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젊은 독립 예술가들의 숨은 산실, ‘복합문화공간 에무’

복합문화공간 에무 김선두 상임이사 인터뷰

 

“바보스럽게, 열정을 광기처럼 표출할 수 있는 공간. 이 ‘바보철학’이 우리 에무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뭘 하는 공간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사뭇 진지한 한 마디. 김선두 상임이사(59. 중앙대 한국화과 교수)의 대답이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 전경 ⓒ에무

지난 6월 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찾았다. 광화문 인근 서울역사박물관 뒤 주택가 골목길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 목재와 철재, 석재까지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고, 건물 외벽에는 상영중인 영화와 공연을 홍보하기 위한 천막이 걸려있었다. 지중해 요리로 유명한 1층 카페테리아 맨 안쪽 자리는 개방형 창틀을 사이에 두고 또 다시 바깥과 연결돼 있었다.

원래 ‘에무’는 ‘사계절’ 출판사가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출판사가 파주출판단지로 이전한 자리에,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갤러리, 공연장, 영화관, 교육공간, 식당까지 잇따라 들어섰다. 2012년에는 비영리단체로 등록됐다, 2013년 서울시 인증 전문예술단체를 거쳐 현재는 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이상한 뜻으로 오해할법한 이 공간의 이름은 유명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에무는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를 줄인 말입니다. 그의 정신은 바보철학을 통해 문화예술을 대중과 소통하게끔 하는 것이었죠.”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상임이사인 김선두 중앙대 교수 ⓒ사단법인 에무

 

◇독립예술가를 위한 ‘복합’ 문화공간

 

에무는 현대예술가들에게 일종의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 역할을 한다. 젊은 미술가들에게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제공해 주거나, 인디밴드들을 위한 공연을 지원해주는 식이다. 2층에는 영화관까지 있어서 저예산 독립영화가 자주 상영되곤 한다. 영화관 위치로는 외진 편이지만, 재방문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김 상임이사는 “요즘 카페랑 갤러리, 아니면 공연장을 합쳐 놓은 곳은 많이 있지만 에무처럼 다양한 문화 장르를 한꺼번에 모아둔 공간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여기는 참 재밌는 공간”이라며 말을 이었다.

“공연, 전시, 예술교육, 심지어 바비큐 파티까지 열려요. 주변에 아늑한 산책로도 참 좋아요. 특히, 우리나라의 젊은 독립 예술가들이 공간을 많이 사용하는데, 자신들이 가진 끼와 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인기가 많아요.”

에무갤러리에서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단법인 에무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활동은 이름 그대로 ‘복합적’이다. 지난 5월 에무시네마에서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국내외 독립영화들이 상영됐고, 지하1층 공연장에서 인디뮤지션 ‘씨없는수박 김대중’ 등 여러 밴드가 무대에 올라 제각각 끼를 뽐냈다.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그림책 강좌’에선, 참여한 사람들이 그림책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이 활동들은 모두 자유롭게 자신을 표출하는 행위라고 김 상임이사는 설명했다.

이곳 에무를 거쳐간 예술가 중 기억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김선두 상임이사는 “처음에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가며 성장한 경우를 많이 본다”며 배우 ‘이상희’를 꼽았다. ‘철원기행’을 에무씨네마에서 상영했는데, 그걸로 백상예술제에서 여자 신인연기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상희 씨가 이곳 에무를 참 좋아한다”며 “관객들과도 소탈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겹의 미학: 겹의 막을 넘어’ 展, 그리고 ‘한국화’

 

“바보철학은 결국 감성과 감각에 바탕을 둔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바보 같지만 자기의 열정을 꾸벅꾸벅 표현하는 삶이죠. 저는 이 부분이 우리나라 고유의 미술과 통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보처럼, 우직하게요.”

지난 6월 2일부터 에무갤러리에서는 ‘제 7회 겹의 미학: 겹의 막을 넘어’ 展이 진행 중이다. 2010년부터 꾸준히 열린 전시로, 이번에는 5명의 청년작가들이 전통재료인 장지를 사용해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가르치고 있는 김선두 상임이사는 이 전시가 가진 의미를 강조했다.

에무갤러리에서 진행중인 ‘겹의 미학’展 ⓒ현지호

“동양화가 아니라 ‘한국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한국화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어요. 예술 철학이나 재료, 기법 같은 것들이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죠. ‘겹의 미학 전’은 한국 미술의 개념을 정립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입니다.”

그는 “한국 미술에는 관용이나 넉넉함, 기다림 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다”며 “우리나라의 전통재료인 ‘장지’는 땅과 같아서 수 개월에 걸쳐 몇 겹씩 그림을 그리면 그걸 다 받아들이는데, 이 재료에서 우리 미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적자여도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여기서 활동하는 분들은 이곳을 ‘안식처’라고 생각해요. 이 공간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사실상 우리나라에는 독립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공간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최근 도심지역에서 종종 문제가 되는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에 대해 김 상임이사는 부정적인 기색을 내보였다. “원래는 홍대도 젊음이 넘치는 거리였지만 부동산 값이 오르면서 점차 예술가들이 밖으로 밀려났다”며 “젊은 독립예술가를 위한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 전경 ⓒ현지호

“적자를 보면서도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1~3월 같은 경우엔 찾아오는 손님은 적은데 지출은 계속 필요하니까요. 어찌 보면 에무는 경영과 예술이 생생하게 만나서 관계를 형성해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이 때문에 오히려 더 나태하게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리석게 보일지 몰라도 꾸준히 이 대안공간을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바보철학에서 꽃핀 문화공간이니까 말이다.

 

현지호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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