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장애’를 ‘기회’로… “꿈꾸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장애인 CEO 3人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송오용 대표 “우리 제품 덕에 시각장애인 사시 합격도”
김진현 대표 “드론으로 장애인에게 ‘희망의 날개’ 달아”
박원진 이사장 “청각장애인, 자막 있으면 배움 쉬워요”

“내가 태어난 건 팔다리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 때문이다.”

유명 베스트셀러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씨의 말이다. ‘장애’를 자신만의 ‘기회’로 삼은 장애인 CEO들이 있다. 한국 시각장애인계의 ‘빌게이츠’라는 송오용 ㈜엑스비전테크놀로지 대표, 드론으로 방송계를 평정한 김진현 스카이블루버드 대표(1급 지체장애), 청각장애인으로 교육 환경을 바꾸기 위해 직접 나선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30년 독학,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송오용 대표의 회사는 그를 포함, 청각장애인 개발자들 모두가 독학으로 컴퓨터 기술들을 깨쳤다. /강미애 기자
송오용 대표의 회사는 그를 포함, 청각장애인 개발자들 모두가 독학으로 컴퓨터 기술들을 깨쳤다. /강미애 기자

“제 컴퓨터는 30년째 꺼진 날이 없습니다. 컴퓨터만큼 재밌는 건 없으니까요(웃음). 앞이 안 보이는 저에게 컴퓨터는 세상 ‘전부’입니다.”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회사 ‘㈜엑스비전테크놀로지’를 14년째 운영 중인 송오용(44·시각장애 1급) 대표의 말이다. 지난 15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을 때 송 대표는 인기척도 알아채지 못한 채 컴퓨터에 몰두하고 있었다. 모니터는 까만 상태. 그는 헤드폰을 쓰고 스크린 리더(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 설명에 집중해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이런 신세계가 있나’ 싶더라고요.”

송 대표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건 1986년 서울맹학교 중학부 때였다. ‘새로운 눈’을 뜬 것 같았다고 한다. “아홉 살 때 그네에서 떨어져 시력을 잃었죠. 다니던 학교, 놀던 친구들과 더 이상 어울릴 수 없게 됐어요. 서울맹학교로 전학 오고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는데, 컴퓨터는 가장 친한 친구가 돼주었죠.”

온종일 컴퓨터 삼매경이었다. 관련 점자책을 보며 하나씩 알아가니 컴퓨터로 음악도, 게임도 만들 수 있었다. 학교 졸업 후 낮엔 안마사 일을, 밤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을 했고, 주말이면 동호회까지 나가 최신 컴퓨터 정보를 익혔다. 송 대표는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은 시장이 작아 기존 회사에서 잘 만들지도 않고, 만들어도 업데이트를 안 해 불편했다”며 “계속 방치되는 게 안타까워 직접 나서 프로그램들을 업그레이드해 다른 장애인들과 공유했다”고 했다.

‘장애인용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출시, 개선될 순 없을까.’ 고민 끝에 송 대표는 2002년 서울맹학교 선후배 3명과 함께 아예 회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넷이 모은 1000만원으로 개발용 컴퓨터들을 구입하고 나니, 겨우 문래동 공장 지역에 5평짜리 방 한 칸을 구할 수 있었다. 매출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기술 개발만 한 지 1년 반 만인 2003년, 시각장애인들이 윈도XP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센스리더’를 출시했다. 국내 최초였다. 시각장애인은 도스밖에 사용할 수 없었으니 큰 열풍이었다. 일반 윈도 프로그램에 비해 세 배가량 비쌌는데도 첫 판매에서만 230명이 구매, 1억원의 매출이 났다. 심지어 특허 소송에 휘말렸을 땐 시각장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해 ‘시각장애인 정보 접근성을 위해 제품 사용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과 시위를 해줬다. 십시일반 모아 소송 비용까지 보태줬다 (그 후 3년 반 만에 송 대표의 승소로 분쟁은 끝났다).

매출액은 작년 한 해만 10억원가량에 이른다. 그는 “우리 제품을 통해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하고, 원하는 회사에 취업했다며 고맙다고 찾아오는 등 장애인들이 직업을 갖게 될 때 가장 보람 있다”고 웃었다. 현재 13명 직원 중 9명(약 70%)도 시각장애인이다.

지난해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뉴스 구독부터 채팅, ‘유튜브’ 이용, 카페 개설 등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도록 연구·개발한 ‘센스월드’를 출시했다. 송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모든 인터넷상 홈페이지가 다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몇 사이트만 방문하거나, 아예 인터넷 사용을 포기하기도 한다”며 개발 이유를 밝혔다. 장애인들에겐 포털 사이트와 같은 존재인 셈. 지난해 11월 오픈 후 3개월 만에 300여 명이 이용을 시작할 만큼 반응도 좋다. 곧 일본 등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다. 송 대표는 “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줘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드론’으로 방송계 평정한 김진현 대표 “이젠 장애인 자립에 날개 달아줄 것”

김진현 대표의 사업 목표는 드론으로 장애인들이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스카이블루버드제공
김진현 대표의 사업 목표는 드론으로 장애인들이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스카이블루버드제공

“휠체어에서 손 하나만 까딱해도 세상 못 갈 곳이 없죠. ‘드론’ 덕분이에요(웃음).”

항공 촬영 전문 기업 ‘스카이블루버드’의 김진현(56) 대표는 생후 7개월, 걸음마를 떼기도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김 대표에게 드론은 세상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보게 했던 만능 다리가 됐다.

‘버튼 두 개만 작동하면 되니, 드론이 지체장애인의 새로운 직업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 대표는 고민 끝에 2013년 상업용 드론인 ‘핼리캠’ 촬영 전문 회사를 창업했다. 15년간 근무하던 장애인복지관까지 그만두고 드론에 ‘제2의 인생’을 건 것이다. 사진·영상 촬영에 베테랑인 남편도 사업에 뛰어들며 지원군이 돼주었다. 하지만 사업 과정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 2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핼리캠을 사기 위해 남편의 퇴직금을 보태 겨우 두 대를 마련, 부부 단 둘이서 시작했다. 수없이 시험 비행 촬영을 하며 실력을 쌓아갔지만 영업은 더 큰 벽이었다. 김 대표의 장애만 보고 거절하기도 하고, 인맥 없이 촬영을 수주하는 건 ‘맨땅에 헤딩’이었다.

한 지자체 홍보 영상 촬영을 어렵게 맡은 게 첫 기회였다. 김 대표는 “3초의 단 한 컷이라도 완벽한 촬영을 위해 남들보다 두 배 더 핼리캠을 띄워 정성을 들였다”고 했다. 덕분에 한번 고객은 예외 없이 다시 찾아왔다. 올해로 사업 시작 4년 차. 이제 기업과 지자체 사진 및 영상은 물론 JTBC, 채널A, KBS 등의 방송도 제작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것도 성공 비결이다. 핼리캠 촬영 업체에서는 보기 드물게 두 시간 넘게 생방송을 무사고로 진행했고, 국내 최초로 에버랜드에서 드론을 이용해 치킨 배달을 실행하기도 했다.

사업이 안정권에 들면서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장애인 드론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장애인미디어인권협회 고양시지회’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장애인의 우울증과 자살률이 일반인의 2배가 넘는다”며 “사회생활 경험이 없고 갇힌 공간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 작은 문제에도 움츠러들고 극단적 결심을 한다”고 했다. 의식주에만 초점이 맞춰진 여타 장애인 지원 사업과 달리, 그녀는 드론을 통해 장애인들이 넒은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자립 방향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애인 자살을 막는 전문기관은 전무(全無)한 상태예요. 우리가 대신 드론이라는 최신 기술로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요.”

박원진 이사장이 개발한 플랫폼은 현재 여러 대학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박원진 이사장이 개발한 플랫폼은 현재 여러 대학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장애인용이 아니라 범용(汎用) 자막”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소리가 쉽게 보일 수는 없을까.’

25년 전, 청각장애인 박원진(37) 이사장은 처음 이 ‘엉뚱한 상상’을 시작했다. 장애를 숨기고 싶어서였다. “고열을 크게 앓고 난 후 점점 소리가 안 들렸죠. 일대일로는 겨우 입 모양을 보고 알아듣는 척했는데, 반장이 돼 학급회의를 하려고 교탁 앞에 나가니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영화 속 장면처럼, 말하면 바로 눈앞에 글자가 나타나게 해 달라’고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요.”

장애를 지닌 채 학교를 다니는 불편함은 대학 때까지 여전했다. 강의를 노트북에 쳐주는 도우미 학생이 있었지만, 수업 내내 목을 돌려 모니터를 봐야 했다. 도우미 학생이 부족한 날엔 노트북 하나에 장애 학생 여러 명이 둘러앉아 수업을 받기도 했다. “원래 꿈은 특수교사였어요. 그런데 10년, 20년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장애인 교육 환경을 보면서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수업 내용을 컴퓨터로 실시간 기록, 바로 휴대폰으로 전송해 보면 편리할 텐데….’ 항상 마음속에만 품던 아이디어를 실현해 본 장(場)은 ‘2012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소셜벤처 경연 대회’였다. 임용 고시를 준비하다 알게 된 청각장애인 교육 사회적기업 ‘헤드플로’ 사례를 접하고였다. 첫 도전 결과는 우수상. 연이어 사회연대은행과 (사)함께만드는세상이 주최한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 창업팀’에도 선정돼 지원금도 3000만원 얻었다. 그걸 계기로 박 이사장은 청각장애인 자막 플랫폼 ‘쉐어타이핑’을 통해 장애인 ‘교육’과 ‘고용’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기 위해 막연하게 사업에 첫발을 들였다. 하지만 어려움은 계속 됐다. 제품 개발 경험이 없다 보니 시제품 제작에 2000만원을 들였지만 실시간 전송이 안 되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외부 전문 개발 업체 ‘행복한 앱&미디어’와 MOU를 맺고 사용자들의 의견도 모아 정비를 거듭했다. 교육 전공이었던 박 이사장에게 부족한 행정, 회계 등을 메우기 위해 2013년 말부터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을 세우고 조합원도 모집했다.

주변의 청각장애인들부터 이전에 출전했던 대회 심사관 등까지 총 6명이 첫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2014년엔 쉐어타이핑 공식 서비스를 시작하고, 앱도 개발 완료했다. 가장 먼저 서비스를 도입한 곳은 교회, 사회적기업가 포럼, 장애인 포럼 등 비영리 섹터였다. KT의 연간 장애인 콘서트 ‘ 나다 뮤직페스티벌’에도 매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기업에서 직원 교육을 할 때 법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별도 의사소통 수단을 제공해야 하지만 지키는 곳은 극히 드문 상태. 박 이사장은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에 더 많이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장애인이 편한 시설은 곧 노약자 등 비장애인들도 도움을 받는 범용(汎用)입니다. 저희는 모두를 위한 ‘청각의 보편적 설계’를 이뤄나갈 겁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