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파도 타고 세계로 움직이는 병원 중남미 넘어 아시아로…

병원선 ‘머시쉽’ 대표 돈 스테판스 부부

세계적인 의료봉사 단체 ‘머시쉽(Mercy Ships)’의 돈 스테판스(Don Stephens, 65)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1978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배에 모든 의료장비를 갖춘 ‘움직이는 병원’을 운영한다. 지금까지 이 병원선(病院船)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은 무려 290만명에 달한다. 70개가 넘는 나라들에서 진행한 의료봉사 활동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9457억원. 매년 배에 올라타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봉사자만도 1500여명이다. 이러한 머시쉽의 헌신에 라이베리아, 감비아 등 방문국 대통령들은 “국민 모두를 대표해 머시쉽 봉사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직접 배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하곤 한다.

돈 스테판스 대표가 ‘머시쉽’의 꿈을 품은 것은 셋째 아들 존 폴(John Paul)이 태어난 1976년이다. 뇌성마비를 지니고 태어난 아들은 평생 혼자 힘으로 먹지도, 씻지도 못할 운명이었다. “아들은 우리 눈을 뜨게 해 주었어요. 저개발국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말이죠. 너무 가난해서 아무런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품게 되었죠.” 병원선에서 직접 간호사로 활동한 아내, 디온 스테판스(Deyon Stephens, 64)가 당시를 떠올렸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아직 할 일이 많다”는 돈 스테판스 대표의 열정과 “조명을 받아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봉사자들”이라며 몇 번을 강조하는 디온 스테판스 여사의 겸손함에서 다시 한 번 ‘나눔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아직 할 일이 많다”는 돈 스테판스 대표의 열정과 “조명을 받아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봉사자들”이라며 몇 번을 강조하는 디온 스테판스 여사의 겸손함에서 다시 한 번 ‘나눔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부부는 아들이 태어난 지 2년 후인 1978년, 은행에서 100만달러를 대출받아 첫 번째 배를 샀다. 수술실, 진료실 등을 비롯한 의료시설과 장비를 위해서 모금 활동을 펼쳤다. 함께 할 봉사자도 모집했다. 그렇게 첫 번째 병원선 ‘아나스타시스(Anastasis)호’가 만들어졌다.

부부는 아예 배에서 살면서 직접 의료봉사를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드디어 배를 준비한 지 4년 만인 1982년. 첫 항해를 시작해 과테말라에서 의료봉사를 펼칠 수 있었다. 당시 저개발국가의 열악한 의료환경에 가슴 아팠던 스테판스 부부는 1983년 두 번째 병원선인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호’를, 1994년 세 번째 병원선 ‘캐리비언 머시(Caribbean Mercy)호’를 마련했다. 모두 중남미 지역, 특히 의료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펼쳤다.

부부에게 지난 기간 동안 가장 기억나는 환자를 물어보자 “셀 수조차 없이 많다”면서, 21살의 아디조비 이야기를 들려줬다.

토고의 아디조비는 16살이던 2006년, 뺨에 작은 종양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선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그녀에게 병원에 가는 것은 사치였다. 결국 얼굴의 절반만해진 종양은 얼굴 전체를 짓눌러 말하거나 먹을 때마다 고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괴롭힌 것은 ‘신의 저주’라고 헐뜯으며 그녀를 쫓아낸 마을 주민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마저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완전히 사회에서 쫓겨난 그녀는 집 안에 숨어 지냈다.

작년 1년 동안 토고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9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진료, 수술 등의 의료봉사를 펼친 아프리카 머시호는 올해에는 시에라리온에서 사랑의 의술을 펼친다.
작년 1년 동안 토고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9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진료, 수술 등의 의료봉사를 펼친 아프리카 머시호는 올해에는 시에라리온에서 사랑의 의술을 펼친다.

스테판스 대표는 “이제는 자기 얼굴을 좋아할 수 있다며 거울을 손에서 놓지 않던 아디조비가 아직도 눈에 밟힌다”며 “그녀는 얼굴의 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도 치유받았다고 좋아했다”고 말했다.

지난 세월 동안 숱한 사람을 치료해 온 3척의 ‘머시쉽’은 이제 모두 낡아서 처분했다. 대신 지금은 200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네 번째 배 ‘아프리카 머시(Africa Mercy)호’가 유일한 병원선으로 남아 있다. 주로 서부 아프리카 최빈국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친다. 입원실 병상 78개, 수술실 6개, 엑스레이 촬영실, CT 스캐너 등을 갖춘 어엿한 병원이다.

병원선에서는 매년 40개국에서 1500여 명의 봉사자들이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봉사를 펼친다.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의료 전문가뿐만 아니라, 항해사, 기관사부터 요리사, 제과제빵사, 병원선 안의 국제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까지 다양한 봉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봉사자들은 모두 무급 봉사를 펼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묵는 선실 월세도 낸다. 월평균 900~1200달러를 부담하면서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 수술일정이 잡히면 앞다투어 헌혈하는 사람들, 보통 사명감이 아니다.

지난 30년을 회상하던 스테판스 대표는 “다들 참 고마운 사람들”이라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3주 정도 짧게 봉사하러 왔다가 20년이 넘도록 눌러앉아 있는 의사가 한 명 있습니다. 3주 동안 엄청난 건의 수술을 했죠. 주로 안면기형수술이었어요. 그런데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 항구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환자들이 자꾸 눈에 밟혔나 봅니다. 장기 봉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게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같은 봉사자 중 하나인 제 비서와 결혼했고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인 70대 부부도 있어요. 아마 최고령 봉사자 중 하나일 거예요. 1970년대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분들인데 지금은 병원선을 타죠.”

한국 방문 이유를 묻자 스테판스 대표는 “한국에서도 많은 봉사자들이 머시쉽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의료봉사를 할 새로운 병원선 ‘아시아 머시(Asia Mercy)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인도·방글라데시부터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 그리고 언젠가는 북한까지 방문하며 의료봉사를 펼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열정이 넘치는 한국인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아시아 의료봉사의 기초를 함께 세워봅시다.”

나눔과 열정으로 뜨거운 가슴을 가진 한국인들이 머시쉽의 새로운 역사를 세울 기대감에 함께 들떴다.

●머시쉽 봉사 참여 및 후원 문의: 02-2247-7514 (머시쉽 한국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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