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목표액 채우는 데 급급! 자활사업 진행은 뒷전?

지자체 자활기금 사용 실태
대구광역시, 50억원 조성에 혈안 10년간 사용 건수 네 건에 그쳐
기금 대부분 ‘임대료 대여’로 보건복지부 나서서 사용 폭 넓혀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 1월 전국의 20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를 묻자 응답자의 30.7%가 ‘자활·자립을 위한 서비스 및 일자리 제공’이라고 답했다.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이라는 ‘자활사업’의 취지가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자활사업의 핵심 동력 중 하나는 자활기금이다. 자활기금은 자활 지원사업의 추진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미비하고 지역별 편차가 큰 현실에서 지역별 여건에 부합하는 자활 지원사업을 탄력적으로 수행하는 재원의 목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자활사업 활성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 자활기금의 사용 실태는 어떤지 취재해봤다. 편집자 주


자활기금은 자활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지자체에서 조성, 운영하는 기금이다. 자활사업이 각 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지역별로 여건에 부합하는 자활 지원사업을 ‘탄력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조성한 재원이다. 하지만 이런 자활기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미상_그래픽_자활기금_시도별조성및사용실적_2011우선 도마에 오른 것은 자활기금의 집행률이 낮다는 것이다. 작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자활기금은 전국 16개 시·도와 212개 시·군·구에 설치되어 있으며 조성 총액은 3191억원에 이른다. 이 중 자활기금이 집행된 실적은 746억원(23%)에 불과해 무려 2445억원이 잠을 자고 있다. 자활기금의 운용 상황을 지도, 감독, 평가하게 되어 있는 복지부는 “기금이 본래 소모성으로 다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원금을 최대한 잘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기금의 특성상 기금의 사용률을 무턱대고 높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금의 사용률이 낮은 것을 기금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만으로 보기는 힘들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2010년, 2011년 ‘자활사업 안내’를 통해 원칙적으로 자활기금은 ‘일정한 규모’ 이상 적립해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목표액 조성 중이라도 기금 활용은 가능하다는 단서 조항을 붙였지만 일선 지자체에서는 ‘목표액’을 조성하는 것을 더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주수눌음지역자활센터 소속‘자전거 세상’의 무상수리 봉사팀이 제주시 용담1동 제주중학교에서 수리 중이던 자전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현 객원 기자 vitmania@chosun.com
제주수눌음지역자활센터 소속‘자전거 세상’의 무상수리 봉사팀이 제주시 용담1동 제주중학교에서 수리 중이던 자전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현 객원 기자 vitmania@chosun.com

극단적인 예가 대구광역시다. 지자체마다 조례 제정의 시기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자활기금 조성의 법적 명분이 확보된 것은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부터이다.

대구광역시는 2000년 12월 30일에 자활기금을 설치해 50억원을 적정 규모로 추정한 후 2010년까지 40억원을 모았다. 하지만 10년 동안 대구광역시가 사용한 자활기금의 사용 건수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거치는 와중에 모두 네 건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매해 2억원씩을 자활기금으로 출연하고 있다. 10년 전에 50억원을 목표로 정하고 목표액의 조성에 허덕이는 나머지 지금까지 자활기금을 제대로 사용 못한 것이다.

문제는 목표액. 즉 ‘일정한 규모’를 어떻게 추정해야 할지에 대한 규정이 원론적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기금의 규모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자활공동체의 수 및 생업자금 대여 건수, 금액 등을 고려하여 지방자치단체별로 적정 규모를 추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금 규모를 추정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만을 열거했을 뿐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가이드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에서는 기금을 설립했던 당시에 지정했던 목표액이 자활기금 사용 여부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에서 진행되는 자활사업의 욕구나 수요보다 목표액 자체가 목표가 된 것이다.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박영수 기획국장은 “자활기금이 중앙 부처에는 없고 광역시·도나 기초 지자체에 있는데 광역지자체는 몇 십억원을 만든 후에나 사용을 해보겠다는 입장들인 곳이 있고 기초 지자체는 아직 기금을 조성하지 못한 곳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자활기금을 사용하고 있는 지자체들은 지자체대로 ‘알아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서울특별시와 구들은 271억원 중 3억8000만원가량을 사용했다. 반면 부산광역시와 구들은 102억원을 조성해 12억원을 사용했다. 부산광역시와 비슷하게 106억원을 조성한 인천광역시와 자치구들은 3억원을 사용했다. 한편 경상북도와 도내 시·군은 125억원을 조성해 1억7000만원을 사용했다. 대구처럼 목표액이 조성될 때까지 기금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대전처럼 매해 기금 조성을 위해 1억원씩 출연하지만 매해 1억원씩 기금을 사용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지자체마다 지자체장이나 자활사업 담당자의 인식에 따라 자활기금이 고무줄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자활기금의 조성이나 운영 책임이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지자체별 상황에 따라 사용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자활기금을 얼마나 어떻게 사용해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원칙이 없고 자활기금이 투입금액 대비 어느 정도의 질적, 양적 효과를 이루었나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가 없다. 기금 집행률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얼마나 잘 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자활사업의 현장에서는 현장의 요구에 좀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금 사용의 원칙이 질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의 자활기금이 대부분 ‘임대료 대여’에 사용되고 있어 그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자활센터장은 “자활사업은 참여하는 분의 근로 의욕 고취나 교육과 함께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성과가 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반면 초기에 투자해야 할 부분들이 있어서 처음에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며 “자활기금의 용도 규정이 현장의 욕구에 맞춰 융통성 있게 조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자체에 기금 조성과 운영의 책임이 있지만 자활기금 운용 상황을 지도·감독하고 평가하는 보건복지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필요해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자활기금 사용 실태 조사 및 활성화 방안’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라며 연구 결과에 따라 자활기금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한 방법론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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