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가상현실 통해 굶주리는 난민을 만나다

IT기술 활용하는 비영리 단체

 “시리아 아이들이 정말 저를 향해 뛰어오는 것만 같았죠.”

 지난 19일, 경기 수원시 롯데몰 1층 한편에서 박향란(29)씨는 요르단 시리아 난민촌 ‘자타리 마을’을 경험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을 통해서다. 두꺼운 안대를 쓰듯 VR 기기를 머리에 착용하고 헤드폰을 쓰자, 시리아 소녀 시드라(12)양이 눈앞에서 말을 했다.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니 집 안 곳곳이 보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막연히 ‘어렵겠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직접 확인하니 울컥하더라고요. 이 정도로 열악한 줄 몰랐거든요.” 박씨는 체험 후 한동안 고민 중이었던 유니세프 후원 신청을 바로 했다.

VR로 요르단 시리아 난민촌을 체험하는 모습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제공
VR로 요르단 시리아 난민촌을 체험하는 모습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제공

 유니세프는 지난해 5월부터 VR을 활용한 시리아 난민인식 개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유니세프 회원국 중 첫 시도였다. 이정현 유니세프 후원개발1팀장은 “현지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그 어려움을 직접 느껴보게 하는 게 인식 개선 방법으로 최선이라는 생각에 VR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UN과 협업해, 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주요 인사들에게 공개했던 VR 영상 자료를 4분짜리로 줄이고, 한국말 더빙을 입히는 데까지 3개월간 공을 들였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1년 가까운 캠페인 결과, VR을 경험한 이들이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80% 더 높은 후원 참여를 보였다. 이정현 팀장은 “앞으로 난민 이외에 아프리카 구호 활동 등 다양한 인식 개선 사례와 접목할 예정”이라고 했다.

◇’펀무브’, 3D 프린터로 기존 전자 의수(義手) 가격 200분의 1로 줄이기도

최근 비영리 활동에 다양한 IT를 활용해 일명 ‘비영리 테크’를 활성화시킨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펀무브’는 3D 프린터를 활용한 전자 의수(義手) 제작 방법을 교육하는 비영리단체다. 지난해 초, 홀로 전자 의수 개발에 매달렸던 김근배 부산 반송센텀의원 원장이 당시 부산 콘텐츠 코리아랩을 총괄 기획 및 운영하던 고준호 펀무브 대표를 찾았다. 당시 전자 의수 가격은 3000만원대인 데다, 무게가 1㎏이나 됐다.

반면 3D 프린터를 이용해 플라스틱으로 제작하면 제작 비용은 15만원대이고, 무게도 300g 미만으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 오픈소스(기술을 무료 공개하는 곳)들을 뒤지고, 지인부터 SNS에서까지 모인 도움 덕분에 불과 석 달 만에 국내 최초 3D 프린터 전자 의수(일명 3D 프린팅 핸드)를 개발했다.

고 대표는 “의수가 필요한 대부분이 거의 산업 현장에서 다쳐서 생계까지 막막해진 분이라는 걸 알고, 비영리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펀무브는 전자 의수를 제작·보급할 자금이 없는 대신, 제작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로 했다. 뜻에 동참하고 싶다며 3D프린터는 물론, 자신의 사업장을 교육장으로 내놓은 이도 있었고, 크라우드펀딩에서는 일주일 만에 500만원이 모이는 등 100여 명이 도움을 보탰다. 덕분에 현재 부산과 서울에서 2주에 한 번씩 석 달 과정으로 무상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펀무브에서 3D 프린팅 핸드 제작 교육을 받고, 직접 만들어 새 손을 가진 사람은 11명. 강원도에 사는 최모(47)씨의 경우,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없는 아들에게 ‘3D 프린팅 핸드’를 만들어주려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부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전자 의수를 제작했다. 고 대표는 “아이가 새로운 손이 생긴 후 예전보다 밝아졌다는 소식에 ‘이 일이 보람 있구나’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해외 반응도 뜨겁다. 지난해 11월 아쇼카 한국이 혁신적인 의료 기술에 부여하는 ‘Making More Health 체인지 메이커’상을 받은 뒤, 인도나 시리아 난민촌에서도 제작 문의가 온다. 고 대표는 “앞으로 전자 의수 이외에 3D프린터로 다른 의료기기 제작 연구도 계획해 실현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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