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서울숲마켓 D-1] 지구촌의 가난을 해결하는 착한 딜러들

 

오는 8일은 ‘세계 공정 무역의 날’이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제3세계의 가난한 생산자를 ‘시장’에서 돕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다.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주고 물건을 사고, 소비자에게는 유통 과정을 최대한 생략해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도록 노력한다.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다. 지구촌의 가난을 해결하는 한국의 공정무역 기업은 어떤 곳들이 있을까. 

◇지구마을의 보부상을 꿈꾼다, 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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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맨의 최희진 대표

“대기업에서 3년을 근무하고 나니 개인적으로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철학적인 고민도 하게됐고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오래된 미래’ 속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어요. 이런 세상이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라다크행을 결심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라다크로 떠난 최희진씨. 그녀는 인도의 라다크와 라오스를 방문하면서,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공정무역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닌 목표가 됐다. 공정무역 기업 ‘어스맨’을 설립한지 어느덧 5년. 최희진 대표는 “라오스를 한국에서 돕기 위해 회사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철학은 ‘어스맨’이라는 사명(社名)에서부터 드러났다. 어스맨은 Earth(지구)와 Man(사람)의 합성어로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어스맨의 모든 물건은 사람과 자연으로만 만들어진다는 의미가 하나, 다른 하나는 지구사람, 즉 지구와 사람은 공존한다는 의미죠.”

그녀는 공정무역은 “어느 일방에만 공정한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공정한 윈-윈(Win-Win)무역”이라고 강조했다. 양질의 물품을 얻을 뿐 아니라, 생산지의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에 기여하면서 소비자들의 심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스맨의 대표 상품은 수공예 패브릭 제품이다. 원료 생산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이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그녀는 “머플러, 파우치 등 패브릭 제품의 경우 유기농으로 밭에서 키운 목화로 물레에서 실을 뽑아 자연염료로 색을 입힌다”며 “오로지 자연과 사람의 힘으로만 완성되는 제품”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물론 어려움도 많다. 대기업 제품에 비해 소비층이 제한적이고, 가격경쟁력이 낮다는 점은 최 대표의 오랜 고민. 올해 1월 출시한 히말라야산 건체리·건살구는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최 대표는 “소비층이 넓은 먹거리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원가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각각의 소규모 생산자들로부터 체리를 수거해 별도 첨가물 없이 맛을 내며 상품의 질도 높였다. 

사진_서울숲마켓_어스맨 제품
라다크에서 생산, 어스맨에서 판매하는 건체리와 건살구 /어스맨 제공

그녀는 어스맨이 어떤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지구마을 보부상으로 기억되고 싶다습니다.” 최 대표는 “옛날 보부상들이 그랬듯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물건과 함께 그들의 삶과 생각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여성 공동체 자립을 위한 기업, 더페어스토리

사진_서울숲마켓_더페어스토리
더페어스토리의 다양한 상품들

마치 선사시대의 벽화 같다. 하늘, 파랑, 회색의 실선들이 베이지색 천에 알알이 수 놓였다. 흰 개미탑에서 자라난 버섯들, 밭에서 논을 가는 여성들, 물이 부족해 지하수를 끌어모으는 사막 나라의 풍차. 나무, 풀, 야생동물과 같은 자연물부터 농사, 자동차, 풍차 같은 일상도 담겨있다. 수수께끼같은 이 문양들은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펜두카(PENDUKA) 지역 여성들이 직접 그린 기호와 상징이다. 임주환씨는 펜두카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지난 2012년 펜두카 최초의 글로벌 무역 업체 ‘더페어스토리(The Fair Story)’를 설립했다. 현재 더페어스토리는 펜두카 제품의 생산 관리부터 브랜딩까지 맡고 있다. 

“아프리카, 굉장히 멀죠. 그중에서도 왜 펜두카를 선택했냐는 질문을 받아요. 생소하기도 하잖아요.” 펜두카는 1992년 네덜란드인 크리스틴과 현지인 마사가 장애, 빈곤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나미비아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만든 공동체다. 펜두카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은 슬럼 지역에 살던 이들이다. 그는 펜두카 여성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돕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나미비아의 카투투라, 오티와롱고, 오울루스 팜 등의 지역에서 300여 명의 여성들이 자수 제품을 수 놓는다. 한국에 맞는 5개의 칼라를 정해준 것 외에는 나미비아 여성들이 직접 다 구상해 디자인한 작품이다. 대량 생산하는 제품이 아니기에 각자 개성에 따라 제품에 담긴 이야기도 조금씩 다르다. 그림을 살펴보면, 시대에 따른 변화도 있다. 예전에는 풀을 주로 그렸다면 요즘에는 농기계가 있다. 자동차도 새로 생긴 풍경이다. “고객들이 재미를 느껴요. 생산자들의 기를 그림으로 느낀다고나 할까요.”

사진_서울숲마켓_더페어스토리 임주환
더페어스토리의 임주환 대표

사실 펜두카의 여성들에게 공정무역은 낯선 단어다. 임 대표에게 공정무역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일도, 착한 일도 아니다. ‘공동체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일’이라 생각한다. 더페어스토리는 전체 매출의 2.5%를 생산지의 공동체 발전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저희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10년을 계획했는데, 이제 7년 남았죠.” 펜두카는 나미비아어로 일어나라(WAKE UP)는 뜻이다. 임 대표는 “펜두카가 앞으로도 더 잘 설 수 있도록(WAKE UP) 돕고 싶다”고 전했다. 

사진_서울숲마켓_더페이스토리 제품

사실 소비자에게 더 싸게, 더 많이 팔기 위해 ‘생산자의 삶’은 쉽게 생략되곤 한다. ‘판매 이윤’에 치우친 무역의 무게중심을 ‘생산 과정’으로 옮기려는 노력에서 ‘공정무역’은 태동했다. 오늘 먹고, 입는 것들.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나영, 김지희, 이슬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5기)

✔ 오는 5월 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코워킹 스페이스, 카우앤독에서 제2회 ‘서울숲마켓’이 열린다. 소비의 품격을 높여줄 봄날의 축제, 그곳에서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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