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더 가까운 나눔을 위해… 비영리단체는 거리로 나섭니다

전날 모금 성과 공유하는 오전 회의 마친 뒤 부스 설치하고 모금 시작
현장의 거리모금가들 “피하는 시민도 많지만 한 사람이라도 서명하면 큰 보람과 희열 느껴”
기업모금·유산기부보다 비용 많이 드는 거리모금 1년 이상 지속해야 효과
비영리단체 거리모금, 기자가 참여해보니

연초부터 비영리단체들의 모금 경쟁이 후끈하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 SNS 등 모바일을 통해 후원자들과 소통했던 비영리단체들은 이제 후원자를 찾아 직접 길거리로 나선다. 지난 28일, 문상호 더나은미래 기자는 저소득 독거노인을 돕는 비영리단체 ‘한국헬프에이지’의 거리모금팀과 함께 직접 일일 F2F(Face to Face) 모금가로 나섰다. 한국헬프에이지는 비영리 모금컨설팅을 돕는 회사인 ‘도움과나눔’에 거리모금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편집자 주


 

“1월 신규 후원자들을 분석해보니, 181명 중 25세 이하가 134명이나 돼요. 청년들이 독거노인 이슈를 중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후원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어떤 전략을 수립해야 할까요?”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도움과나눔’ 사무실에서 김유신 한국헬프에이지 프로젝트팀장이 팀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서영 매니저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은 독거노인의 삶을 다룬 영상을 찾아보면서 좀 더 친숙한 설득 전략을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자, 7명의 다른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오전 이뤄지는 회의는 거리모금에 나서기 전 팀원들이 전날의 모금 성과와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다.

“오늘 갈 왕십리와 부천역은 광장이니만큼 활발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2월은 모금이 가장 안 되는 달이에요. 날씨도 춥고 등록금이나 학비가 들어가는 달이라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아요. 포기하지 말고, 후원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모두 힘냅시다.”

김유신 팀장은 팀원들을 독려하면서 회의를 끝냈다. 기자 또한 거리에 나서기 전, 스크립트를 외우고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다. 박수한 매니저는 “모금을 해달라고 조르거나 수혜 대상자들의 불쌍함만을 어필하거나, 모금을 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죽는다는 식의 죄책감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며 “시민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후원에 참여하도록 이끌어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1 피켓을 들고 후원자 모집을 하고 있는 문상호 기자. 2ㆍ3 한국헬프에이지 모금팀이 시민들에게 단체의 활동을 설명하고 후원 약정서 서명을 받고 있다.
1 피켓을 들고 후원자 모집을 하고 있는 문상호 기자. 2ㆍ3 한국헬프에이지 모금팀이 시민들에게 단체의 활동을 설명하고 후원 약정서 서명을 받고 있다.

◇후원 대상 선정, 콘텐츠 개발… 시민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치열한 고민

이날 오후 기자가 4명의 거리모금가들과 함께 자리 잡은 곳은 경기도 부천역 실내 광장. 부스를 설치하기 시작하자, 지하철 역사(驛舍)에서 직원이 나와 “허가받고 모금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한국노인복지회가 한국헬프에이지로 이름이 바뀐 것을 잘 몰라 낯선 단체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 사이 팀원들은 뚝딱뚝딱 간이 부스를 설치했다. ‘독거노인 고독사 시신 5년 만에 발견’ ‘한국 노인 인권 순위 67위’ ‘한국헬프에이지는 UN으로부터 상을 받은 단체’ 등 다양한 패널이 등장했다. 오후 1시, 기자도 회색 헬프에이지 재킷을 입고 명찰을 목에 걸었다.

하행선 열차 한 대가 들어왔다. 50여 명이 쏟아져 내렸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어려운 독거 어르신을 돕는 단체입니다.” 끝나기가 무섭게 “죄송합니다.”라며 북쪽 출구로 뛰어갔다. 추리닝에 백팩을 맨 남성은 기자가 다가서자 아예 반대쪽으로 피해버렸다. 자신감이 사라지자, 목소리는 모기만 해졌고 외운 스크립트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40분쯤 지났을까, 노란색으로 염색한 대학생 백모(26)씨에게 “혹시 바쁘지 않으시다면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소외된 독거 어르신들이 난방비와 식사비를 마련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그분들을 돕는 단체입니다.” 이병수 매니저의 얘기가 시작되자 백씨는 한쪽 귀에 걸려 있던 이어폰을 뺐다. 10여분의 대화 끝에 후원 참여 요청을 했다. “매월 작게나마 1만원을 후원해주신다면 어르신의 삶을 도울 수 있다”고 하자, 고민하던 백씨는 “아직 후원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무수한 거절 끝에 캠페인을 시작한 지 2시간 40분만에 첫 후원자 등록이 이뤄졌다. 직장인 강모(여·25)씨는 “평소 나눔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동안 후원에 참여할 방법을 잘 몰랐다가 오늘 이야기를 듣고 참여키로 결심했다”며 “이 돈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설명해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박수한 매니저는 “자원봉사에 관심 있으면 자원봉사 소식을 체크하면, 단체에서 자원봉사 모집을 할 때 알려드린다”며 “후원금액 변경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첫 후원자 등록을 하자, 거리모금팀 목소리에 활기가 돋았다. 이어 서울신학대에 재학 중인 손정민(24)씨는 30분 동안 단체의 특성과 운영내역 등을 꼼꼼히 확인한 후 후원서에 서명했다. 오후 6시 30분까지 이어진 거리모금 캠페인에 참여한 신규 후원자 수는 총 4명, 후원액은 6만5천원이었다. 김혜린 사원은 “계속되는 거절과 무시를 겪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을 대하기 두렵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이야기를 믿고 약정서에 서명해주시는 후원자를 만날 때, 가장 큰 보람과 희열을 느끼죠.” 옆에 있던 이병수 매니저가 말했다.

◇거리모금 1년 이상 지속해야 효과 볼 수 있어

한국헬프에이지는 2008년부터 도움과나눔에 거리모금을 의뢰해왔다. 지난 5년간 신규 등록 후원자 수는 1만여 명에 달한다. 도움과나눔 방성진 F2F사업부장은 “현재 비영리단체 4곳의 거리모금을 돕고 있는데, 우리가 신규 후원자를 유치한다고 해도 이들을 유지하는 것은 비영리단체의 몫”이라며 “일부 기관에서는 모금에 따른 성과급(인센티브)을 주는 방식을 쓰는데, 모금은 사람의 마음을 얻고 비영리단체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해야 하기 때문에 기부자를 돈으로 보는 전략을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해당 비영리단체의 사업 내용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후원자를 모을 수 있을까. 방성진 부장은 “각 거리모금팀은 해당 비영리단체 담당자와 매월 2차례씩 만나 사업 내용을 스터디한다”고 했다. 후원자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전날 받은 약정서는 다음 날 각 비영리단체에 바로 전달하고, 모금윤리 교육을 매달 1~2회씩 시행한다고 한다. 윤리규정을 어긴 사원에겐 삼진아웃제를 적용한다. 방성진 부장은 “을지로 지하도처럼 허가를 받지 않고도 모금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몇 곳 있지만, 대부분은 까다롭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거리모금은 기업 모금이나 유산 기부보다 인건비 등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이고, 회원들이 소액을 장기적으로 기부를 하는 경향을 감안했을 때 1년 이상 지속하지 않으면 모금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과연 한국도 선진국의 치열한 모금시장 대열에 뛰어드는 것일까. 앞으로의 추이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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