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위안부 할머니도 ‘케이팝스타’ 꿈꾸는 평범한 소녀였단 걸 아시나요.

위안부 문제 색달리 해석한  <푸른 늑대의 파수꾼> 작가 김은진 인터뷰
10년 간 문제 고민, 5년 자료 조사 끝에 출간…제9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
위안부 편견 깨고 할머니들 상상 속에서라도 행복 느끼게 하고파

시‧공간을 초월하며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는 스토리로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나인’, ‘시그널’. 그 통쾌한 전개를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적용해 주목 받는 작품이 있다. 바로 제9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푸른 늑대의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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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에 봉사활동을 간 열여섯 살 소년 햇귀. 우연히 발견한 시계태엽을 감았다 1940년대 일제강점 하의 경성에 떨어지고 만다.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할머니 수인이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기 전 소녀시절을 마주한다. 하루코라는 딸을 둔 일본 관리 집에서 식모로 일하면서도, ‘가수’라는 꿈을 키우던 때였다. ‘할머니의 고통스런 기억을 없애드릴 순 없을까?’ 햇귀는 소녀 수인을 구하고자 하루코에게 일본의 조직적인 성노예 모집 사실을 설명하지만, 하루코는 “우리 아버지는 항상 조선인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셨는데…” 라며 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코는 아버지가 주도한 경성 위안단 모집 트럭에 오르고, 결국 하루코와 수인의 운명은 처음과 달라진다.

“할머니들의 청춘도 ‘케이팝스타’를 꿈꾸는 요즘의 소녀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의 우리처럼 평범한 자유를 누리고 싶어 했단 것도요. 더불어 누구든 무차별적인 폭력 하에서는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하려 했어요.”

지난달 7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한 카페에서 만난 <푸른 늑대의 파수꾼>의 저자 김은진(45) 작가는 작품에 담은 생각을 나긋하지만 똑부러지게 설명했다. 약 10년 간 위안부 문제를 고민하고, 5년 가까이 할머니들의 흔적을 찾아다닌 내공이 엿보였다. 그녀에게 소설의 탄생부터 앞으로 역사를 마주해야 할 청년들의 자세까지 자세히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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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은진 작가/사진제공=박창현 작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2007년 미국 LA에서 한인 초등학생이 역사 수업을 거부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수업 보조 교과서에 수록된 <요코 이야기> 때문이죠. 패망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본인을 한국인이 폭행, 강간했다는 이야긴데, 이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몇 시간 동안 건물 밖 땡볕에 서 있었다고 해요.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도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자칫 일본이 태평양 전쟁 피해자로 보일 위험이 있거든요. 일본 우익재단은 오래 전부터 전 세계 대학에 학술지원금을 보내며 왜곡된 역사를 논문으로 펴내고 있고요. 이런 사실을 감지한 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더 늦지 않게 일본의 전쟁범죄를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써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왜 ‘청소년 문학’을 선택하셨나요.

“외국에서는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철학적․문학적 깊이가 있는 책들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장이 두터워지면 좋겠다싶어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를 택했습니다. 무엇보다 성장기의 청소년이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느낄 만한 작품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에게 잊혀져가는 역사를 재미와 버무려 중요한 메시지를 들려주고, 동시에 어른들도 두루두루 읽는 책이 되길 바랐죠.”

– 자료조사와 집필의 긴 과정 중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나요.

“6년 전 충정로에 있는 한 쉼터에서 만난 길원옥 할머니는 잊을 수 없는 분이에요. 어찌나 곱고 정갈하시던지 향긋한 비누냄새가 나셨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당뇨가 있어 냄새날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조심스러워 하시더라고요. 평양에서 기생학교 다니던 시절을 이야기하실 때에는 순간 말을 멈추시더라고요. 당시 기생이면 지금의 엔터테이너들인데, 요즘 사람들은 기생에 대해 편견만 갖고 위안부 피해 경험을 문제적으로 보지 않으려 하니까요. 이런 오해를 소설에서라도 풀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할머니를 모티브로 주인공 할머니 ‘현수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가수를 꿈꾸던 생기발랄한 소녀의 꿈이 지켜지도록 이야기를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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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나주예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왼쪽)는 김은진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오랜 인터뷰를 나눴다./사진제공=박창현 작가

-이 소설을 통해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이 작품의 1순위 독자는 할머니들이에요. 할머니들이 책을 읽으시고 상상 속에서라도 평범한 삶을 살아보셨으면 했죠. 다음으로는 사람들이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할머니들이 살아있는 증거로 활동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한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소설을 통해 ‘할머니들에게도 요즘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청춘시절이 있었구나’ 하고요. 하지만 당시 시대상이나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사실에 근거해서 썼어요.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단순히 반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범죄에 대한 이야기에요. 우리가 좀 더 문제를 면밀하게 보길 바랍니다.”

-공익 분야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마디는?

만약 누군가의 고통이나 아픔에 공감한다면 그건 여러분들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거에요. 충분히 세상의 ‘파수꾼’이 될 재목이니,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세요. 그리고 역사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잊지 마세요.”

 나주예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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