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⑤은행에서도 ‘임팩트 투자’ 가능할까

‘제도권 은행에서 ‘임팩트 투자’에 기여할 수 있을까.’

박상빈 KEB 하나은행 신탁부 팀장(사진)의 말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임팩트 투자 활성화를 위해 은행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의 말을 Q&A로 정리했다. 

ⓒ천예지(D3쥬빌리 제공)
ⓒ천예지(D3쥬빌리 제공)

-신탁(Trust)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계약자가 셋이라고 보면 된다. 누군가가 은행에 돈을 위탁할 때 이 돈을 받아갈 ‘수익자’를 따로 둘 수 있다는 점이 신탁의 가장 큰 특징이다. 수익자를 어떤 형태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거래를 만들 수 있다. 서양에서는 개인에게 위탁하고 신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은행에서만 가능하다. 은행은 ‘모든 사람이 감시하는 금융 기구’다. 자본 보유율도 높고 리스크도 낮다. 그만큼 건전성이 유지된다. 이러한 은행에서 신탁을 하기 때문에, 하나의 금융 시스템으로서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본다.”

-현재 신탁제도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전통적으로는 ‘신탁’은 투자 방식으로 기능했다.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신탁 통해서 고객에게 소개하는 거였다. 그런데 이제 변화하는 사회와 시대 요구에 따라 ‘신탁’이 다양한 공익 목적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선 ‘공익신탁’이라는 제도가 있다. 하나은행이 유일한 수탁자다. 지난해 법이 개정되면서, 지금까지 약 2년간 19개 공익신탁이 만들어졌다. ‘혁신기업가 기금 공익신탁’, ‘범죄피해자 지원 스마일 공익신탁’, ‘허구연의 야구사랑 공익신탁’등 목적도 다양하다. 가수 이승철씨가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를 지을 목적으로 만든 ‘이앤차드 공익신탁’도 있다. 모인 기금으로 각각의 신탁의 목적에 맞게 사업을 집행한다.”

-공익신탁 외에 다른 형태도 있나.

‘피해보상 신탁(Compensation Trust)’이라는 것도 있다. 제품 사용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때, 신탁을 활용해 배상을 해주는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피해보상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UN가이드라인에서는 피해보상을 해야 하는 기구가 파산하는 등의 위험이 없도록 신탁을 활용할 것을 권고한다. 이를 위해 3개월 이상 협의해서 ‘신탁’을 활용한 피해보상 구조를 짰다. 피해보상을 위한 예금을 맡기면, 위탁자가 파산해도 이 돈은 법적으로 보호 된다. 은행이 파산이 나도 이 자금은 법적으로 안전하게 보호된다. 이 돈으로 피해보상을 하고, 돈이 남을 경우에는 위탁자에게 다시 돌려줄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거나 기부할 수도 있다. 핵심은, 신탁에 한번 들어온 돈은 독자적으로 관리가 되고, 법적으로 보호받기 때문에 파산이 나거나 유용되는 리스크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성년후견 신탁’ 제도도 있다. 신탁의 특징 중 하나는 ‘실물자산’뿐만 아니라 ‘권리’를 넘겨주는 것도 가능하다. ‘위탁자가 생존해 있을 동안은 매 달 생활비를 얼마씩 받되, 사망 이후에는 수혜자를 위해 이 돈을 사용해달라’는 식으로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개인 맞춤형으로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식이 가능하다.”

-임팩트 투자 관련해서 은행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크게 세 가지 정도 있다고 본다. 하나는 은행이 보유한 자금을 사회공헌이든 투자든 ‘임팩트 투자’에 직접 사용하는 것이다. 은행은 자금을 보유하고 있고, 금융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장’ 판을 만드는 역할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리스크가 큰 만큼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로 전통적인 은행의 역할은 부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임팩트 투자’의 요소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세번째로 신탁을 활용해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금융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서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큰 리스크를 지지 않고도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식이다.”

-‘안정화 역할’이라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나.

“가령, 현재 크라우드펀딩이나 P2P 시장의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P2P 금융의 기본 모델이라는 게 개인이 P2P 금융회사로 직접 돈을 맡기고, 또 직접 대출을 받는 걸 말한다. 그런데 만약 자금 흐름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서 몇 천억에서 몇 조 단위까지 움직이게 된다면 자금 관리에 대한 리스크가 커진다. 이때 은행이 ‘피해보상신탁’과 비슷하게 ‘신탁’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고 제도권 내 관리 감독을 통한 신뢰기반도 제공할 수 있다. 혹은 기존 P2P모델에서도 은행 신탁이 들어가 자금은 은행을 통하게 한다면, 돈의 행방 등은 이전과 같이 P2P 금융회사에서 전적으로 결정하되, 자금이 안전하게 결제되고 거래되는 과정을 보장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키우고 안정화시키는데 은행이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실제 은행에서 체감하는 ‘임팩트 투자’ 수요는 어느정도 인가. 

“신탁을 하면서 나이 드신 분들 상담을 많이 간다. 돌아가신 이후나, 혹은 어떤 방식으로 유산(legacy)을 잘 남길지 고민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면서도 사회에 ‘임팩트’를 만드는 ‘임팩트 투자’에 대한 수요가 한국 사회에도 꽤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은행이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매개자’로서 ‘임팩트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좋은 옵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제도권 은행이라느 게 워낙 항공모함 같아서 빠른 변화가 쉽지는 않지만, ‘매개자’라는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흐름과 시대변화를 따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더 많이 고민하겠다.”

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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