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어른들은 알까요, 우리도 ‘평범한 꿈’ 꾼다는 것을

불안… 위기에 몰린 미래세대
가정 폭력·학교 따돌림 벗어나도 가출로 인한 또 다른 위기 생겨
소년원 출원자·미혼모 청소년 등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돼야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비단 노래 가사만이 아니다. 사회에서 낙인찍히고 배제된 소년원 출원자, 미혼모 청소년,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 수감자 자녀들. 이들을 위기로 내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어른들의 잘못일지 모른다. 기성세대는 무엇을 놓친 걸까. 위기에 놓인 미래세대에게 직접 물어봤다.

미상_그래픽_미래세대_미혼모와아이_2016

“소년원은 또 다른 ‘무법천지’죠.”

정현성(가명·17)군은 6년 전 가출 후 세 번이나 소년원에 갔다 왔다. 양아버지의 잦은 폭행을 피해 가출한 것이 방황의 시작이었다. 양아버지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건 예사고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야구 방망이로 구타했다. “쇄골이 골절되기도 하고 몸에 멍이 없어질 날이 없었죠. 경찰에 여러 번 신고도 해봤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죠.”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잔소리에서 벗어난 건 좋았지만, 길거리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또래 아이들과 끊임없이 도둑질을 저질렀다.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혀 2010년 소년원에 처음으로 수감됐다.

하지만 소년원에서 갈수록 폭력성만 커졌다. 고참 문화 때문이었다. “한방을 쓰는 열다섯 명가량 사이에는 철저히 상하 계급이 나뉘었죠. 심지어 옷깃으로 신분을 표시했어요. 대장은 감시와 CCTV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서 이유 없이 가혹한 폭행을 하거나 시키죠. 그러면 당한 애들이 새로 들어온 애한테 복수를 하면서 폭력이 계속 되풀이됐죠.”

그는 소년원 내에서 말썽을 피워 3개월 동안 이송됐던 한길정보산업학교(제주소년원)에서 “진짜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엄마의 편지도 거기서 처음 받아봤어요. 한 방에 두 명씩만 지내니 같은 방 형과 서로 의지하며 양보하고 참게 되더라고요. ‘분노조절 상담’을 받은 것도 도움이 됐어요. 예전에는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바로 때렸는데, 기분이 나빠도 참고 넘어가는 법을 알게 됐죠.”

오토바이 퀵 배달을 하다 최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그는 “소년원 한 방에 들어가는 인원을 2~3명으로 줄여야지, 인원이 많아지면 서열과 왕따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CCTV 사각지대를 없애고 축구부 같은 운동반을 만들어주는 등, 나쁜 문화는 없애고 소년원만의 엄격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양육 미혼모, “미혼모 아이는 아이 아닌가요?”

“우리 아기 너무 예쁘죠. 아직 돌도 안 됐는데 말도 다 알아듣고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요. 어찌나 얌전한지 보채지도 않아서 다들 ‘순둥이’래요(웃음).”

김미정(가명·22)씨는 휴대폰 속 딸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딸바보’ 김씨는 지난해 1월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 ‘미혼모 청소년(25세 이하)’이다. 아직 앳된 모습이었지만 육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소녀에서 육아 베테랑이 되기까지, 지난 1년이 가장 힘들면서도 행복했다는 김씨는 그간의 사연을 말하며 울고 웃길 반복했다.

“하늘 아래 따뜻한 내 집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매일 술에 빠져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 가정 폭력과 시집살이에 망상 증세를 보이던 어머니까지.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가출했다. 서울에 사는 고모집도 가봤지만 사촌 언니들은 “밥만 축낸다”, “차라리 집을 나가라”고 구박했다. 김씨는 한 신흥 종교의 회유에 넘어갔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사람과 처음 사귀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첫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얼마 되지 않아 복통이 심해 응급실을 찾은 김씨는 소변 검사 후 ‘임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한편으로 난생처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기뻤다고 한다. 좁은 고시원에서 홀로 심한 입덧을 견디며 7개월 가까이 혼자 끙끙댔다. 김씨는 “너무 예쁜 아이가 꿈에 계속 나왔다”며 “배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질 때마다 아이 낙태는 살인이라는 생각이 확실해졌고, 그러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했다. 출산을 결심한 김씨는 곧장 미혼모 지원 기관을 찾아 도움을 구했다.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만삭인 몸을 이끌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공부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지난 연말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토론 연극 ‘미모되니까’에서는 미혼모 7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들려줬다. 공연 후 설문조사에서 관객들의 96% 이상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명랑캠페인 제공
지난 연말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토론 연극 ‘미모되니까’에서는 미혼모 7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들려줬다. 공연 후 설문조사에서 관객들의 96% 이상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명랑캠페인 제공

하지만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하철을 타면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혀를 찼죠. 홀로 병원에 출산하러 간 것도 서러운데 일부 간호사는 ‘미혼모다’, ‘돈은 있나’ 수군거리더라고요.” 출산 후 취업할 땐 ‘가족관계증명서’ 이야기만 나와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했다. 미혼모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거나 채용된 후에도 해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가 받을 상처다. 그녀는 “조금 있으면 유치원에 갈 텐데 다른 친구들 가족을 보고 ‘우리 아빠는 어딨느냐, 왜 없느냐’ 하면 어쩔지, 놀림은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우리 사회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해진 기준에 맞게 태어난 아이만 인정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19세 수감자 자녀, “부모의 형사처벌 가족에까지 피해 주지 말아야”

김선미(가명·19)씨는 어린 시절부터 절도 전과범인 아버지를 찾으러 온 경찰들을 수도 없이 마주해야 했다.

“처음엔 집을 뒤지고 꼬치꼬치 묻는 경찰들이 너무 무서웠죠. 또 올까 봐 항상 불안에 떨기도 했어요. 그런데 좀 크니까 반항심이 생기더라고요. ‘왜 나한테까지 이러느냐’ 따지기도 했죠.”

김씨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친구들을 괴롭히고 못된 짓을 일삼았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쟤 아빠는 도둑질했다” “범죄자 자식과는 놀지 마라”고 했다.

“아버지는 제 인생의 얼룩이에요. 지우면 더 번져요.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어요.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수감자 자녀들을 지원하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이경림 이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체포 시 범인에게만 집중해 현장을 보게 되는 범죄자 가족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러나 남겨진 아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범죄자를 체포할 때 아동 전문가를 동행, 체포 시 분위기를 바꿔 범죄자 자녀가 트라우마를 갖지 않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국내엔 아직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았지만, 5~6만명(아동의 0.6%)이 수용자 자녀로 추정된다. 이경림 이사는 “잘못 없는 범죄자의 자녀까지 상처를 받지 않는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6세 중학교 중퇴 청소년, “나이와 학년 구애 없는 학교 있으면 돌아갈래”

“꼭 ‘몇 살’인지가 아니라, ‘몇 학년’인지를 묻더라고요. 이젠 아예 거짓말을 정해 놓고 합니다. ‘중학생’이라는 호칭이 없는 저는 청소년과 성인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소외돼 있는 것 같아요.”

박민수(가명·16)군은 3년 전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계속된 따돌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그를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왕따인 걸 알면서, ‘너는 친구도 없느냐’ 비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혼자 화를 참고 삭이다 아예 사람이 많은 곳은 무서워서 못 갈 정도로 트라우마는 심해졌다. 결국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군은 자퇴를 감행했다.

학교만 벗어나면 될 줄 알았는데, 학교 밖 세상은 더욱 녹록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문제아’로 보거나 무시했다. 외로움도 커졌다. 대안학교도 며칠 다니지 못했다. 그는 홀로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친구들이랑 뛰어놀며 어울리는 꿈을 아직도 매일 꿉니다.”

그는 “나이와 학년에 얽매이지 않는 학교가 있어서 언제든 다시 다닐 수 있는 정규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원석·김혜지·배혜진·조은총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4기)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