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책으로 지역 사회를 바꾸는 협동조합이 있다고?

모두의책협동조합

“출판 세계에서 시민들은 소비자일뿐, 주인공에선 완전히 소외돼 있죠. 이들이 일상에서 깨닫고 느낀 것들도 출판된다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의견과 지향점을 가진 책들이 생길지 상상해봤죠.”
 
‘생활이 책이 된다’는 슬로건으로 개인과 단체 자서전을 제작해주는 ‘모두의책협동조합’의 김진호 대표. 지난달 22일, 대전시 중구 내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지역의 책과 글에 관심이 많던 시민, 로컬 작가 등 4명과 뭉쳐 조합을 꾸린 배경을 차분히 설명했다. 김 대표 역시 대전 대표 문인 동호회인 ‘대전사랑 문고사랑’에서 4년간 활동했을 정도로 책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처음엔 여러 사람들이 참여해 출판 비용을 줄이는 것만 생각했더니 진척이 안 되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며, “우리 조합의 시작인 ‘시민’과 ‘지역’ 안에서 답을 찾자 비로소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그 간의 우여곡절을 회상했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책을 만들다
 
‘시민 자서전’은 조합원들의 손끝에서 탄생된다. 현재 18명으로 늘어난 조합원들은 대부분 전직 잡지 기자, 등단 시인, 동화 작가 등 글을 업(業)으로 삼았다가 은퇴한 베테랑들. 덕분에  이야기 주인공인 시민을 직접 인터뷰 하고 사진 촬영 하는 것은 물론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써온 경우엔 빠르게 수정‧보완 작업을 진행, 1년 새 벌써 18권의 자서전을 펴냈다. 김 대표는 “아직 수익이 많지 않아 조합원들에게 배당도 없는데, 일의 의미를 공감하고 거의 ‘재능기부’로 활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의 만족도도 크다. 그는 “아버지 환갑을 맞아 자식들이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글들을 모아 책 출간을 부탁했었다”며 “아버님이 본인 이름으로 나온 책을 보더니 ‘평생소원 이뤘다’ 펑펑 우시더라”고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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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책협동조합 조합원이 이주여성들에게 인형극 수업을 하는 모습. 이 활동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해 4개월 간 진행됐다./모두의책협동조합 제공

최근 조합에선 ‘특별한 동화책’ 만들기가 한창이다. 바로 다문화가정을 위한 이중 언어 책자다. 동화책 한 쪽 면에는 베트남어 등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로, 반대편에는 한국어로 제작된다. 책을 통해 부모는 한국말을 익힐 수 있고, 아이는 부모의 정체성을 인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조합원들이 이주민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지인을 따라 우연히 쉼터에 갔다, 한국인 남편의 폭력 등으로 자녀를 데리고 도망쳐 나온 이주 여성들을 알게 됐죠. 조합원들과 ‘무엇으로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함께 ‘인형극’을 하기로 했죠. 상처 받은 마음도 풀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4개월을 꾸준히 만나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경계심을 보이던 여성들이 ‘계속하면 좋겠다’ ’한국 남자들이 나쁘다는 편견이 없어져 고맙다‘ 등 밝고 적극적이 됐다”고 했다. 자존감을 회복한 덕분에 일부 참여 여성들은 이후 쉼터를 나와 바리스타로 활동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정말 보람이 남달랐죠. 우리 본업을 발휘해 더 효과적으로 돕자는 생각에 동화책 발간을 생각했고, 지금 열심히 진행 중입니다(웃음).”

◇독서문화 장려위해 직접 야외 행사도 기획,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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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책협동조합에서 정기적으로 행사를 주관해 진행하는 독서 장려 캠페인, ‘새책줄게 놀러와’ 현장./모두의책협동조합 제공

이 외에도 조합에선 지역 내 독서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도 진행한다. 대표적인 것이 ‘새책줄게 놀러와’ 행사. 대전여성문학회, 대전사랑 문고사랑 등 지역 내 도서 관련 단체 4곳과 협약 맺고 소규모 장터를 열어 지역 예술가들이 공연 활동도 펼치고 조합에선 지역 출판사로부터 기증받은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다.  김 대표는 “온라인보다 얼굴을 보고 책을 전해주는 오프라인 행사가 효과가 크다”며 “책도 선물 받고 지역 예술가들과 교류도 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함께 글을 쓰고 나누는 ‘글쓰기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며, “지역과 개개인에 대한 기록들을 모두의책협동조합에 쌓아가기 위해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전=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이 콘텐츠는 더나은미래와 열린책장의 ‘대전 사회적기업 현장 탐방기’ 프로젝트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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