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너와 내가 만드는 ‘모두가 행복한 여행’, 착한여행 인터뷰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인터뷰

 

8년전, 20년차 베테랑 국제 NGO활동가가 돌연 여행 업에 뛰어들었다. 여행자와 지역민, 여행상품을 제공하는 여행업자 모두에게 좋은 ‘착한 여행’을 만들고 싶었다. 공정여행 사회적기업 ‘착한 여행’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다. 2009년, 연 매출 1억원에서 시작해 전세계에 걸쳐 70여개의 여행상품을 보유한 연 매출 20억원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여정을 창립자 나효우(사진) 대표에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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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통해 지역을 돕다

“국제 개발 협력분야에서 20년을 일했는데,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습니다. 필리핀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전 세계에서 구호·개발물품을 보내 오거나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것도 숱하게 봤죠. 그런데 이런 직접 지원 방식이 지속 가능한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의 지원보다, 장기적으로 지역과 주민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게 관건이었다. 지역 내 사업을 개발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그가 찾은 방식은 ‘관광’. 현지와 관광객, 지역사회와 환경,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정여행’ 방식이라면 지역의 자립이 가능할 것 같았다. 개발업에 종사하는 소수의 몇 명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지역을 여행하고 간접적으로 지역의 자립을 돕는다는 점에서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공정여행’을 해보자며 나섰지만 시작은 막막했다. “창업 초기엔 마음만 앞섰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공정여행도 사업이기 때문에 당장 현실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했죠. 하지만, 그보다도 미션과 가치를 단단히 세우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여행을 통해 지역에 변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니까요.”

나 대표가 몸 담았던 국제개발단체 ‘아시아 브릿지’ 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보아 스터디 모임을 꾸렸다. 영국에서 시작되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던 ‘책임여행 운동’, ‘공정여행 트렌드’를 공부했다. ‘착한여행’이라는 브랜드를 고안한 것도 이때다.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 ‘공정여행’ 가치를 대중적으로 쉽게 알리자는 데서 나온 이름이었다. ‘착한여행’의 원칙도 이때 세웠다. 하나, 지역 고유특성을 살린 여행상품을 만들 것. 둘, 여행자의 소비가 지역으로 돌아가게 할 것. 셋, 지역의 전통과 문화, 환경을 보존할 것.

국내에 들어와 있는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민들을 ‘지역 투어가이드’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시작이었다. 30여명의 이주민에게 ‘가이드 교육’을 제공해, 이들이 현지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전적으로 무료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지만, ‘착한여행’의 뜻에 공감하고 가능성을 본 이들이 자발적으로 후원을 하기도 했다.

올해로 8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나 대표는 “여기까지 오는 모든 걸음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1년차에는 뭐든 만들어보는 과정 자체가 마냥 재미있었는데, 신생 창업 회사의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2~3년차에 접어들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공정여행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고, 처음 사업 구상 그대로 반영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웠고요. 그래도 초반에 세웠던 원칙들이 ‘이 일을 왜 하는지’ 일깨워주고 잡아주는 지표이자 원동력이 되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지역민 자활 돕고, 지역 고유의 자산 지키고

여행을 통해 지역의 자립을 돕는 것. 착한여행은 현지에 설립한 독립 여행법인을 주축으로 운영된다. 해외지사의 모든 직원은 현지인들로 채용한다. 기존의 라오스, 필리핀, 캄보디아, 일본, 발리 등에 이어 올해는 새롭게 네팔 지사를 설립했다. 국가 주 수입원이 관광업인 네팔은 지난 2015년 큰 지진을 겪고 나서 관광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나 대표는 오래 알고 지낸 바 있는 트레킹 셰르파들과 몇 년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사를 설립하고 새롭게 네팔 여행 상품을 시작했다.

착한여행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라오스 몽족 전통 의상 입어보기 체험 ⓒ착한여행
착한여행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라오스 몽족 전통 의상 입어보기 체험 ⓒ착한여행

지역사회 고유의 문화·환경자산을 찾아내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라오스는 다수인 라오족과 소수민족인 몽족 간의 갈등이 워낙 심해서, 몽족 부족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여행 상품을 만들 때 엄청난 어려움이 많았죠. 라오족들이 몽족 거주지를 개발해서 이들을 내쫓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저희 직원들은 라오 관광청에 직접 가서 호소를 했어요. 몽족 거주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몽족 만의 특별한 전통문화가 관광상품으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이죠.”

이들은 결과적으로 라오족 정부의 개발 계획을 철회하는 데에 성공했다. 지역 고유의 소중한 천연자원과 문화자원을 ‘여행업’이라는 지역사업 아래 지켜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필리핀 보홀섬에서의 전통 음악 체험 ⓒ착한여행
필리핀 보홀섬에서의 전통 음악 체험 ⓒ착한여행

“공자의 말씀 중에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라는 말씀이 있어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멀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뜻인데, 착한 여행이 표방하는 공정여행의 가치를 그대로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거주지의 삶이 행복해야 지속 가능한 관광이 가능한 거거든요. 지역공동체에 근간을 둔 관광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 시장을 넘어서, 공정여행 분야 최초로 ‘플랫폼’을 만들다

나 대표는 올해 공정여행 플랫폼인 ‘가디언’을 시작했다. 누구나 여행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스스로 여행지의 가이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연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잖아요. 지역거주민들이 스스로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지역민만큼 로컬 푸드와 지역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이들도 없고, 또 고수 여행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가이드로 변신할 수 있어요. ‘플랫폼’을 만들어 이런 여행 상품들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가디언’을 고안해냈죠”

공정여행 플랫폼 ‘가디언’은 여행자와 여행지를 연결하는 ‘정거장’ 역할을 한다. 그 동안은 여행사가 주도하여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했다면, 이제는 여행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직접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지역민들이나 여행고수들은 외지인들이 잘 알기 어려운 지역 고유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여행상품들과는 차별화되는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내년을 기점으로 ‘착한 여행’ 이 가장 주력하는 사업이 될 예정이다.

“물론, 모든 게 바로 여행상품이 되는 건 아니에요. 저희 착한여행 직원들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치죠. 직접 여행지에 가서 프로그램을 시뮬레이션 해보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올린 가이드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요. 저희는 중간단계에서 여행을 검증하고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일을 도맡는 것이죠.”

올해 착한여행이 발의하여 서울시 혁신형 사업으로 선정된 ‘게스트하우스 더 모이라’ 프로젝트도 ‘플랫폼’ 구축 사업의 일환이다. 서울에서 가장 게스트하우스가 많은 서대문구와 마포구, 종로구의 여행업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교육을 진행한다. 게스트하우스가 단순한 숙박업소를 넘어, 지역 특유의 알짜배기 정보나 지역 기반 여행 상품에 대한 정보를 담아내는 곳으로 만든느 것을 목표로 한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 가이드가 되고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하면, 마을 경제를 살리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다.

공정여행 분야의 사업들이 지금보다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시장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없을까.

나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유기농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유기농 제품이 많아지면 결과적으로 전체 시장에서 유기농 사업 파이가 커지잖아요. 선택지가 넓어지고 사업이 많아져서 궁극적으로 ‘여행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 착한 여행이 나아갈 길? 여행지도, 여행자도 모두가 행복한 여행을 만드는 것

“최근에 착한 여행을 이용했던 여행자들끼리 ‘착반사’라고 ‘착한 여행에 반한 사람들’ 이라는 팬 카페를 만드셨어요.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실제로 착한 여행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보신 분들 사이에서 재 구매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예요. 이용객들 중엔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많은데 착한 여행을 잊지 못하고 몇 년 후에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가 그리는, 착한 여행이 나아갈 길은 무엇일까.

“저희는 공정여행 분야의 저변이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서 이 시장의 일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착한 여행의 8년간의 노하우나 기술, 생각들을 동료 사업자들과 나눌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겁니다. 여행자와 여행사, 여행지. 모두가 행복한 여행을 다 함께 만들어 가야죠.”

박지윤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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