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서비스하는 그들 모습 보면 당신의 편견, 바로 깨질 거예요

장애인 재활 숙박업소 ‘호텔엘린’

제주공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푸른색 빌딩 ‘호텔엘린’. 이 호텔은 일반적 호텔과 다르다. 사회적기업이자 국내 최초의 장애인 재활 숙박업소이기도 하다. 중증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엘린’의 사업장인 호텔엘린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13명. 또 다른 사업장인 청소 용역 업체 ‘엘린클린’의 37명까지 포함하면 장애인 50명이 일한다. 시각장애, 지체장애, 정신장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등 장애 유형도 다양하다.

호텔엘린은 다른 지역에서 도움을 청하러 올 정도로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장애인 일자리를 창출한 케이스로 평가 받는다. /엘린 제공
호텔엘린은 다른 지역에서 도움을 청하러 올 정도로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장애인 일자리를 창출한 케이스로 평가 받는다. /엘린 제공

‘서비스 직종에서 장애인들이 일하는 게 가능할까.’ 이곳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편견을 깨기에 충분했다. 비취색 원피스와 흰색 앞치마를 두른 양수민(가명·23·지적장애 1급)씨는 “침대 시트 가는 일이 제일 까다로워요” 하며 순식간에 침대를 고르게 매만졌다. 바쁘게 욕실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거울과 세면대,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끝이에요?” 묻는 말에 “마무리요!” 크게 외치더니, 마른 걸레로 욕실 전체를 다시 닦고 휴지와 비품까지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끝났다”고 나지막이 내뱉었다. 4년째 호텔엘린의 룸메이드로 일하는 수민씨는 “일하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며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청소기를 잡았다.

“보통 중증 장애인 직업 재활 하면 김치, 비누, 쿠키 만들기처럼 단순 임가공 업무를 많이 떠올려요. 직업의 다양성이 없죠. 그런데 장애인들도 비장애인처럼 하고 싶은 분야가 분명히 있거든요. 제주도라는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고민하다가 서비스업을 떠올렸습니다.”

한봉금 엘린 원장이 입을 열었다. 호텔엘린의 장애인 직원은 객실 및 복도 청소, 프런트 객실 예약 등을 담당하고 엘린클린 직원들은 대리석, 계단, 유리창 등 건물 청소와 관리를 담당한다. 고객들을 응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이다 보니 사업 초기에는 어려움도 컸다. “장애인들이 청소하고 관리한다고 하니까 미심쩍어하시는 거예요.”

‘엘린클린’의 장애인 직원이 석재 바닥을 청소하는 모습. 엘린클린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내에서 손꼽히는 청소용역업체로 평가받는다. /엘린 제공
‘엘린클린’의 장애인 직원이 석재 바닥을 청소하는 모습. 엘린클린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내에서 손꼽히는 청소용역업체로 평가받는다. /엘린 제공

고객의 편견을 없애는 데는 꼼꼼한 업무 매뉴얼과 훈련생 제도가 한몫했다. 한 달에서 최대 3개월 정도 매뉴얼에 따라 ‘훈련생’으로서 업무 실습을 한 후 실전에 투입된다. 장애인 직원이 놓치는 부분은 비장애인 직원이 채워준다. 강명승 엘린 사무국장은 “장애인 직원들 특유의 꾀부리지 않는 성실함도 손님들을 잡아끄는 무기가 됐다”며 “‘역시 엘린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믿고 찾아주는 분이 늘고 있다”고 했다.

2013년 말에는 호텔 리모델링을 통해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객실 4개를 신설하기도 했다. 장애인 리프트 차량과 전동·일반 휠체어, 점자 블록 및 점자 표지, 로비의 장애인 화장실 등 기존 시설에 더해, 출입문 턱을 없애고 화장실에 안전바와 의자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2012년, 2014년 연속 제주시 숙박 위생 점검 최우수 등급, 2013년 제주특별자치도 튼튼 관광 제주 만들기 캠페인 숙박 분야 우수 업체에 선정됐다. 객실 33실은 매월 98% 이상 판매율을 보인다. 2012년 문을 연 이후 엘린의 매출은 2013년 6억2000만원, 2014년 9억1000만원, 지난해 12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엘린의 주인공인 장애인 직원을 위한 다양한 지원 시스템도 독특하다. 비장애인 직원 17명 중 60% 이상이 사회복지사이다. 정기적으로 직원 개별 상담, 위생 교육, 자조 모임 등이 열린다. 매주 금요일에는 전 직원이 업무를 마친 후 볼링을 치거나 영화를 보러 간다. 특수학교를 마치자마자 엘린에 입사해 4년째 엘린클린 일상관리팀에서 일하고 있는 전명현(가명·23·지적장애 3급)씨는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는 것도 좋고, 돈을 버는 것도 재미있다”며 “엘린이 없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했다. 호텔엘린에서 일하는 김희연(가명·24·지적장애 3급)씨도 근무한 지 벌써 3년째다. 희연씨는 “쉬는 날 없이 맨날 출근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엘린 팬’이다. 엘린은 5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에게 깜짝 해외 여행 기회를 제공하고, 직원 복지를 위한 프로그램실도 따로 둘 예정이다. “엘린은 라틴어로 ‘행복한’이라는 뜻입니다. 엘린의 고객뿐 아니라 직원까지 모두가 행복한 곳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한봉금 원장)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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