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장애인의 ‘두 발’이 되어드립니다

헬프카 협동조합

장애인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2007년, 부인을 따라 시작했던 중증장애 활동 보조가 그의 삶을 바꿨다. 2014년,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헬프카 협동조합’을 시작한 이득우(63·사진) 대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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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를 지닌 분들을 보조하면서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휠체어 타는 분들에게는 이동하는 일이 여간 큰 일이 아니더라고요. 전동 휠체어는 일반 자동차에 들어갈 수도 없어요. 그래서 보통 일반 휠체어로 옮겨서 차에 태워서 학교나 사무실로 이동한 다음에 그곳에 비치해 둔 전동휠체어로 다시 옮겨드려야 했고요. 번거로운데다 쉽사리 이동하기 힘들었죠.”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기 위한 여러 대안이 있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장애인 분들 위해서 저상버스가 많이 보급됐지만 당사자들은 거의 쓰지 않아요. 장애인 한 분 타려면 버스가 멈춘 다음에, 리프트가 내려오고 기사가 안전벨트까지 채워드려야 하는데, 다른 승객들이 기다리면서 시선이 집중되는 시간이 불편한 거죠. 노선이나 운영 대수가 많지도 않고요.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도 한계가 많아요. 하루 전날, 오전 8시에 다음날 타고 싶은 시간을 미리 예약 해야 하는데, 급한 경우엔 쓸 수도 없어요. 예약 하기도 거의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고요. 차량 보유 수 자체가 제한적이다 보니, 몇 분 안에 마감이 되거든요.” 크기가 큰 전동휠체어는 일반 택시나 버스에 실을 수도 없었다. 사고가 난 이후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장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이나,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들도 사각지대였다.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할 수 없기 때문. 저녁 10시 이후로는 운행하는 콜택시도 거의 없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상을 위해

‘중증장애인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차량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2014년, 이 대표는 ‘헬프카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었다. 대부분의 장애인 기관에서 장애인 이동을 위해 차량을 개조한 ‘리프트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운영하지 않고 놀리는 시간이 더 많다는 데서 가능성을 봤다. 이런 차량들을 모아 지역 내 ‘장애인 이동지원 차량 풀’을 만들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조합원을 모집해 필요할 때에 콜택시 처럼 쓸 수 있게 하는 ‘장애인 이동차량 공유모델’이 시작이었다. 이 대표의 아이디어는 사회적기업 진흥원의 사회적기업육성사업 4기로 선발되며 힘을 얻었다. 생각보다 쉽게 진행되는 듯 했지만, 장벽에 부딪혔다.

“요새 차량 공유 서비스가 많잖아요. 장애인 이동차량도 지역 내에서 공유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진행해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사고 가능성이나 보험 문제나 여러 이유로 선뜻 내주려고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죠.”

필요할 때 달려가는 ‘콜택시’로 방향을 바꿨다. 자본금을 모아 차량 한 대를 구입했다. 좁은 골목길도 쉽게 오갈 수 있는 소형차 ‘레이’가 헬프카의 상징이 됐다. 노란 외관도 입혔다. 꿀벌이 암술, 수술의 이동을 도와 꽃을 피우듯,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겠다는 취지의 ‘꿀벌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뒷좌석을 떼고 리프트를 설치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헬프카 협동조합’의 1호 콜택시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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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카 협동조합’의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헬프카’를 부르면 그걸로 끝이다. 필요한 즉시 전화를 걸 수도, 미리 예약을 할 수도 있다. 사회적기업 ‘헬프카 협동조합’이 첫 발을 뗀 지 2년, 아직은 조합원 30여명에 차량 한 대로 움직이는 작은 규모지만 1년 이상 꾸준히 사용하는 정기 고객도 여럿 생겼다. 대전시 도마동에 사는 임순자(가명·63)씨도 그 중 한 명. 38년 전, 한 순간의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생활을 이어오는 임씨는 이제 헬프카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힘든 헬프카의 단골 고객이다. 목욕탕, 병원 재활치료, 외부 약속 등 집 밖으로 이동하는 모든 일정에는 헬프카가 함께다. 일주일에 3~4번씩 쓰기 시작한 게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 어디 이동하는 길에 노란 차에 번호가 적힌 걸 보고 연락하게 됐는데 예약이나 이동이 편리해서 일년 가까이 쓰고 있어요. 기존에는 이동하기 하루 전에 꼬박꼬박 예약을 해야 하고 경쟁도 치열해서 될까 말까였는데, 이제는 정해진 일정 맞춰서 집 앞으로 오니까 이동할 걱정이 줄었어요. 급할 땐 당일에도 전화해서 이용할 수가 있고요.” (임순자씨)

이 대표는 “맹학교 다니는 한 고등학생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인연을 맺어 매일 등교와 수영장에 가는 걸 돕는데, 헬프카를 통해 부모님들이 부담을 많이 덜었다고 고마워하신다”며 “그 외에도 헬프카를 통해 매일 출퇴근하는 분도 계시고, 생활권은 대전이지만 거주 지역이 달라 시에서 운행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는 옥천이나 청주 분들도 꽤 이용한다”고 했다.

◇가고싶은 곳은 어디든, 여행의 ‘두 발’이 되는 날까지

지난 8월, 노란 ‘헬프카’는 가장 먼 거리를 달렸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장애인 두 명을 대동해 5박 6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것. 대전에서 완도까지 300여 킬로미터를 달려 배를 타고 제주도를 들어가 우도, 땅 끝 마라도까지 곳곳을 누볐다. “일상의 이동을 넘어, 몸이 불편한 분들의 두 발이 되고 싶다”는 이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여행 프로젝트’다.

“일상에서 필요한 이동도 쉽지 않다 보니, 휠체어 타시는 분들에게 여행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앞으로는 이동을 확장시켜서 소수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 깊이 있게 돌아다니는 여행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여행을 할 때 휠체어로 가기 편한 숙소나 화장실 등을 찾아 모으고, 장기적으로는 이동 과정에서 누워서 이동하거나 화장실 해결이 가능한 큰 차를 구비하고 싶고요. 앞으로도 불편하신 분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대전=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이 콘텐츠는 더나은미래와 열린책장의 ‘대전 사회적기업 현장 탐방기’ 프로젝트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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