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한 푼 두 푼 모아 더 어려운 이웃에 도시락 배달

사람 이야기

서울 용산동2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해방촌 성당’은 멀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다 결국 택시를 잡아탔다. 아슬아슬하게 약속 시간에 맞춰서 성당에 도착해 마침 앞마당에 계신 한 어르신께 “도시락 배달…”하고 말을 꺼냈다. “강당으로 가봐요. 이미 다 모였어.” 할머니는 지하로 난 계단을 가리켰다.

김덕한(사진 왼쪽)씨를 찾은 현옥분(가운데)씨와 김재흠씨가 종이 봉투에 담긴 설 선물을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덕한(사진 왼쪽)씨를 찾은 현옥분(가운데)씨와 김재흠씨가 종이 봉투에 담긴 설 선물을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하 강당에 들어서자 오늘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할 할머니 10여명이 보였다. 한쪽 구석엔 설 선물로 전달할 가래떡과 김이 봉투에 담겨 늘어서 있었다. 도시락 배달 봉사자 박무진(84)씨는 “설을 맞아 특별히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20년 전부터 해방촌에서 살고 있는 김재흠(83)씨는 현옥분(78)씨와 짝을 이뤄 1년째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다. 그전에도 여러 봉사 활동을 했지만 이번 일은 특히 의미가 크다. 어떤 봉사보다 자신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다. “요리는 아무래도 연륜과 정성이 필요하다 보니 나이 든 우리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말하는 김씨는 무엇보다 나물로 하는 밑반찬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현씨 역시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건강이 더 좋아진 것 같다며 장점을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김씨와 함께 맡은 세 가구를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며,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면 갖다 주고 사는 얘기도 나눴다. “우리 때는 다 같이 고생했잖아요. 그때 얘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봉사활동을 시작하고서 바쁘게 움직이니깐 오히려 아픈 허리와 쑤신 몸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김씨와 현씨를 따라 성당을 나섰다. 성당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골목의 한 집에 들어서자 김덕한(67)씨가 무척 반가워하며 인사를 건넸다. 4년 전 넓적다리뼈를 다친 김씨는 돈이 없어 차일피일 수술을 미루다 이제는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가 됐다. 생활은 아내가 가끔 남의 집 일을 도와주고 받아오는 걸로 꾸린다. 하지만 김덕한씨는 도시락보다는 김씨와 현씨가 찾아온 것을 더 반겼다. “이 나이 되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두 분이 오면 이렇게 사는 얘기도 하고, 또 제 다리 상태도 봐주시니깐 고맙죠.” 김씨는 사람이 그리워 여름이면 문을 열어놓고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해방촌 성당의 도시락 봉사’는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사는 곳이 가깝고 연령 대가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이 ‘봉사자’와 ‘수혜자’라기 보다는 한 동네 이웃이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을 띠고 있었다. 실제로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받는 윤영순(81)씨는 자신이 직접 나서 도시락 배달도 한다. 자신도 힘들지만 ‘물김치가 먹고 싶다’는 다른 대상자에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물김치를 담가 주기도 했다. 윤씨는 “나도 없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도 느끼고 좋다”라고 말했다.

국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을 주민들끼리 도와나가는 모습은 과거 품앗이나 두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부족한 재정은 도시락 배달을 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김해복(77)씨는 “힘든 이웃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싶은데 물가가 너무 올라 힘이 든다”라고 했다. 1500원 안팎이던 파 한 단 가격이 지금은 두 배 이상 뛰었다. 김씨는 “좋은 분이 나타나 재정적으로 도와주시면 좋겠다”라며 도시락 봉사단 전체의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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