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나눔은 ‘나’를 위해… 혼자 행복한 건 외롭고 재미없죠

‘봉사하는 청춘’을 만나다
탈북 대학생 엄에스더… ‘신개념 꽃거지’ 한영준

(위) ‘꽃거지’ 한영준씨가 세운 ‘희망꽃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제2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풍토병 ‘샤가스’ 예방 교육을 한다. (아래) 엄에스더씨가 창단한 남북 통일봉사단(UNI SEED)의 남북 청년들은 급식 봉사활동 일주일 전부터 기획, 메뉴 선정부터 조리와 배달까지 전 과정을 함께 이뤄나간다. /한영준·엄에스더 제공
(위) ‘꽃거지’ 한영준씨가 세운 ‘희망꽃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제2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풍토병 ‘샤가스’ 예방 교육을 한다. (아래) 엄에스더씨가 창단한 남북 통일봉사단(UNI SEED)의 남북 청년들은 급식 봉사활동 일주일 전부터 기획, 메뉴 선정부터 조리와 배달까지 전 과정을 함께 이뤄나간다. /한영준·엄에스더 제공

‘수저론’이 한창인 대한민국, 그러나 어떤 곳에선 수저조차 못 물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다. 가장 가까운 곳 ‘북한’과 지구 반대편 남미 볼리비아의 빈민촌 ‘뽀꼬뽀꼬’다. 그들에게 ‘나눔’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있다. 바로 대학생 통일 봉사단을 만든 탈북자 엄에스더(33)씨, 7년째 ‘100원의 후원금 구걸’을 하는 ‘꽃거지’ 한영준(32)씨 이야기다.

◇봉사를 통해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한 탈북자, 엄에스더

2010년, 엄에스더(33·한국외대 중어중문학과 4)씨는 두 번 탈북한 끝에 남한 땅을 밟았다. 봉사를 시작한 건 정착 후 한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장애인 시설,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노숙인 무료 급식 봉사 등을 빼놓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엄씨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도피하던 시절을 이야기하다 울먹였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눈앞에서 공안에 잡혀가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어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어요. 그때 길에서 사지(四肢) 없는 노인이 입에 붓을 물고 글을 써서 파는 걸 보면서, 제 모습이 부끄러워 용기를 냈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장애인 시설로 무작정 가 돕고 싶다니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더군요. ‘숨어 사는 사람은 좋은 일도 못 하는구나’ 싶어 서러웠죠.”

엄씨는 남한에 도착한 후, 지인에게 소개받은 장애인 시설 ‘엔젤스헤이븐(구 은평천사원)’부터 찾았다. 봉사의 시작이었다. 토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장애인들을 씻기고, 시설 곳곳을 쓸고 닦았다. 주6일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하루 4시간도 못 자는 고된 일상 속에서도 토요일 봉사는 빼먹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봉사는 남한 생활에서 유일한 ‘낙’이었다고 한다.

“‘나도 쓸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받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고, 뭔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감도 부쩍 늘더라고요.”

사실 그녀가 ‘봉사광’이 된 건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3년 전 북에 있는 동생의 사망 소식, 1000만원 들여 어렵게 탈북시켜 온 어머니의 암 말기 판정 등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우울증에 빠졌죠.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가족보다 먼저 생각난 게 항상 ‘대견하다’ ‘힘들진 않으냐’ 하면서 응원하고 걱정해준 동료 봉사자들 얼굴이었어요. 그들은 저에게 ‘생명줄’이에요.”

엄씨는 봉사야말로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탈북자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는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탈북자의 자살률은 남한 사람들의 3배에 이른다”며 “남북 차이가 크고, 북한에 대한 오해가 많다 보니, 탈북자들이 자신을 숨기려고만 하게 되고 적응을 못해 자살이 계속 일어난다”고 했다.

북한 사람들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탈북자들도 자존감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엄씨는 아예 봉사단을 꾸렸다. 뜻을 같이 한 동료 탈북 대학생 4명과 함께 ‘유니씨드(UNI SEED)’라는 봉사단 이름도 지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 봉사단은 노숙인 급식 봉사를 위해 서울역 근처로 나간다.

무일푼이던 이들은 매달 한번 식사를 준비하는 데 드는 60여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다 도전했다. 그 모습을 기특하게 본 주변 지인들은 준비 장소부터 도시락과 젓가락 등을 후원하며 힘을 보탰다.

4명으로 시작했던 인원은 금방 소문이 나 한 달 만에 18명이 됐고, 2년이 지난 지금은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탈북 봉사자인 조은희(37·명지대 외교정치학과 4)씨는 “처음엔 노숙인들이 무섭고 선뜻 다가갈 용기도 못 냈는데, 이젠 먼저 안부도 묻고 봉사하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변화는 또 있다. 탈북 대학생으로만 구성됐던 봉사단에는 이제 남한 청년 6명도 참여하고 있다. 1년 가까이 활동한 서민규(27)씨는 “탈북 대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과 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몸소 실감한다”고 했다. 지난해 유니시드는 남북하나재단이 주관한 ‘착한 봉사단’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이날도 엄에스더씨는 서울 중구 ‘소중한사람들’ 복지관 지하 주방에서 하얀 위생모와 앞치마를 두른 채 자기 키만 한 국자로 불고기 200인분을 볶고 있었다. 한쪽에선 재료를 다듬고, 다른 쪽에선 밥과 김치, 멸치볶음 등 반찬을 도시락에 넘치게 담아냈다. 봉사단원 20여 명이 4시간 동안 완성한 도시락 200개를 노숙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서둘러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다. 영하의 날씨, 얼굴과 손이 빨갛게 얼었음에도 이들은 “맛있게 드세요” “다음에 드시고 싶은 것 말씀해주시면 해올게요”라며 살갑게 도시락을 전했다.

엄씨는 더 안정적인 봉사단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2014년부터는 북한 음식을 개발·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오순도순’을 추진, 지난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최 ‘전국 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탈북자들이 다니는 서울의 대학 9곳에 유니시드 봉사단을 창설해 남북 청년들이 만나는 장(場)을 넓혀갈 계획이다.

“우리가 나누는 도시락은 배만 채우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도시락을 주는 탈북자, 받는 노숙인 모두 ‘힘내서 일어서자’며 서로 용기를 나누는 ‘한 끼’죠. 봉사단을 통해 ‘탈북’이란 편견을 탈북자 스스로 깨고, 사람들에게 통일 시대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 겁니다.”

◇100원 구걸로 빈곤국 아이들에게 꿈을 심는 ‘신개념 꽃거지’, 한영준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금수저들보다 훨씬 더 좋은 걸 떠먹는걸요. 어떻게 태어났는지가 대수인가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웃음)”

두둑한 배짱을 내미는 한영준(32)씨의 별칭은 ‘꽃거지’. 3개 국어 구사, 모델 뺨치는 ‘몸짱’ 등 화려한 스펙으로 7년째 “100원만”을 당당히 구걸 중이다. NGO들의 손길조차 닿지 않는 열악한 해외 빈민촌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 모금 활동에 참여한 사람은 벌써 30개국, 2만여 명에 달한다.

평범한 지방대생이었던 한씨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건 2010년 태국에서였다. 고대하던 첫 해외 배낭여행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구걸하고, 몸을 파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나보다 예쁘고 똑똑한 애들이었죠. 그런데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나는 여행을 하고 있고 그들은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게 화가 나고 욕이 나오더라고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그는 현지인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의 학비와 학용품비를 후원하는 자신만의 공정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반년 간 도운 아이 수는 10명가량.

그는 “한 아이당 1년에 8만원이면 충분했다”고 했다. ‘작은 것이 모이면 기적이 일어난다’, 자신이 느낀 걸 알리고 증명하고 싶어 그가 선택한 방법은 ‘후원금 100원 구걸하기’. 수년간 곳곳을 무전(無錢)여행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거지’로 이름 날리던 경험을 살린 것이다. 이왕이면 식스팩 복근에서 오는 자신감을 보태 ‘꽃거지’라고 자칭했다. 하지만 구걸에도 원칙이 있었다. 기부금은 100원부터 1만원까지, 개인 후원만 가능하고 기업·종교단체 돈은 받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그는 “돈으로 위세 부리거나, 진심 없는 습관적인 돈은 사절”이라며 “다른 사람이 하는 것 말고, ‘나다운’ 모금을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원대한 포부로 후원 소개 영상을 만들고 명함 3000장을 만들어 길거리 홍보도 했지만 첫 후원자는 17명뿐. 그중 절반이 지인이었다. 적은 후원금이지만, 원고료와 여행 사진전 수익 등을 보태 인도네시아에 작은 도서관을 짓고, 스리랑카에는 집과 농장 13채를 세워나갔다. 그 과정을 찍은 사진과 글들을 인터넷에 올리자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도 모였다.

특히 젊은 층의 반응이 뜨거웠다. ‘성의 없는 세계 일주 계획 또는 여행 가이드 해드림’, ‘전 세계 떠도는 꽃거지에게 오면 1주일 무료 숙식’ 등 기발한 후원자 예우로 재미를 살리면서도 후원금은 용도에 따라 통장 4개로 나눠 철저하게 관리·재정 보고를 한 덕분이다. 작년 연말 홍대에서 열린 꽃거지 출연 토크쇼에서 만난 박은초롱(28)씨는 SNS을 통해 꽃거지를 알고서 1년간 모은 동전을 전해주기 위해 수원에서 왔다고 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그의 별칭이나 글이 재밌어 단순한 호기심에 봤는데, 단 100원으로 나도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모으다 보니 어느새 저금통이 다 차더라”고 웃었다. 캐나다·미국·영국 등 여러 나라의 세계 청년들은 그가 있는 남미까지 직접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5년간 신뢰와 팬층을 쌓은 덕분에 그는 지난해 10월,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뽀꼬뽀꼬’ 마을에 ‘희망꽃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2년간 현지 생활을 하며 계획을 세우고 홍보한 끝에, 이 학교에 5년 정기 후원을 약정한 사람 수가 무려 1500명을 넘었다. 보육원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보내기도 했고, 아직 학자금도 다 못 갚은 청년이 굶지 말라며 돈을 보내오기도 했다. 덕분에 학교는 선생님 4명을 채용할 수 있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에 대해 한씨는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서라고 한다.

“혼자 행복한 건 외롭고 재미없죠. 내가 행복하려면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니 모은 돈을 함께 사는 오지의 이웃들과 나누는 겁니다. 우리를 보는 후원자들도 행복해질 테니 ‘일석삼조’죠. 저도 멋 내고 클럽에서도 놀고, 명품도 욕심나요. 착한 사람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저 같은 악동도 누구나 멋진 일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렇게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란 뽀꼬뽀꼬 아이들도 언젠가 ‘제2의 꽃거지’를 꿈꾸지 않을까요.(웃음)”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