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한국에 뿌리내리는 데 큰 도움… ‘지자체 역할’은 아쉬워

르포_운영 시작 1년 맞는’하나센터’ 찾아가보니…
개인 상황에 맞춘 교육으로기존의 중앙 집중식보다실생활에 도움되는 지원
“하나센터에서 처음으로한국이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북한 이탈 주민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하나센터’가 전국적으로 운영된 지 3월이면 일 년을 맞는다. 전국 16개 시·도에 30개소가 설치된 하나센터는 거주지를 정한 북한 이탈 주민들이 해당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지원을 하는 곳이다. 하나센터 전국 운영 1년을 맞아 하나센터가 북한 이탈 주민의 지역사회 적응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아가봤다.

하나센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들어와 느끼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지역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은행이나 병원을 이용하는 법 같은 일상생활에 대한 부 분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개인 진로나 심리에 대한 상담까지 하고 있다. /서울북부하나센터 제공
하나센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들어와 느끼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지역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은행이나 병원을 이용하는 법 같은 일상생활에 대한 부 분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개인 진로나 심리에 대한 상담까지 하고 있다. /서울북부하나센터 제공

북한 이탈 주민의 수가 최근 2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에 넘어온 북한 이탈 주민은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사회에 정착할까. 현재 북한 이탈 주민이 제일 먼저 거치는 것은 국정원과 경찰청에서 받는 약 4주간의 합동 신문 과정이다. 신문 과정을 거쳐 한국에서 보호할지 여부가 결정되면 이후 3개월간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거주지가 결정되면 해당 지역 하나센터에서 교육 및 지원을 받게 된다. 하나센터 교육은 하나원을 퇴소한 북한 이탈 주민이 지역사회 적응을 위해 스스로 찾아가서 받는 무료 교육 형태다.

하나센터가 만들어진 것은 중앙 집중식 교육 형태인 하나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간 하나원은 북한 이탈 주민들이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모습을 일정한 공간 안에서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데다 수백명을 동시에 교육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나센터는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3주간 60시간의 지역사회 적응 교육을 실시하고 1년 동안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관리를 해주는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육 및 지원을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상_그래픽_북한이탈주민_손_2011지난 1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서울북부하나센터를 방문했을 때 북한 이탈 주민 이미진(가명·32)씨를 만났다. 지난해 7월에 한국에 온 이씨는 최근 하나센터에서 지역 정착 교육을 받고 있다.

이씨는 2002년 북한 국경을 넘었다. 중국의 나이 든 농촌 총각과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젊은 여성들이 북한에서 나올 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스물세 살에 중국에 온 이씨는 새벽 3시부터 밤 11시까지 농사를 짓고 축사를 돌봤다. 남편은 이씨가 도망갈까 봐 화장실까지 따라와 감시했다. 시댁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은 “우리나 되니까 북한 출신인 너에게 밥이라도 먹여주는 것”이라며 이씨에 대한 대우가 당연한 것처럼 굴었다. 이씨는 ‘북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이 악물고 일을 했다. 아이도 낳았다. 그는 “아이만은 낳기 싫었지만 그때는 어려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이씨는 중국을 떠나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다. 북한 정부가 중국으로 넘어온 북한 여성들을 찾으면 그 자리에서 총살해도 좋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늦은 밤 작은 발소리에도 심장이 뛰었다. 중국을 떠나는 배를 타던 날 아이가 울면서 이씨를 잡았다. 가슴이 찢어졌다.

이씨는 태국과 라오스를 거쳐서 한국으로 왔다. 많은 북한 이탈 주민들이 선택하는 경로다. 밀입국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감옥에도 여러 번 갔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온 이씨는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 교육을 거쳤다. 이씨는 “한국에 오는 동안 갖가지 사연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집체(집단공동체)생활을 하며 몇 달씩 교육을 받는 데다 한 방에 네 명씩 생활하며 석 달 내내 얼굴을 부딪히니 옷깃만 스쳐도 싸우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이씨가 한국에 정을 붙이게 된 것은 서울북부하나센터 덕분이었다. 이씨는 “이사 오는 날 하나센터 사람들이 김치도 갖다 주고 동네 안내도 해줘서 처음으로 한국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며 “하나원에서는 한국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하나센터에서 직접 현장학습을 해보니 한국에 금방 적응이 된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하나센터는 버스를 타거나 병원에 가는 일상적인 일도 버거운 북한 이탈 주민들을 위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준다. 북한 이탈 주민은 강사와 함께 동사무소에 함께 가서 주민등록증을 만들거나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어 보면서 앞으로 살아갈 지역에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한다. 북한 이탈 주민 박송희(가명·38)씨는 “하나센터 덕분에 실제 생활도 배우고 다른 북한 이탈 주민들도 알게 됐다”고 좋아했다. 최명자(가명·51)씨도 “혼자 방에 있으면 막막하고 외로운데 선생님이 언제든지 연락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나센터에서는 취업이나 교육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중국어에 능통한 덕에 하나센터를 통해 무역회사의 일자리도 얻은 이미진씨는 “북한 사람들이 먼저 온 선배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일자리보다는 하나센터를 통해 얻는 일자리가 훨씬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차경수(가명·25)씨는 “예전의 나처럼 하나센터를 믿지 못하는 북한 이탈 주민도 꼭 이곳에 와서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씨는 하나센터에서 영어와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처럼 북한 이탈 주민의 지역 정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하나센터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나센터는 통일부·지방자치단체·민간의 3각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북한 이탈 주민들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하나센터의 예산은 통일부가, 운영은 민간 사회복지관이 각각 책임지고 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는 하나센터를 지정하고 감독할 ‘권리’만 갖고 있을 뿐 하나센터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의무’는 없다. 서울북부하나센터 김선화(39) 부장은 “통일을 생각하면 각 지역사회에서부터 북한 이탈 주민과 어우러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경기도처럼 지방자치단체장의 관심에 따라 북한 이탈 주민들을 지자체에서 고용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각 지자체가 자기 지역 주민인 북한 이탈 주민과 각 지역하나센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