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시니어의 인생 2막, 예술로 꽃 피우다

연극, 음악, 패션으로 제2의 삶 산다

문화예술이란 키워드로 인생 2막을 연 이들이 있다. 중견배우들의 일인극 ‘한평극장, 옆집에 배우가 산다’, 노년밴드 ‘바야흐로’, 시니어 패션쇼 ‘뉴시니어라이프’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연극, 음악, 패션 등 예술을 키워드로 스스로 변화하며 사회의 변화까지 이끌고 있다. 시니어가 그리는 인생 2막, 새로운 도전의 현장을 찾아갔다.

◇중견배우들의 새로운 도전···’한평극장, 옆집에 배우가 산다’

쇼파 하나와 방석 다섯 그리고 의자 둘. 한평극장 ‘미친 엄마, 진혼’의 객석 모습이다. 7월 4일 저녁, 은평구에 위치한 배우 윤예인의 자택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거실은 무대이자 객석으로, 배우와 관객들이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준비된 자리에 앉아 배우들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불과 1미터 앞에서 펼쳐지는 열연. 1인 모노드라마로 펼쳐지는 윤예인씨의 몸짓과 대사에 공기가 달라졌다.

배우 윤예인씨의 한평극장 현장 모습 /장석현 사진작가 제공
배우 윤예인씨의 한평극장 현장 모습 /장석현 사진작가 제공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엄마의 밑바닥에 숨어있는 여자로서의 욕망 같은 거요. 엄마라서 희생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요. 중견배우이자 여배우로서옆집에 배우가 산다란 새로운 콘셉트의 한평극장을 연다는 것에 기대감과 사명감이 함께 있었습니다.”
 
옆집에 배우가 산다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에서2015년에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다. 배우가 극장이 아닌 본인의 집을 개조한 한 평 극장에서 1인 모노드라마 또는 낭독 공연을 하는 형태다. 연기는 물론 대본, 세트, 음향, 의상까지 공연의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진다. 만만치 않은 작업인 만큼 관록 있는 배우들의 도전의 무대이기도 하다. 윤씨 역시 1970년대부터 꾸준히 연극무대에 선 베테랑 배우다. 2013년 한국여성연극협회 올빛상수상자이고, 드라마 내 딸 서영이’, ‘로맨스가 필요해등에 출연한 바 있다.윤씨는 배우 역할만 하다가 제작 과정 전부를 책임져보니, 대본,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고 쉽지 않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옆집에 배우가 산다’는 지난해 5명의 배우로 시작했다. 처음엔 예술인 일자리 지원 사업으로 시작됐지만 공연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이 사업을 최초로 제안했던 배우는 심철종씨. 그는 연극배우이자, 행위예술가 그리고 연극연출가로 유명하다. 국내외 다양한 실험예술제와 국제연극제에 참가하며 관객들과 더욱 친근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왔다. 현재 연극, 무용, 퍼포먼스, 패션쇼, 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씨어터 제로, 심철종 퍼포먼스 제작소, 한·일 댄스 페스티발의 대표이자 아고라극장의 외국인 예술고문도 맡고 있다. 2013년부터 1인극을 펼쳐온 그는 2015년 다른 동료들에게도 한평극장을 제안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주도적일 수 없어요. 제작자, 연출자에 의해 섭외되고 연기를 하는 거죠. 찾아주는 곳이 없으면 연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주도적이지 못한 삶이 힘들었어요. 누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할 수 있고, 인건비나 월세 등 비용이 들지 않는 극장을 죽을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에 한평극장을 만들게 됐죠.”.

배우 김동수, 박정순씨도 2년째 한평극장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있다. 김씨는 “기회가 연장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했고, 박씨는 “중견배우들이 힘들고 불행하다는 말도 있지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면서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있다는 점에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김씨 역시 “기회가 연장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옆집에 배우가 산다’에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은 총 4명. 이들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관객과 교감을 나누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이들은 “관객의 숫자와 수입은 전혀 중요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연극의 저변 확대와 다양성을 위해 나만의 극장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갈 것이란 의지도 보였다. 심씨는 “한평극장을 시도하는 배우들과 이곳을 찾는 관객들이 많아지길 바란다”는 기대감을 덧붙였다.

“마치 내 가게를 연 느낌이에요. 평생 갈 수 있는 좋은 가게요. 최근 후배 연극인들 중에 한평극장을 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연극도 저변 확대가 필요합니다. 연극 관객이 점점 줄고 있거든요. ‘옆집에 배우가 산다’가 중요한 이유는 인근에서 진행되니 관객들의 시간과 비용이 절약될 수 있죠. 한평극장이 여러 곳에 생기면 관객과 가깝게 다가가는 배우, 작품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루다···밴드 ‘바야흐로’

“이 나이쯤에 화분이나 가꾸고 / 이 나이쯤엔 앞산에나 오르고 / 이 나이쯤엔 거실 티비 앞에 편하게 누워 / 막장 사랑 얘기 드라마나 볼 줄 알았소.”

밴드 바야흐로 ‘노년반격 프로젝트’ 앨범 수록곡 ‘이 나이쯤에’다. 노년반격은 ‘내 나이가 어때서’로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이한철, ㈜한국 에자이, 우리마포복지관이 협력한 2016년 나우프로젝트의 시니어밴드 오디션이다. 지난 1월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진 시니어 뮤지션을 모집하기 시작해 총 30팀이 응모했다. 1차로 접수된 영상과 2차 오디션을 통해 총 2팀이 선정됐다. 단순한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나우프로젝트에 선정된 팀은 실제 음반 발매,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다. 앨범에 실릴 곡을 만들기 위한 워크숍도 열렸다. 앨범을 출시하기까지 꼬박 4개월. 밴드 바야흐로의 멤버 김철모씨는 “꿈과 가능성을 열어준 귀한 기회였다”며 미소를 짓는다.

밴드 바야흐로 프로필사진 /바야흐로 제공
밴드 바야흐로 프로필사진 /바야흐로 제공

바야흐로는 기타와 색소폰으로 이뤄진 남성 듀오 밴드다. 둘의 만남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접한 색소폰 공연에 감동한 김씨는 연주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당시 색소폰을 연주한 진효근씨를 찾아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아침이 밝아왔다. 오고 가는 많은 대화 속에서 음악적인 교류도 함께 이뤄졌다. 노년반격 프로젝트 공모 포스터를 보게 된 김씨는 진씨를 설득, 함께 오디션에 나가게 됐다. 이렇게 밴드 바야흐로가 탄생됐다.

진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색소폰을 연주해온 음악가다. 마산 관현악단을 거쳤고, 경남 재즈 오케스트라와 창원 윈도우 오케스트라의 창단 멤버다. 색소폰 연주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한때 피아노 가게를 하기도 했다. 공연 스케줄도 빼곡하다. 병원 등 위문공연도 많단다. 반면, 김철모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대학교 밴드 외에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줄 만한 기회가 없었다.

“집에서 통기타 치면서 노래를 만들어본 경험은 있지만, 음악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직장을 다니며 만든 자작곡으로 기념 앨범을 만들기도 했지만, 공식적인 음악 활동은 생각도 못했다.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자녀의 대학 교육이 한창인 시점이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재취업을 선택한 김씨는 잠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접어뒀다. 노년반격은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기회였던 것. 김씨는 “오디션을 볼 때 ‘이 나이쯤에’의 멜로디도 좋지만 특히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하시더라”면서 “프로의 손을 거쳐 편곡이 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웠다”고 설명했다.

‘눈물이 난다’, ‘청바지를 입고’ 등 후속곡도 이미 나왔다. 조금 더 다듬어서 미니앨범을 들고 나가는것이 목표. 이를 위해 김씨는 보컬 클래스에 등록했고, 기타 연습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바야흐로 밴드의 노래 가사처럼 ‘화분을 가꾸고 산에 오를 거라’ 생각했던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시작한 이들. 자신과 동년배의 시니어들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남겼다

“나이가 들면 금전적인 것보다 자신의 마음에 닿는 걸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나이에하기 싫은 일을 하면 안되잖아요. 너무 큰 것만 바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거든요. 소일거리라도 나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찾는 것, ‘이 나이쯤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시니어의 변신을 지원하는 ‘뉴시니어라이프’

지난 6월 30일 일산 킨텍스 제 1전시장. 익숙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못간다고 전해라’로 유명한곡 ‘100세 인생’이었다. 멜로디에 맞춰 시니어 모델들이 워킹을 선보이며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전시장의 눈과 카메라를 사로잡은 그들은 사회적기업 ‘뉴시니어라이프’의 소속 시니어 모델들이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사회적 가치는 시니어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 시니어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세대간 소통, 공감 영역을 확대시키는 거에요. 이러한 인식을 계속 확산하려는 것이죠.”

뉴시니어라이프 일산 킨텍스 공연 현장 /뉴시니어라이프 제공
뉴시니어라이프 일산 킨텍스 공연 현장 /뉴시니어라이프 제공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대표가 사회적기업을 설립한 계기를 설명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시니어에게 꿈과 젊음을 주는 패션 이벤트 기업이란 비전 아래 2007년 설립됐다. 모델 교실, 패션쇼, 체험관광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작은 판촉 이벤트였어요. 제가 운영하던 실버용품의 판촉을 위해 시니어 모델을 모집했거든요. 30명을 모집했는데 무려 3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시니어가 가진 열정을요.”
당시 최종 선발된 모델 30명은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모델 활동을 이어나가길 원했던 것. 이에 구 대표는 시니어 패션모델 사업을 결심하게 됐다.

물론 사업이 순탄치는 않았다. 패션쇼의 특성상 부가가치를 제외한 자체 수익은 거의 전무했다. 베테랑 모델들을 스카우트해가는 업체도 있었고, 시니어 모델 교실 사업은 ‘여유있는 노인들의 취미생활’이라며 그 가치를 폄하 당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사업을 유지, 확장시킬 수 있었던 동력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실제로 뉴시니어라이프를 찾은 많은 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룹 워킹이란 방식은 시니어들에게 부족한 사회성을 길러줬고, 걸음걸이 교정은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줬다. 고관절 수술만 세 번하고, 인조 관절을 다리에 심은 사람이 모델 교육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사례도 있었다. 그녀가 걷는 것을 보고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을 치료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남자는 은퇴 이후 사회적인 역할을 잃어버렸을 때, 여자는 남이 나를 여자를 안 봐줄 때, 심지어 거울에 비친 나를 봐도 여자로 안 보일 때 우울증이 오죠. 이 프로그램은 당신의 새로운 역할과 당신이 여자라는 것을 계속 일깨워 줘요. 그렇게 자신감을 얻고 치유되죠.”

그래서일까. 지난 6월 29일 찾은 뉴시니어라이프의 리허설 현장은 활기가 넘쳤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춤 동작엔 ‘건강’이, 표정엔 웃음이 가득했다. 시니어모델 김성훈(56)씨는 “쇼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이라며 “나의 끼를 보여주고, 박수와 관심도 받으니 참 즐겁다”고 말했다. 이옥재(89)씨는 “다른 사람들 앞에 서게 되니 자연스레 나를 가꾸게 되더라”면서 “몸이 가꿔지니 마음도 가꾸게 되고,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3년이 된 박흥복(79)씨는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남편이 떠난 후엔 눈물로 살았어요. 밥도 못 먹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함께 일하면서 건강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모델 일을 하니 나이를 먹어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내 몸이 움직이는 한 계속 하고 싶습니다. 젊어서는 자녀를 위해, 남편을 위해 살았지만 이젠 마지막까지 남은 인생을 즐겁게 마치고 싶어요.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젊어졌냐고 물어봐요. 마음이 기쁘니 그렇게 보였나봐요(웃음).”

이기욱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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