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여름재해 취약 가구_”무너진 지붕 볼 때마다 무너지는 마음… 하늘은 알고 있을까요?”

작년 추석 폭우로 지붕 내려앉은 취약계층 조모씨
“생계 잇기도 벅찬 생활… 올 장마는 어떻게 날지 막막”
좁은 골목·부실한 배수시설…
의연금 수혜자 86%<전국재해구호협회 상반기 발표>가 저소득층

지난해 입은 수해를 복구하지 못한 채 위험한 가옥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조모씨의 집. /조성녀 더나은미래 기자 badada75@chosun.com
지난해 입은 수해를 복구하지 못한 채 위험한 가옥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조모씨의 집. /조성녀 더나은미래 기자 badada75@chosun.com

지난 7월 5일 방문한 인천시 숭의동 조모(52)씨의 집 한쪽 방 천장은 하늘이 보이도록 뻥 뚫려 있었다. 조씨는 늘어져 내려앉은 천장이 언제 다시 더 무너질지 모른다며 절대 방 안으로 들어서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지난 해 9월,1908년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추석 연휴 때 조씨의 집은 무너졌다. 정부 지원금과 민간 후원금을 합해 200만원가량을 받았지만, 수리 비용이 그보다 훨씬 커 지금까지 무너진 채 그대로 살고 있다.

“2년마다 한 번씩 여름이면 꼭 물에 잠기곤 했죠. 그러다가 한 5년 전쯤인가? 그때부터는 한 번도 물이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시에서 물 빠지는 통로를 넓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작년에 다시 온 집안에 물이 찼어요.”

당시의 공포감을 다시 떠올리는지, 긴장감이 역력한 목소리로 조씨가 수해 입을 때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 1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5세 정도의 정신 연령이라는 그녀의 남편은 무너지지 않고 유일하게 남았다는 방 안에 문을 닫고 들어앉아 내다보지 않았다. 때문에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온 조씨와 함께 마당에 선 채로 얘기를 나눴다. 키가 150cm 정도 되는 조씨의 머리 위로 30cm도 차이 나지 않는 높이 위에는 누렇게 바랜 플라스틱 슬레이트 덮개들이 곳곳이 부서진 채 내려와 있었다. 뚫린 덮개 사이로 보이는 지붕 위에는 낡은 장판이 올려져 있었다. 비가 새지 않도록 임시로 막은 장치였다. 조씨는 남은 방 한 쪽 편에도 비만 오면 물이 샌다고 말했다.

조씨가 요양보호사 일을 해 버는 돈 월 80만원이 유일한 수입원인 그의 가족은 집을 고칠 수도, 이사를 갈 수도 없다. 30여년 전부터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 현재의 집을 물려받아 소유하고 있지만, 남편의 병으로 생계를 잇기가 어려운 형편이라 수리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 조씨도 2년 전 암 수술을 한 상태라 지금 일하는 하루 두 곳 외에는 더 이상 일하기 어렵다. 더구나 해당 지역의 재개발 얘기가 나오다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집을 팔려고 해도 살 임자가 나서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조씨의 가족은 하나 남은 방 가운데 커튼을 치고 한쪽 편에는 두 딸이, 다른 한쪽 편에는 조 씨 부부가 살고 있다.

“비만 오면 집이 무너질까 봐 무서워 잠이 오지 않는다”는 조씨는, 올 여름을 어떻게 날 거냐는 질문에 아무 대답 없이 근심 가득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작년 폭우로 모두 무너진 집터 자리를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유모씨. /조성녀 더나은미래 기자 badada75@chosun.com

작년 폭우로 모두 무너진 집터 자리를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유모씨. /조성녀 더나은미래 기자 badada75@chosun.com

조씨의 집에서 차로 5분가량을 가야 하는 인근 지역 유모(69)씨의 집은 형체 없이 모두 무너져 내린 상태로 있었다.

“작년 추석 연휴 첫날 밤에 전을 부치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나오라고 소리를 쳐서 뛰어나가니 바로 와르르 무너지더라고….”

유씨의 집도 지난해 추석 때 집중 호우의 여파로 무너졌다. 집이 완파돼 갈 곳이 없었던 유씨의 가족은 근처 노인정에서 한 달가량을 지내다 지원금 1000만원가량을 받았고, 세 들어 살던 이가 함께 돈을 보태 지금은 작은 빌라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현재 유일한 소득은 노령 연금 14만여원이 전부지만, 유씨는 “비·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는 게 너무나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유씨의 가족이 무너진 그 집에 산 지는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노동일을 하면서 산속 무허가 건물에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 아파트가 생기고 이어 길을 내면서 산이 깎여 나가는 바람에 살던 집 자리가 위험한 지대가 되고 말았다며 유씨가 말을 이었다.

“동에서 집 아래쪽에 축대를 쌓아 주고는 땅을 사라고 했지. 그 이후로 쭉 살았어.옆에 두 집이 더 있었는데, 돈 생기자마자 이사 가더라고.”

무너진 집터를 등지고 내려다보이는 동네의 다른 집들도 유씨의 집보다 크게 형편이 나아 보이지 않는다. 사람 한 명 정도가 드나들 수 있는 골목들을 사이에 두고, 촘촘히 늘어선 집들의 지붕 위에는 대부분 천막이 씌워져 있다. 오래돼 부실해진 지붕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다. 좁은 골목골목 사이로 폭우 시 물을 제대로 흘려보낼 수 있는 배수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올 상반기 전국재해구호협회가 발표한 수해 피해 의연금 수혜자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2000명의 응답자 중 53.3%가 연간 가구 소득 1000만원 이하, 32.9%가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로, 86% 이상의 피해자가 저소득층으로 나타났다. 지원 성금의 이용 용도로는 피해 복구 비용 42.8%, 생활 물품 구입비 29.3% 등인 데 비해, 교육비와 의료비는 각각 5.2%, 14.1% 등으로 낮게 나타나 대부분 생계를 위한 필수 목적에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전국재해구호협회의 한 관계자는 “주로 돈 없고 어려운 재해 취약 세대 사람들이 반복해서 재해를 당하는 상황”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2011 전국재해구호협회 미래위원회 보고서는 지난 30년간 기상재해 위험지역의 통계 추이가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사망자가 감소하는 경향이라고 밝히고 있다. 홍수, 태풍, 가뭄 등 기상학적 원인으로 인한 인명피해 위험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동일 보고서는 “특히 고령자, 유아, 저소득층은 홍수뿐 아니라 가뭄, 폭염 등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 전반에 취약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한편, 오재호(58) 부경대 환경 대기학과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수재해 유형에 대해 “개수는 줄어드는 반면, 한번 발생하면 강력하게 형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구름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지표 부근이 따뜻하고 대기 부분이 차야 수증기가 증발해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지구 온난화에 따라 대기 부분도 따뜻해지는 바람에 비구름 생성이 억제돼 숫자는 줄어드는 반면 한번 생기면 온도가 높아 비구름이 물을 많이 머금어 집중 호우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큰 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 안심하지 말고, 어떻게 대비할지 전문 조직과 장비 그리고 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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