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이웃 위한 따뜻한 밥 한 끼… 그들의 특별한 목요일

요리 재능기부단체 ‘한끼’

“경제적 상황 상관없이 누구나 맛있는 한 끼 먹었으면”
평균 24세 청년셰프 7명의 한식·일식·양식요리 협업 봉사

SNS에 활동 내용 올리며 재능기부 참여 이어져
휴일에 쉬고 싶지 않으냐고요? 맛있다는 말에 피로 싹 사라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감쌌다. 앞치마를 두른 청년 3명이 손바닥만 한 길쭉한 빵을 앞뒤로 굽더니, 이내 동글동글하게 빚은 고기 패티를 먹음직스럽게 익혔다. 다른 한쪽에서는 문어 모양으로 칼집을 낸 비엔나 소시지를 야채와 함께 볶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야채를 씻어 샐러드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제 버거, 치즈 그라탱, 상큼한 유자청을 올린 비엔나 샐러드가 완성됐다. 지난 12일, 평균 연령 24세의 파릇파릇한 청년 셰프들이 7명의 여자 아이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곳은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그룹홈 ‘세실리아의 집’. 이웃들에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요리 재능 기부 단체 ‘한끼’의 봉사활동 현장이다.

“요리하는 사람들은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감이 제일 커요. 경력 5년 미만의 초보 요리사들이지만 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기쁨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죠.”

다양한 분야의 현업 셰프들로 구성된 요리 재능 기부 단체 ‘한끼’. 권웅 ‘한끼’ 대표는 “봉사는 시작할 마음 하나면 된다”며 “앞으로도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신성혁, 권웅, 김상옥, 이지은, 최아영 셰프. /한끼 제공
다양한 분야의 현업 셰프들로 구성된 요리 재능 기부 단체 ‘한끼’. 권웅 ‘한끼’ 대표는 “봉사는 시작할 마음 하나면 된다”며 “앞으로도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신성혁, 권웅, 김상옥, 이지은, 최아영 셰프. /한끼 제공

권웅(26·4년 차 이탈리안셰프)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한끼’는 양식, 일식, 한식, 제과·제빵 등 다양한 분야의 현업 요리사 7명으로 이루어진 요리 재능 기부단체다. 매주 목요일마다 사회복지시설 두 곳을 번갈아가며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만든다. 봉사 당일에는 십시일반으로 2만원씩을 걷어 재료를 산다. “언니, 오빠가 오는 목요일이 가장 기다려진다”는 16살 민정(가명)이가 한둘이 아닐 정도로 인기몰이 중인 한끼의 시작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리사로서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꾸린 스터디 모임에서 이지은(21·1년 차 파티시에) 공동대표가 권 대표에게 제안한 것. “이 친구 별명이 ‘봉사쟁이’예요. 어릴 때부터 봉사를 진짜 많이 했어요. 저는 재능 기부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의 ‘우리가 직접 해볼까’라는 말 한마디에 ‘이때다’ 싶었죠.”

머리를 맞댄 청년 셰프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봉사활동할 곳을 찾고 함께할 팀원을 모으는 일이었다. SNS에 봉사팀원을 구한다는 공지를 띄우고,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VMS) 홈페이지에서 봉사할 수 있는 곳을 파악해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평일에만 쉴 수 있는 셰프들의 일정을 고려해주는 곳은 없었다. 30여 군데 문을 두드리며 지쳐가던 그때, 기적처럼 세실리아의 집과 연결이 됐다. 송영숙 세실리아의 집 시설장은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첫 번째 봉사 이후 SNS에 올린 활동 내용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 권 대표와 대학 동기인 경주환(26·4년 차 이탈리안 및 프렌치셰프)씨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서 먹는 음식이 달라지는 불평등이 속상했는데 누구에게나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다는 취지에 반했다”며 참여 계기를 전했다. 주환씨를 비롯해 권 대표의 군대 후임, 같은 업장의 동료 셰프 등 지인들이 하나둘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먼저 한끼를 찾는 곳도 생겼다.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밥차 봉사를 진행하는 쉼터 ‘한울타리’의 제안으로 지난 7월부터는 인천 부평 광장에서도 밥차 봉사를 함께하고 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업무에 꿈처럼 주어지는 하루 이틀의 휴식. 이들이 휴일을 쪼개 재능을 나누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 셰프들은 “보람과 기쁨”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실리아의 집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번 왔다가 그치는 단발성 봉사를 많이 겪었던 친구들이에요. 홀로 아쉬움을 삼켰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의 문을 안 열더라고요. 꾸준히 아이들을 기다렸어요. 한두 달 지나니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뭐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우리에게 이런 날이 오는구나’하고 자축했던 기억이 나요.” 이 대표의 말에 주환씨도 “맛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피로가 싹 사라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상_사진_재능기부_요리들_2015

서로의 전문 분야가 다르다 보니, 봉사활동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강영식(26·4년 차 한식 셰프)씨는 “한번은 꽃게탕을 만들자고 했는데 서로 생각한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는 보람뿐 아니라 전문성 측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한끼’팀은 최근 제2회 ‘한국자원봉사영상제’에 자신들의 자원봉사활동을 담은 영상으로 일반 부문 대상(행정자치부장관상)에 선정됐다. 권 대표는 “우리 활동의 취지에 많은 분이 공감해주신 것 같아 뿌듯하다”며 “많은 분이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재능 기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기업 부문 우수상(조선일보 더나은미래상)은 신세계I&C 임직원들이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목소리를 기부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 ‘내 마음이 들리니?’가, 대학 부문 우수상(KPR상)은 인도네시아 마린중초등학교에 봉사 다녀온 이야기를 담은 서울여대 인도네슈아(in do4swua)팀의 ‘한여름의 감기’가 차지했다. 중고등 부문 우수상&네티즌인기상(푸르덴셜 사회공헌재단상)은 전주벽화마을에 살고 계신 노인분들을 관광객들이 찾아가 따뜻한 말과 장미 한 송이를 전달하는 캠페인을 벌인 녹녹(Knock Knock)팀의 ‘두드림’이, 초등 부문 우수상(아이들과 미래상)은 ‘당신의 자원봉사는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일상 속 배려를 담은 파장초등학교 영상미디어 동아리가 차지했다. 수상작 영상은 네이버 TV캐스트(tvcast.naver.com/goodvideo2015)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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