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장애인은 도움만 받는다?… 그 편견, 도전정신으로 깨어 드릴게요”

도전하는 장애청년 3인방
김미나·문영민·이제욱씨각 전공분야 살려 봉사
“장애인이라 잘한다?장애인이라 못한다?그런 것 없어요중요한 건 열정이죠”

김미나씨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지체1급의 장애인이다. 대학생 봉사동아리로 활동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들을 위해 성폭력 예방에 대한 인형극을 공연했고, 방과 후 학교에서 학습공부와 예체능, 미술을 지도했고 학습지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가끔 전공을 살려 포스터 디자인을 제공하는 재능기부도 했다. 한마디로 봉사 마니아다.

한국에서만 봉사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몽골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종이접기와 데칼코마니를 가르쳤고 홍콩에서는 홍콩의 사회적 기업들을 돌아보며 장애인들의 자립생활과 장애인 요양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가끔 ‘장애인은 봉사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봉사활동을 거절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개척해나가고 싶었다. 몽골에 해외봉사를 신청했을 때는 장애인은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하는 걸 학교에 찾아가 추천서를 받고 각서까지 써주곤 갈 수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문영민씨가 처음 만난 사이지만 아주 오래 알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활짝 웃었다. “동생뻘이지만 참 대단하네요.” 지체2급 장애인인 영민 씨는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장애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통 진화론의 입장에선 장애라고 하는 걸 열등한 요소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특정 민족을 유전학적으로 열등한 존재라고 규정했던 우생학 같은 과오를 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생학은 인종 학살과 같은 끔직한 범죄에 악용되었잖아요.”

영민씨는 이런 부담을 안고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런 이론이 힘을 얻으면 장애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힘이 빠지게 됩니다. 그럼 장애학에는 주장과 이데올로기만 남게 되죠.” 영민씨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생학 같은 이론을 반박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가설도 세웠다.

“저는 장애가 생물의 다양성이 확산되는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하듯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 중 하나가 장애라는 것이죠.”옆에서 듣고 있던 미나씨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왼쪽부터 김미나씨, 문영민씨, 이제욱씨. 이들의 도전은 끝이 없다.
왼쪽부터 김미나씨, 문영민씨, 이제욱씨. 이들의 도전은 끝이 없다.

지난달 21일 기자는 천안의 신한생명 연수원에서 장애청년 세 명을 만났다.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장애청년들이 미래의 지도자로서 비전과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해외연수의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세밀한 계획을 제출해 직접 해외의 단체나 인물을 섭외해 방문하고 연수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미나씨는 아프리카에서 세계빈곤 문제에 대해, 영민씨는 영국에서 장애인 문화예술인 자립에 대해 연수를 할 계획이다.

이미 2006년에 노르웨이를 방문해 장애인 보조공학에 대해 연수를 했던 ‘선배’ 이제욱씨는 미나씨와 영민씨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며 웃었다. 청각장애2급인 제욱씨는 말하는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그 내용을 파악한다.

“학교 다닐 땐 귀가 안 들려서 수업 시간에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리포트를 내라는 얘기를 못 들어서 과제물을 내지 못한 적도 있었죠.”

그랬던 제욱씨가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할 정도로 수중물리치료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깨달았어요. 일반적인 분야에서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면 힘들겠다는 걸요. 그래서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뚫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수중물리치료가 그런 분야였죠.”

두 사람의 선배로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제욱씨의 이야기에 미나씨와 영민씨가 귀를 기울였다. 제욱씨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은 언제고 두 사람도 겪어야 할 일들이다.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가 쉽지만은 않았다는 제욱씨지만, 지금 제욱씨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박사과정의 논문을 작성하고 있어요. 정식 교수로 강단에 서는 것이 제 꿈입니다.” 꿈 이야기가 나오자 미나씨의 눈이 반짝인다.

“제 꿈은 영사(領事)가 되는 거예요. 시험 준비도 하고 있어요. 영사 활동을 하면서 재외 국민들을 만나보며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해보는 것이 첫 번째 목표고요, 두 번째는 코이카의 단원으로 활동하는 거예요. 빈곤국가에서 식수가 부족한 곳에 우물도 파주고, 저소득 국가의 아동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영민씨는 “출판이나 과학과 관련한 글쓰기를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쉼 없는 도전을 해봤다면 저런 미소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단단한 웃음이었다.

세 명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데 미나씨의 마지막 말이 계속 기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장애인만이 잘할 수 있다거나 장애인은 못한다거나 하는 분야는 없어요. 다 잘 할 수 있어요. 열정과 마음이 중요해요. 열정과 마음은 통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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