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혁신기술 무상전수 빵빵한 ‘상생’

[SPC그룹, 사회공헌 70년 스토리]

‘상미당’ 때 무연탄 가마·호빵 개발… 연료비 절감·비수기 판매난 해결

1980년대엔 반죽 급속냉동 시스템
자격증 없이도 빵집 운영 가능하게
IMF 퇴직자 먹고살 길 만들어내

2000년대 들어선 우리 농산물 활용
농가와 상생… 공유가치 창출 실천
알바생에 장학사업·취업기회까지

1945년, 황해도 옹진. ‘상미당(賞美堂)’이라는 작은 빵집이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맛있는 것을 주는 집’. 열네 살 때부터 옹진의 한 제과점 점원으로 일했던 가난한 청년이 10년간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연 빵집이었다. 당시 옹진에는 미군이 주둔해 설탕, 버터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상미당’에서는 이 재료에 엿을 혼합해 빵과 과자를 만들어 인근 시장에 팔았다. 70년 후 이 동네빵집은 하루에 1000만개의 빵을 만들어내는 제빵전문기업 SPC그룹으로 성장한다. 삼립식품,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의 브랜드로 유명한 SPC그룹은 전국 60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연 매출 4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제과제빵 전문기업이다. 강산이 일곱 번 변할 세월 동안, 이 기업을 성장시킨 철학은 무엇일까.

대리점의 겨울철 빵 판매 비수기를 극복하게 해 준 삼립 호빵. /SPC 그룹 제공
대리점의 겨울철 빵 판매 비수기를 극복하게 해 준 삼립 호빵. /SPC 그룹 제공

◇기술 혁신해 무상 전수… 70년 된 장수 기업의 ‘공유’ 정신

해방 직후, 제과업계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미군 주둔과 함께 제과업체는 인기를 끌었다. 태극당, 고려당, 뉴욕제과 등의 빵집도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었다. 1948년 서울 을지로로 자리를 옮긴 ‘상미당’도 10곳이 넘는 업체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무언가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빵의 원가 구성은 원료비, 인건비, 연료비. 결국 관건은 연료비 절감에 있었다. 당시 ‘상미당’의 사장이었던 SPC 창업주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은 호떡을 굽는 가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루연탄을 이용한 ‘무연탄 가마’를 개발했다. 이 가마는 열기를 골고루 분산시킬 수 있는 터널식의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어 빵 만들기에 제격이었다. 기존 가마와 달리 비용이 싼 가루연탄을 사용해 생산원가를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당시 가루연탄은 백탄 가격의 10% 수준이었다. 기술 혁신은 가격 절감을 가져왔고, 직원은 1년 새 5명에서 10명으로 늘었다.

여기서 그쳤다면 작은 빵집의 성공 스토리에 불과했겠지만,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은 선택을 달리했다. 직접 개발한 가마 설치법과 제과 기술을 독립해서 떠나는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전수했다. 독립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고 기술 지도를 했고, ‘상미당’의 이름까지 쓸 수 있도록 허락했다. ‘상미당’을 거쳐 독립한 공장은 ‘상미당’의 방계 업체임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면서, 갈수록 유명해졌다.

작은 빵집이었던 ‘상미당’이 기업 형태를 갖춘 것은 1959년 서울 용산에 ‘삼립제과공사(현 삼립식품)’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삼립제과공사는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비스킷을 주로 생산해 판매망을 전국으로 넓혀갔다. 이 회사가 다시 한 번 도약기를 얻은 것은 1971년, ‘호빵’을 출시하면서부터다. 겨울철 빵 비수기에 대리점들의 수익이 급격히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아이디어다. 알루미늄 재질의 원통형 호빵 판매용 찜통도 제작해 배포했다. 투명한 찜통 안에서 데워져 따뜻하게 바로 먹을 수 있는 호빵은 겨울철 소비자들의 눈과 입맛을 사로잡았다. 대리점도 겨울철 비수기를 극복하고, 1년 내내 판매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SPC의 전신 ‘상미당’에서 개발한 무연탄 가마. /SPC 그룹 제공
SPC의 전신 ‘상미당’에서 개발한 무연탄 가마. /SPC 그룹 제공

◇베이크오프(Bake-off) 시스템… 상생(相生)의 물꼬 트다

1988년,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가맹점 사업을 시작했다. 파리바게뜨 브랜드의 핵심은 ‘베이크오프(Bake-off)’ 시스템이다. 파리바게뜨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이 시스템은 공장에서 빵 반죽을 만들어 급속 냉동시켜 보급하고, 가맹점에서는 판매 직전 해동해 구워내는 방식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신선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파리바게뜨가 전국적으로 동일한 빵 맛을 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SPC 허영인 회장은 “제빵 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춰 좋은 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창업했다”고 했다. 특히 IMF 외환 위기로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당시, 이 시스템은 특별한 기술이 없이 퇴직한 회사원들에게 먹고살 길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현재 파리바게뜨 석관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섭(59)씨가 대표 사례다. 이씨는 1997년, 10여년간 근무했던 해운회사를 그만뒀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줄곧 인사관리 부서에서 일을 했기에 별다른 기술은 없었다. 이씨는 퇴직금을 가지고 돌곶이역 부근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오픈했다. 부부가 밤낮으로 부지런히 매장 관리를 하다 보니, 점차 자리를 잡았다. 하루 매출 30만원에서 400만원까지, 약 20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다. 매장은 10평에서 30평으로 넓혔다. 이씨는 “자격증 없이도 빵집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2의 길을 걷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초창기 3년은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동년배 친구들보다 사정이 훨씬 낫다”며 웃었다.

SPC는 농가와 함께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SPC 그룹 제공
SPC는 농가와 함께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SPC 그룹 제공

◇우리 농산물 활용한 제품 개발

2008년, 나눔을 통한 경영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았다. 원료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상생’할 방법을 고민하다, 농가 직거래를 선택한 것. 전남·경북·경남·충북 등 12개 농가와 계약해, 딸기·포도·파프리카·사과 등 우리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지난해 SPC가 구매한 국산 농·축산물만 약 5450억원에 이른다. 2013년 5월엔 충북 영동군과 ‘포도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2000평 규모 청포도밭을 가꾸는 농부 박세호(54)씨는 “개인 청과물 도매상이나 서울 농수산물 시장에 납품할 땐 출하 수수료와 운송비 부담이 컸다”면서 “SPC는 날씨·시장 변동을 고려해 최소한의 수익금도 보전해주니 계획 재배가 가능해져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씨의 포도 수익은 10% 이상 늘었다.

올해는 경남 의령군 내에 국내 최초로 150㏊(약 45만평) 규모의 제빵용 밀 재배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 밭에서 생산되는 밀은 SPC가 100% 매수한다. 덕분에 값싼 수입 농산물에 밀려나던 우리 밀 생산 농가들의 고민이 한층 덜어졌다.

농가와 함께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제품도 개발했다. 대표 히트 상품은 경북 영천 미니사과로 만들어진 ‘가을엔 사과 요거트 케이크’다. 이 케이크는 일반 케이크 대비 4배 높은 매출을 올렸고, 영천 농가들이 연평균 80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효자 상품이 됐다.

이 외에도 프랑스식 정통 바게트에 의성 마늘을 넣어 만든 ‘치즈 마늘 바게뜨’, 경남 산청의 딸기를 재료로 한 ‘딸기 요거트 듬뿍 케이크’ 등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동국대 경영학과 유창조 교수(한국경영학회 차기학회장, 현 CSV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는 “SPC는 식품회사로서 좋은 원료를 확보할 수 있어 좋고, 농가에는 안정적인 판로가 마련될 수 있다”면서 “이해관계자와 상생을 모색하는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 가치 창출)’의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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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베이커리 만들고, 아르바이트생 장학금 지원까지…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어갑니다”

2011년 SPC는 ‘SPC행복한재단’을 설립하며 사회공헌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했다. 이어 2012년에는 아르바이트 대학생 등록금을 지원하는 ‘SPC 행복한 장학금’ 사업을 시작, 1년에 두 번 장학생을 선발해 등록금의 50%를 지원한다. 지금까지 총 8회에 걸쳐 627명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에게 11억여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또한 신입 사원 공채 인원의 10%를 SPC 브랜드 아르바이트 경험자 중에서 선발하고 있다. 2009년부터 분당 지역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했던 금현정(25)씨도 2014년 1월, SPC에 입사했다. 현재 기업문화팀에서 일하고 있는 금씨는 “알바생에게 채용 기회까지 별도로 마련하는 제도가 거의 유일해 대학생들 사이에 관심이 뜨겁다”면서 “열심히 일한 아르바이트생이 입사 기회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사회공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좋다. SPC 공채로 입사한 신입 직원은 6개월에서 1년가량 점포에서 매장 경험을 쌓게 된다. 아르바이트생은 교육을 따로 받지 않아도 업무에 적응하기가 쉽다. 금씨는 “입사하면서 3년 동안 트레이닝 받았던 일을 하게 되니까, 업무 효율성도 높았다”고 덧붙였다.

2012년 9월, SPC는 푸르메재단과 함께 ‘행복한베이커리&카페’ 1호점을 오픈했다. 이는 SPC가 지적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시작한 사회공헌 프로젝트다. 현재 서울시 인재개발원, 강동구 온조대왕문화체육관, 서울시립은평병원, 서울도서관 등 5곳에 오픈했다. 현재 5개 매장에 장애인 바리스타 총 13명이 일하고 있으며, 카페 수익금 전액은 푸르메재단을 통해 장애인 재활사업에 사용된다.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는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직장을 가지기가 힘들다”면서 “SPC는 이들이 행복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소중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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