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도움의 손길보단 힘을 실어주세요”

굿네이버스 해외 지부장 4人 좌담회

마을주민이 직접 이끄는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에티오피아 ‘밀 조합’·과테말라 ‘직물조합’ 설립
태양광·축열기 판매해 캄보디아·몽골 사회문제 해결
‘돈’ 아닌 ‘사람’ 키우며 지역 주민의 자존감 높여

‘가난한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개발도상국 현장을 오랜 시간 경험한 전문가들은 늘 이런 고민을 한다. 염소·돼지 등을 분양하는 가축은행, 특용작물 재배 등은 모두 농가 소득을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게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다.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십시일반 생산품이나 돈을 모아 마을 살림을 꾸리고 시장경제를 만들어간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팔고 번 돈으로 가난한 마을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모델은 응용 버전이다. 모든 주민들이 기업의 경영자이자 수혜자가 된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아프리카 등 개도국에서 실행하는 비영리단체가 있으니, 24년간 해외 구호 활동을 해온 국내 토종 NGO ‘굿네이버스’다. 굿네이버스는 2010년 국내 NGO 최초로 개도국에서 사회적기업을 시작한 이래, 과테말라·르완다·몽골·캄보디아·네팔 등 5개국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어냈다. 해외 21개국에선 1147개 조합도 운영 중이다. 한국 기업마저도 저성장 위기 속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어려운 상황, 개도국에서 협동조합·사회적기업을 통해 마을의 자립을 돕는 비즈니스가 정말 가능할까. 지난 13일, ‘2016 굿네이버스 연례회의’차 한국에 모인 굿네이버스 해외지부장 4인에게서 그 해답을 들어봤다.

왼쪽부터)노재균 캄보디아지부사무장, 박동철 몽골지부장, 김철호 에티오피아지부장, 이재춘 과테말라지부장.
왼쪽부터)노재균 캄보디아지부사무장, 박동철 몽골지부장, 김철호 에티오피아지부장, 이재춘 과테말라지부장.

◇지역 특색 살린 조합 활동… 주민들에게 자립과 상생 알게 해

“예전엔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이젠 ‘마을의 자립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합니다. 국제구호개발 활동가들의 화두가 확 바뀐 셈이죠.”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개발본부장이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개도국 주민들이 NGO로부터 기부 받는 것을 넘어서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굿네이버스 해외지부 직원들은 연례회의, 대륙별 정기 워크숍 등을 통해 사회적경제와 지역 비즈니스 활성화 전략들을 철저히 교육받고 사례를 공유한다.

변화는 크다. 최근 에티오피아 헤토사 지역 주민들은 굿네이버스 지부에서 ‘생필품을 무료로 나눠준다’고 해도 “한창 일하고 제품 팔기 바빠 갈 시간이 없다”고 한단다. 그만큼 마을 경제가 살아났고, 주민들의 자립의지도 커졌다. 김철호 굿네이버스 에티오피아지부장은 그 비결이 ‘주민 주도형’ 조합 설립에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도 주민들에게 낯설고 생소하면 십중팔구 실패합니다. NGO가 떠나도 자발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죠. 2년 전 헤토사 지역 주민들과 생활 밀착형 사업 아이템을 찾아 함께 분석한 것도 같은 이유였죠.”

고민 끝에 김 지부장은 주민들과 ‘밀 조합’을 설립했다. 대대손손 밀을 재배해온 주민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한 것. 조합원은 순식간에 500명까지 급증했다. 이들은 우기 때마다 곡식을 보관할 곳이 없어 어려움이 컸던 탓에 공동 밀 창고를 세우기로 결정, 굿네이버스에 비용 지원을 신청했고 1년 후부터 3년간 갚아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조합원들은 1인당 매월 3000원씩 창고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것은 물론 더 많은 밀을 생산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굿네이버스 에티오피아지부 헤토사지역 밀 조합의 조합원들 사진
굿네이버스 에티오피아지부 헤토사지역 밀 조합의 조합원들 사진

굿네이버스 과테말라지부도 올해 여성들로 구성된 ‘직물조합’을 설립했다. 그동안 지역에서 베틀로 천을 짜 마야 민족 전통 의상을 만들던 이들이었다. 이재춘 굿네이버스 과테말라지부장은 “처음엔 조합원들이 실을 공동 구매해 재료값만 낮추다가, ‘재봉틀을 배워 수익성을 높이고 싶다’ ‘조합 운영을 위해 회계와 마케팅을 가르쳐달라’ 등 필요한 것들을 조합 내에서 판단해 투자를 요청하더라”고 했다. 주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스스로 번 돈으로 생필품 등을 살 수 있게 되면서 ‘자녀들은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 지부장은 “국내외 판로 개척을 통해 여성들의 자립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문 기술인 양성, 新연료 개발 등…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 만들어가

굿네이버스 캄보디아지부 사회적기업 굿솔라이노베이션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현지 아동 사진
굿네이버스 캄보디아지부 사회적기업 굿솔라이노베이션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현지 아동 사진

“캄보디아 정부가 2030년까지 국민의 70%가 전기를 쓸 수 있게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대로 보면 15년 뒤에도 여전히 전기를 못 쓰는 사람이 30%에 달한다는 것이죠.”

노재균 굿네이버스 캄보디아지부사무장이 캄보디아의 열악한 전력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캄보디아 농촌 마을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는 10%도 안 된다. 이에 굿네이버스 캄보디아지부는 2012년부터 오지 마을에 태양광시스템을 설치했고 지속적인 공급을 위해 지난해 사회적기업 ‘굿솔라이노베이션’을 설립, 마을 주민 56명을 채용해 이들을 태양광 전문기술자로 키웠다. 이들은 오지 마을에 찾아가 필요한 전력량을 상담 및 계산해주고, 그에 맞게 소규모 태양광 제품들을 설치한다. 지난 4년간 보급한 태양광 헤드랜턴만 3218대, 독립형 태양광 에너지 시설은 869대를 판매했다. 타사와 달리 1년간 AS서비스를 무상 지원해 시스템을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체계도 갖췄다. 최근엔 수상가옥이나 산악지대 등 접근성이 낮은 오지 마을 주민들에게 전기 기술과 태양광 시스템 수리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노 사무장은 “이들을 10년 뒤 태양광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로 키울 계획”이라며 “주민 스스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기업을 이끌어가도록 만드는 ‘출구전략(Exit Plan)’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몽골에선 6년째 축열기 사업이 순항 중이다. 1년 중 9개월이 겨울인데다 최저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몽골에서 난방은 생명과 직결된다. 하지만 무허가 전통 가옥인 게르를 짓고 사는 빈민들은 전기를 이용할 수 없어, 난로가 유일한 난방 수단이다. 게다가 석탄이 타면서 생기는 매연으로 대부분 호흡기 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에 굿네이버스 몽골지부는 2010년 사회적기업 ‘굿셰어링’을 설립, 기존 난로에 결합해 열이 오랜 시간 머물게 돕는 축열기 ‘지세이버’를 개발·판매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같은 양의 연료로 난방 시간이 6시간 연장되면서도, 하루 평균 배출되는 매연량도 45% 줄일 수 있기 때문. 지난해 판매된 숫자만 2만5000대다. 박동철 굿네이버스 몽골지부장은 “올해 판매량으로 약 3만대까지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이 증가하면서 회사에 고용된 현지 직원 수도 304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석탄에 톳밥을 섞은 새로운 연료 ‘브리켓(Briquette)’을 출시했다. 더 깨끗한 공기를 위해선 궁극적으로 연료 자체가 개선돼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전문가까지 섭외해 1년간 실험에 매달렸고 기존보다 열효율성도 10% 이상 높였다. 박 지부장은 “주민들이 새로운 연료로 바꿔 쓸 수 있도록 지세이버 기계를 무료로 보급하고 연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굿네이버스 몽골지부 사회적기업 굿쉐어링 제품 G_Saver를 게르에서 사용하는 가정의 모습
굿네이버스 몽골지부 사회적기업 굿쉐어링 제품 G_Saver를 게르에서 사용하는 가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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