자유시민대학’의 8기 졸업생이다. 이번 편의점을 위해 굿피플은 무담보 소액대출을 제공했다.

굿피플은 지난 2002년부터 10년간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자유시민대학을 운영해왔다. 자유시민대학에서는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6개월간의 기초교육과 2개월간의 취업, 창업 전문교육을 진행한다. 지난 10월 말에 11기 교육을 마쳤고, 이로써 자유시민대학의 정규교육을 통해 한국사회에 정착한 졸업생 수는 482명이다.

“북한이탈주민이 2만5000명가량 됩니다. 이분들을 대상으로 단기적인 기술교육만 이루어지면 부적응 사례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북한 이탈주민의 높은 이직률과 실업률로 인해 고용불안정이 발생하고 빈곤층이 형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굿피플의 김창명 회장은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새로운 인력개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선씨는 자유시민대학을 “엄마, 아빠 같은 학교”라고 기억했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고향에 가는 것처럼 설렜어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위로도 해주고 자유시민대학 선생님들이 조언도 해주셨죠.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조언도 많이 들었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굿피플 임훈 담임목사, 굿피플 안정복 운영부회장, 통일부통일정책협력관 김의도 국장, 굿피플 김창명 회장, 이정선·고승현부부, 굿피플 김승환 기획부회장, 굿피플 노재기 감사.
사진 왼쪽부터 굿피플 임훈 담임목사, 굿피플 안정복 운영부회장, 통일부통일정책협력관 김의도 국장, 굿피플 김창명 회장, 이정선·고승현부부, 굿피플 김승환 기획부회장, 굿피플 노재기 감사.

굿피플 자유시민대학을 통해 배출된 졸업생 가운데는 취업자도 있지만 창업자도 있다. 졸업생 40여명이 차량수리, 식품업, 서비스업, 세탁업, 공장운영 등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굿피플 자유시민대학은 2008년부터 창업의지는 높으나 재정여건이 어려운 탈북민 가정을 우선 선발해 훼미리마트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 지난 14일에 정선씨가 10호점을 오픈하기 전까지 문을 연 9개의 편의점이 모두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8년 7월 1일에 창업한 1호점은 자리를 잡아 창업교육을 받고 있는 탈북민 후배를 훈련시켜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2009년에 오픈한 3호점은 편의점업계 서비스, 청결, 매출 분야에서 1등을 했다. 2009년에 오픈한 4호점은 현재 매출이 15% 신장했다. 2010년에 오픈한 7호점도 마찬가지다. 1호점과 2호점은 대출금 상환을 완료했다.

지난 14일의 정선씨네 편의점 창업식은 지역주민들과 굿피플, 통일부가 모두 모여 축하하는 축제의 자리였다.

통일부의 통일정책협력관 김의도 국장은 이날 축사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인 정착은 미래 한반도의 통일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이라며 “자유시민대학의 열정과 창업자들의 의지와 성실성이 더해진 편의점 창업”의 성공을 기원했다.

굿피플의 김창명 회장은 “자유시민대학의 열 번째 창업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끈기 있게 도전하는 부부와 굿피플의 지원이 있어 가능한 열매”라며 “10호점에 이른 굿피플 훼미리마트의 안정적 창업과 운영이 있기까지 격려해준 통일부와 훼미리마트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금 정선씨는 목 안이 다 부었다. 편의점 가오픈 상태에서 무리를 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먹고 아니면 안 먹고 지나쳤다. 아기 아빠는 밤 10시부터 아침 10시까지 일을 하기로 했지만 정선씨 곁에서 오후까지 가게를 지킨다. 그러다 보면 정선씨도 지하철 막차 시간까지 아기 아빠 옆에서 가게를 지키곤 한다. 그래도 내 가게가 생겼다는 마음에 기운이 솟는다.

손님들에게 물건을 내주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정선씨를 보는 자유시민대학 윤현기 학장은 특별한 소회를 밝혔다.

“면접을 보는데 정선씨가 아기를 업고 왔었어요. 그때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죠. 처음에 안 된다고 얘기를 했는데 ‘아기가 있어서 못하고 저런 이유가 있어서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우리 어머님들은 아기를 업고 밭에 가서 김도 매지 않았느냐’고 당차게 말하는 정선씨를 보고 결국 허락을 했죠.”

윤현기 학장의 말처럼 정선씨는 당차고 야무졌다.

“제 가게가 성공하려면 누구보다 많이 노력해야 하고 누구도 하지 않는 독특한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편의점이라고 다 똑같은 물건, 똑같은 디스플레이를 하는 건 정답이 아닙니다. 내 가게에 한 번 오는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정선씨의 눈빛을 보고 생각해봤다. 남북관계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지만 어쩌면 정답은 삶과 생활, 사람과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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